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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곰 Jul 30. 2024

빵가게 재습격, 공허한 외침과 격렬한 공복

무라카미 하루키, <빵가게 재습격>

오랜만에 책 후기를 쓰게 됐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도 오랜만이고, 필사를 하고 싶은 소설도 오랜만이었다. '빵가게 재습격'을 읽게 된 이유는 단순히 빵순이로서의 본능적인 끌림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라는 것도 한몫까지는 아니더라도 반몫은 했겠지만.


 이 책은 여러 단편 소설이 모인 소설집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가장 맘에 들었던 소설은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이었다. 표현과 감정선에 빠져들었는데 정작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어서 세 번은 읽었다. 그러나 오늘 얘기할 소설은 "빵가게 재습격"과 "빵가게 습격"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단순히 배고파서 빵을 훔쳐먹는 코믹한 이야기인줄 알았다. 그러나 독서토론 전에 다시 읽어보면서 의아한 부분이 많아 한동안 생각에 빠졌다. 그 생각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순서는 "빵가게 재습격"이 먼저이다. 화자인 "나"와 아내는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압도적인 공복감에 휩싸였다. 냉장고에는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쉽게 채워질 것 같지 않은 굶주림을 저자는 "특수한 굶주림" 이라고 표현한다. 배고픔에 대해 공유를 하다, "나"는 이전에도 비슷하게 빵가게를 습격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친구와 함께 빵가게를 습격했던 그 때 빵은 얻었지만 그 대가로 바그너의 음악을 들었다. 주인의 요구였다. 그 기이한 물물교환으로 묘하게 습격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진다. "나"는 그 이후 묘하게 저주에 걸린 것 같다고 고백한다. 아내는 잠시 묵묵히 있다가 빵가게를 재습격하자고 말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들을 잠식하는 그 허무와 굶주림은 무엇인가. 내 생각의 결론은 "권태로움"이다. 매번 반복되는 삶과 새로움이 없는 오늘. 퇴근이 즐거운 이유 중 하나는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하는 생각 때문 아니던가? 만약 올드보이처럼 매일 퇴근 후 저녁에 군만두를 먹어야한다면 아무리 맛있는 집에서 군만두를 시킨다한들 즐겁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삶에는 이러한 권태로움이 찾아오는 시기들이 있다. 지리한 공부 끝에 대학에 입학하고, 취업 준비를 하다가 마침내 취직을 하고,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다 평생의 동반자를 찾고. 대체적으로 찾아오는 새로움 뒤에는 다시금 찾아오는 지루함이 있다. 돈 없던 대학생 시절에 이어 결혼생활을 이어가던 중년 남성에게도 허무가 찾아온 것이다.


 아내와 함께 빵가게를 찾아 길을 나선다. 그러나 도로의 상점들은 모두 셔터를 내리고 있었고, 보이는 건 24시간 운영의 맥도날드. 그들은 그곳을 습격하기로 한다. 총구 앞에서도 규칙과 규율을 생각하는 점장에게서 그들을 기어코 빅맥 30개를 얻어낸다. 차 안에서 10개의 빅맥을 먹은 그들과 여전히 남은 20개의 빅맥이 뒷자석에 동행해 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이 결말이 일종의 죄책감 같던 저주를 벗고 드디어 제대로 나쁜 짓을 한, 패거리의 활극 액션 엔딩이라고 생각했다. 초반부에 나왔던 해저화산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바다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을 상상케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곱씹을 수록 "내"가 아내에게 물었던 질문이 찝찝했다. "정말 이럴 필요까지 있었을까?" 그 질문은 여전히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의 질문이었다. 이에 대한 해답은 "빵가게 습격"의 엔딩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주인장이 선정한 음악을 들으며 원하는 빵을 원하는 만큼만 고르고, 허무는 완전히 사라져 상상력이 움직였던 마지막 엔딩. 그러나 재습격 때 그들은 빵가게를 찾을 수 없어 프랜차이즈인 맥도날드를 방문했고, 메뉴의 다양성도 없이 빅맥 하나로, 먹을 수 있는 양의 3배인 30개를 떠 안았다.

 나는 같은 허무에서 시작한 습격의 차이로 시대상의 변화를 꼬집고 있다고 생각했다. 각자의 취향과 기호가 분명하고 존중받았던 이전과는 다르게, 어디든 똑같은 규율로 움직여야 하는 프랜차이즈와 세뇌 당하듯 시키는 대표 메뉴. 지루한 일상에서 비롯된 허무를 채우기 위한 허황된 과식. 이에 만족하는 아내와 비교함으로써 현대인의 모습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


 해저화산이 없는 채로 바다 위를 떠다니는 모습은 평화인가, 단순한 평이함인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이라도 폭발이 없다면 지구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을 것이다. 새로움 없는 삶은 새로움 이외의 다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 매일 아침과 잠들기 전 찾아오는 공허함이, 그 적막이 무언가를 강력하게 부르는 외침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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