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사랑에 대한 해답의 책
영화 개봉 소식을 듣고 오랫동안 '어떨까' 생각했던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을 사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설과 영화 모두 좋았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소설을 먼저 읽는 걸 추천한다. 어떻게 왜 이렇게 각색되었고, 이 대사는 어떤 글에서 나왔는지를 알면, 영화가 더 매력적이게 느껴지는 것은 물론이고 동시에 소설의 매력도 체감할 수 있다.
주요 스토리가 게이인 남자와 오늘을 즐기는 여자의 우정 이야기임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책에서 그 둘의 우정은 앞부분과 중간중간 소문처럼 들려온다. 책은 저자의 자전적 내용이 더 담겨서인지, 남자 주인공의 사랑과 편견, 가족사 등을 깊이 다룬다. 그러나 영화는 김고은이 분한 여자 재희의 스토리의 비중도 많이 차지하고, 둘의 우정이 전반의 내용을 이끈다. 이 부분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포인트였다. 책의 다른 요소들은 배제하고 게이로서, 또 여자로서 맞닥뜨리는 편견과 사랑에 대해 집중한 것 같아서. 가장 주요했던 것은 책 속에서 흥수의 쓰레기 연인을 재희에게로 배정(?)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연애라는 소중한 이벤트의 이면에 여자들이 처하는 위험 요소를 드러내고, 대신에 흥수는 진정한 사랑을 만나게 함으로써 사랑의 낭만성을 극대화했다. 사실 영화의 전반적인 부분이 마음에 들었지만 재희의 결혼식 장면에서부터는 전형적인 상업 영화로의 전환처럼 느껴졌다. 영화의 유쾌한 분위기 유지를 위해 한편으로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유쾌하고 불쾌하게 풀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이들이라면 몇 가지 대사가 마음을 긋게 될 것이다. 마치 아무 페이지나 펼치다가 머리를 띵하고 맞추는 해답의 책처럼, 이 영화는 세 가지의 사랑에 대해 중요한 말을 남긴다.
첫 번째는 사랑 노래의 사랑. 한동안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무엇이 단순한 호감과 사랑을 가르는지. 양귀자의 모순에서는 정우에게 자신의 엄마를 숨기고 잘 사는 이모를 엄마라 속이는 스스로를 보고 영규가 아닌 정우를 사랑한다고 판가름한다. 그러나 나는 그 해답에 의문이 끝나지 않았다. 더 나은 자신으로 감추는 게 사랑이려나. 감정은 그럴 수 있어도 정의는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그 반대여야 더 깊어지지 않을까.
사랑을 하고 있는, 혹은 사랑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도 물었다. 사랑이 무어냐고, 언제 사랑한다는 감정을 느꼈느냐고. 그들은 고민하다 "그냥 어느 순간" 이라고 답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렇게 말한다,
“난 보고싶단 말이
사랑한단 말보다 더 진짜 같아
사랑은 추상적이고 어려운데
보고싶다는 참 명확해“
보고있으면 좋은 것과 보고있지 않은데 보고싶다는 건 다르니까.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난 이 대사가 실용적이라고 생각했다. 모순의 사랑법은 너무 문학적이고 사랑의 기억법은 너무 모호하다. ‘대도시의 사랑법’의 구분은 현실적이고 직관적이다.
두 번째 사랑은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다. 영화의 가장 첫 부분에서 남자와 키스를 나누다 재희에게 들킨 흥수는 약점 잡으니 좋냐고 화를 냈는데, 이에 재희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
우리는 참 나약한 사람들끼리 나약함을 주장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가만히만 있어도 버티기 힘든데 스스로조차 의심하며.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는 바보 같지만 내일이면 그런 바보 같은 일을 스스럼 없이 하고 있겠지. 이 말을 던진 재희마저도 자신의 나약함을 한껏 드러내고 또 그 나약함을 없애려 나 자신을 없애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게 책에서도 나오는, 산부인과에서 훔쳐온 여성 성기 모형이다. 아이가 생겨 산부인과에 간 재희는 나이 지긋한 의사에게서 자신의 삶을 부정당한다. 분에 못 이겨 산부인과의 성기 모형을 가지고 뛰쳐 나온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정말로 내가 자초한 재앙이라는 불안함과 여성이기에 겪어야한다는 불합리함이 동시에 존재한다. 성기 모형은 지극히 사실적이고 정형화된 사물이지만 그것이 재희의 약점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후 화병에 꽂혀있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애인에게 대응할 때 쓰이는 등 그 정형화된 사실이자 약점을 다면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가꿈으로써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걸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여성이 같은 구조의 성기를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다루고 아끼는지에 따라서 매우 다면적이다.
마지막 세 번째 사랑은 우리에 대한 사랑이다. 타인에 대한 사랑.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혼자서는 먹지도 못하고 말도 못할 때부터 바라온 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부모로부터의 무조건적인 사랑. 사랑은 그런 것이다. 조건이 달리는 순간 결핍이 있다. 울지 않으면 사랑해줄 거야, 공부를 잘 하면 사랑해줄 거야. 그런 사랑은 우리가 바라는 사랑 따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에게 해줘야할 사랑은 무조건적이어야 한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함부로 조건 달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없다면 무관심이 차라리 낫다.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완전히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함부로 누군가를 안다고 말하면 안 된다. 그러나 누구도 자기 자신을 완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함부로 누군가를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함부로 판단하는 순간 나를 함부로 판단하도록 내치는 것이다. 재희는 밤 늦은 귀가를 걱정하는 남자 직원에게 이렇게 말한다.
“남자들이 일찍일찍 다녀야
여자들이 밤에 안전하지 않겠어요?”
걱정하는 사람에게 할 말이냐고 하면 나도 할 말 없지만, 이 대사의 핵심은 발상의 전환이다. 자신의 관점으로 내뱉은 말들을 비슷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각각 내뱉으면 개인적인 것이 당연한 것처럼 굳어진다. 세상엔 얼마나 많은 특성들이 있고 그렇기에 얼마나 많은 선입견들이 있을까. 내가 당연하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당당할 수 있으며 동시에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다.
곱씹을 수록 좋은 영화이자 책이며 일상을 사는 순간순간에 뜻하지 않게 곱씹게 되는 말과 글이다. 문자로서도 좋았지만 김고은과 노상현의 목소리, 각색된 서사가 덧붙여지자 책에 생명이 더해진 느낌이었다. 때로는 연사의 강연이나 유명한 점술가의 조언보다도 문학과 예술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무심코 펼쳐든 해답의 책 속 한 문장에 그간의 고민을 정리해버리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