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ne Orchid 당연함을 벗고 자연한 향
마르지 않는 난초
그녀는 매주 수요일 아침 5시, 마을버스 8번을 타고 수영장에 간다. 자유 수영 표를 끊고 첨벙 소리와 웃음소리가 웅웅 울리는 레인 옆, 탕처럼 작은 곳으로 향한다. 똑바로 서면 엉덩이 밑에서 찰박거리는 높이다. 딱히 스트레칭이랄 것도 없이 미끄러지듯이 일렁이는 바닥에 앉는다. 무릎을 가만히 세운 채로 다리가 풀어지지 않도록 팔로 꼭 끌어안으며. 눈을 부릅뜬다. 눈이 살짝 화하더니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 한동안 그렇게 가만히 있는다. 시간을 꼭 정해두지는 않지만 적당히 손가락에 주름이 질 때쯤 그녀만의 수영을 끝내곤 한다. 점 찍어둔 로커가 하나씩 있는 어머님들 사이를 피해 구석에 쭈그려 앉아있으면, 간혹가다 이런 말을 듣는다.
“아니 왜 거기 아기들 탕에만 들어가 앉아있는 거야~같이 와서 해요 괜찮아.”
살갑게 대화하는 게 낯선 그녀는 웃는 척 기를 쓰며 네에-로 적당히 무마한다. 그러면 멋쩍은 듯 혼잣말하며 머리를 매만지는 아주머니를 뒤로하고 얼른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그녀는 자유 수영을 끊고 탕 같은 곳에 가만히 앉아만 있는다. 물을 싫어하는 건 아닌데, 수영을 하는 건 또 아니니 물을 좋아한다고 하기에도 뭐하고. 그녀 자신조차도 콕 집어 말하기가 어렵다. 물을 좋아하진 않지만 물속에 있으면 시간이 느려지는 게 좋다. 물 밖의 소리들이 뭉개지는 게 좋다. 물속에선 눈물이 흐르지 않는 게 좋다. 설령 눈물이 나더라도 티가 안 날뿐더러 눈이 매워서라는 변명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일반적인 세상과는 다른 원리로 돌아가는 것이 좋다. 게다가 수영장은 인공적인 락스 냄새가 난다. 그게 누군가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도피처 같아서 좋다.
수영장에서 옷을 입고 나오면 한동안은 수영장 안에 머리를 대고 다니는 것만 같다. 머리카락에 남아있는 살짝의 수분감이 그런 기분을 준다. 평소라면 수영장 근처 밥집을 간다. 그곳에서 하얀 누룽지를 언제나 시켜 먹는다. 그러면 그릇에서 나오는 뜨끈한 김이 머리를 살짝 말려주면서 산뜻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오늘은 평소와는 다른 일정이 있다. 지하철을 타고 고속버스터미널 역에서 버스표를 뽑는다. 속초행 티켓을 뽑아 들고 8번 플랫폼에 가 앉는다. 출발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있다. 그렇다고 간단히 안에서 식사를 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라 터미널 내 작은 빵집에서 단팥빵 하나를 사 앉는다.
그녀가 속초행 티켓을 끊기까지는 장장 삼 년의 세월이 걸렸다. 단순히 시작부터 셈만 하였을 때 삼 년이고, 그 과정을 생각하자면 그녀의 인생 전부가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거기서 칠 년을 뺀 이십몇년의 세월. 삼년 전 그녀의 심리상담사는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목표를 가지라고 권했다. 그 일은 모든 추모 공원에 전화를 돌려 이현동이라는 사람을 찾는 일이었다. 그녀는 전국의 모든 추모 공원을 포함해 그가 안치될 만한 모든 곳, 천여 곳 중 876번째 추모공원에서 연락을 받았던 것이다. 연락을 받은 적이 처음은 아니었는데, 35번째에서는 78년생의 이현동 씨였고, 한동안은 무료한 연락만 돌리다가 135번째에는 00년생의 이현동 씨, 256번째에는 65년생의 이현동 씨, 어떨 때는 이현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도 있었고, 막상 가보니 이 현자 도자였던 이를 추모했던 적도 있었다. 그녀는 남녀노소의 이현동 씨와 그 비슷한 사람들의 죽음까지도 알게 되었다가, 드디어 얼마 전 한 추모 공원에서 84년생 이현동 씨가 있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그녀는 평소처럼 검은색 재킷과 무릎 언저리까지 오는 같은 색의 핀 스커트 차림이다. 가방도 단촐한 검은색 사각 크로스백뿐이다. 지하상가 어느 가게에선가 샀던. 평소와 다른 건 형형색색의 운동화뿐인데, 디자인이 촌스러운지라 눈에 띄면 안 될 것 같지만 검은색 차림에 색이 들어간 것은 신발 하나라 보는 이로 하여금 어딘지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녀는 여느 때보다 태연하다. 근래에 이토록 편안했던 적이 있던가. 굳이 다른 옷을 선택할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신발만큼은 딱딱한 구두를 신고 싶지 않았다. 보기엔 불편해도 발만은 편한 운동화였다. 평소 같은 수요일이라면 그녀는 딱딱한 구두를 신고 회사에 간다. 그녀는 사장 최 씨의 스케줄을 관리하고 미팅을 준비하고 전화를 연결하고 커피를 준비하고 그녀의 나이보다 많은 난초를 닦는다. 그러나 오늘은 휴가를 냈다. 휴가를 낸 건 어제 오후 네시, 퇴근 두시간 전이었다. 웬만한 사연이 있지 않고서야 받아들여지지 않는 시간인데, 그녀가 불쑥 평소답지 않게 굳은 문을 두드리고는 내일 쉬어야겠다고 통보한다. 사장 최 씨가 당황하여 어물쩡거리는 사이 문이 다시 닫혔고 그가 화가 나 있을 이 시점에 그녀는 속초행 버스에 올라타는 중이다.
버스에 앉으니 운동화가 가려졌지만 그래서인지 더 눈에 띈다. 주황색 모자와 초록색 가방과 빨간색 점퍼들 사이에 검은 재킷을 입은 여자. 대부분 일행 없이 올라탄 수요일 버스는 유일하게 중얼거리고, 그녀는 잠을 자지 않는다.
속초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같은 버스를 타고 일시적으로 운명을 같이한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진다. 게 중 반은 화장실을 잠시 들르고, 한 50대 남성은 잔치국수 집에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가며 한 20대 여성은 어머니로 보이는 가족의 품으로 쏙 안기지만 그녀는 망설임 없는 걸음으로 택시를 잡는다. 불과 반나절 전에 들은 장소의 이름을 오래 가봤던 곳처럼 무심하고 자연스레 얘기한다. 운전기사 박씨는 흘끗흘끗 그녀를 보며, 무슨 일로 수요일에 속초에 왔대 보아하니 여행 온 것도 아닌 것 같고 여기 가족이 있는감 한다. 그녀가 말이 없기도 했지만 딱히 대답할 시간도 두지 않고 박씨의 자녀가 모 대기업을 다닌다는 얘기를 이어 나간다. 그녀는 박씨 같은 사람에 익숙하다. 호기심도 많지만 그 호기심이 주로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부류인지 아닌지를 파악하기 위함인 사람. 그녀는 매일 같이 그런 사람을 상대한다. 어제만 해도 그런 뻔한 속뜻을 모른 척하는 웃음으로 돈을 벌었다. 그러나 오늘은 돈을 내는 사람이 그녀였기에 되묻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매일 같은 습관으로 어정쩡한 웃음 정도는 지어 보인다.
그녀가 강원도에 온 것이 처음은 아니다. 마침 그때도 막 여름이 시작되려고 했던 이맘때쯤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나 택시도 아니었고 그녀 혼자도 아니었다. 비가 왔던가, 아니 비가 오진 않았지만 차 안엔 습기가 가득했다. 며칠 물을 갈지 않은 어항 속 물고기처럼 뻐끔뻐끔 눈치를 보며. 아, 그녀의 아버지도 운전기사 박씨와 비슷한 사람이었다. 그의 차 뒷좌석에는 안전벨트를 맨 난초가 있었고 난초는 화분에 띠를 하나 더 두르고 있었는데 그건 보다 화려한 색이긴 했다. 어렸던 그녀는 난초의 옆에 앉아있었다. 손을 뻗으면 건너편 그 꽃에 간신히 손가락이 닿았는데 간지럽히려는 모양이긴 했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간절했다. 겨드랑이가 뻐근할 정도로 애써가며 그 꽃을 한 줄기 꺾어 쥔다. 꽃을 해하려는 것도 아니었고 화분의 화려한 띠를 무색하게 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 그녀는 더더욱 단순했다. 그저 꽃다발 비스무리한 것을 쥐어보려는 마음이었다. 으레 아버지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문을 밀고 들어올 때면 손에 그것이 들려 있곤 했으니까. 그러면 한동안 쥐 죽은 듯 가만히 있던 엄마가, 얼굴색이나 부지런히 욹으락붉으락 했던 엄마가 그것을 받아들고는 흥얼거리며 냄비를 달그락대곤 했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간절히 꽃을 꼭 쥐었다.
그간 한 치의 주저함 없이 속초의 도로까지 달려온 그녀가 잠시 몸을 옴짝달싹한다. 신호가 바뀌고 곧 출발하려는 그에게 전에 없던 다급함을 보인다. 아저씨 잠깐만요 잠깐만 세워주세요. 운전기사 박씨는 깜짝 놀라 어물쩡 그녀의 말대로 갓길에 차를 세운다. 그녀는 보폭이 좁은 핀 스커트에 발이 편한 운동화를 신고는 재빠르지만 종종거리는 걸음으로 꽃 트럭 앞에 다다른다. 바깥엔 핑크색 파란색으로 주름 잡힌 장미들이 있지만 그녀의 눈은 트럭 안쪽 건너편을 향한다. 장사꾼 이 씨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뭐 찾는 꽃이 있냐 묻는다.
“난 있나요?” 장사꾼 이 씨에겐 드문 일이지만 순간 이해를 못 해 엉하고 되묻고 만다.
“난초요.”
그제야 이씨가 아 난초 하며 당황하지 않고 문장의 공백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이런 말 저런 말을 하면서 안쪽에서 화분 하나를 툭툭 털어 온다. 이씨는 으레 하듯 상대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모든 질문에 미리 답을 내뱉는다. 아니 이게 화분이 더 좋은 게 있어서 원하면 금방 바꿔줘 그거는 내가 서비스로다가 딱 다섯장만 받을게 하며 다음 말을 이어 나가려는데 그녀가 화분 없이는 안 파냐고 한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을 한 이씨가 난초를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어디있냐며 얘기를 하려다가 말끝을 살짝 바꿔 얼버무린다. 평일에는 손님이 몇 안 되니까 놓칠 수야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니 그래도 난초는 화분이 있어야지 할 건데 하면서도 쪽가위를 든다. 그녀는 대신 흰 리본을 가리키며 저걸로 조금 묶어줄 수 없겠냐고 한다. 이씨는 그러면 이거는 내가 서비스로다가라고 하면서 화분값과 리본 조각의 가격을 셈하며 오늘은 집 가는 길에 로또를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흰 리본이 가까스로 붙잡고 있는 난초를 조심히 손에 쥐고 다시 택시에 탄다. 난초는 일렁일렁 택시에서 내리고, 한 추모공원의 공허한 공기를 가른다. 그녀는 이현동 씨의 위치를 안내받는다. 앞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이현도 씨인지 이현동 씨인지 혹은 이현봉 씨일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당연한 이름 앞에서 그녀는 눈물이 흐른다. 이름이 고이 적힌 유골함 옆에 얇지만 곧게 펴진 신문 한 귀퉁이가 있다. ‘만 20세 이 모 군이 7세 여자아이를 구하고 목숨을 잃은 사건이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리고 그 옆에 말라비틀어져 조각으로 나눠진 작은 난초가 하나 있다. 낯선 그의 얼굴과 이름 앞에 수많은 하얀 꽃 사이로 가까스로 올려두었던 작은 나의 난초. 가만히 미동도 없었던 그가 금방이라도 물을 뿜어내기를 바라며, 욹으락붉으락 고성과 곡소리가 잠잠해지기를 바라며 달달 떨리는 손으로 내었던 나의 난초. 그 밖으로 아직은 부드러운 잎을 가진 가녀린 흰 옷을 입은 난초를 붙여둔다. 그녀가 몇백 번 찾았던 건 이현동 씨가 아니라 하나의 작은 난초였음을 깨닫는다. 비록 메마르고 조각나있을지라도.
그녀는 여전히 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매일 수요일 수영장에 간다, 마치 그래야만 그녀의 난초가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처럼.
그랑핸드 문예공모전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쓴 소설.
유일하게 거의 다 써 가는 향수이다.
향수라고 하면 향이 강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나는 보다 은은한 향을 좋아한다.
남들이 알아채지 못해도,
이따금 바람이 불면 나만 알아도 좋은 향.
당연함을 벗고 자연히 아름다운 향,
내겐 그랑핸드 마린오키드가 그렇다.
그래서 당연하진 않지만
자연스러워 매력적인 캐릭터를 표현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