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스를 튀기지 않는다고?
전설의 돈가스 제14화.
신동준이 돈가스에 관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믿음 중 하나.
돈가스는 튀김옷 위에 소스를 뿌린 것인데 소스는 다양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두 번째 믿음.
어떤 음식을 확실하게 변화를 주려면 대충 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
변죽만 주어서는 결코 아니 된다는 믿음이다.
이런 유형의 믿음과 관련한 세 번째 믿음은 위 두 가지를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일을 그르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피자의 경우도 그렇다.
피자에 변화를 주겠다는 사람들은 널려 있다.
문제는 그들이 하고자 하는 변화는 진정한 변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획기적인 피자를 만들어 보겠다는 사람들은 대개 토핑을 바꿔보려고만 한다.
신동준이 볼 때 피자의 제대로 된 변화는 토핑이 아니라 빵, 도우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물론 점점 도우에 변화를 주는 피자들이 나오고 있지만, 그 지점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 역시 그의 또 다른 믿음이다.
그렇다면 돈가스라는 음식을 튀겼다는 이유로 먹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변화를 주는 돈가스를 생각해야 할까.
돈가스는 튀기는 걸 전제로 하기에 튀김을 싫어하는 이들에게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면 답이 없다.
과감하게 가야 한다.
신동준은 과감성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
그래? 튀기는 게 싫어? 그럼 튀기지 않은 돈가스를 만들어줄게,라고 생각한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돼지고기를 스테이크 방식으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연결된다.
마치 폭찹처럼.
이렇게 해서 돼지고기에 튀김옷을 입히지 않고, 기름에 튀기지 않고 스테이크 방식으로 구운, '누드 돈가스'가 탄생되기에 이르렀고, 이름 문제를 고민한 끝에 이 돈가스를 개발하는데 단초를 제공한 배현주 손님의 이름을 붙이자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한 문제 제기를 던졌던 배현주 씨는 당시 일본으로 유학을 간 상태였다.
신동준은 지체 없이 일본으로 이메일을 보내 새로 개발한 돈가스 이름 얘기를 던져 배현주 씨를 당혹스럽게 한다.
신동준 : 배현주 손님아, 나 동갓 사장이야. 부탁할 게 하나 있어. 당신이 유학을 떠나기 전에 얘기한 여성들의 튀김에 대한 공포를 해결한 돈가스를 개발했어. 그런데 이 돈가스의 이름을 뭘로 할까 고민하다가 ‘배현주동갓’으로 하면 어떨까 해. 허락해 줘.
유학을 하는 중에 어느 날 느닷없이 고국에서 날아온 돈가스 사장의 이런 메일을 받은 배현주 씨는 당연히 당혹스러워하는 반응을 보인다.
배현주 : 하하하 아저씨, 잘 지내고 계신가 보죠?
멜은 잘 봤는데요, 저 충격받았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실 수 있으신 거예요? 농담이시죠? 시간 많으신가 봐요, 고국을 떠나 있는 옛날 손님을 웃길 수 있는 여유도 있으시고요. 그럼 장사 잘 되시기 바래요.
배현주 씨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비록 자주 가고 적어도 자신은 좋아한 돈가스 집이었지만 느닷없이 새로 만든 돈가스의 이름으로 자기 이름을 쓰겠다는 제의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동준이 누군가.
자신이 생각한 것은 밀어붙이는 사람이 아닌가.
개의치 않고 다시 메일을 날린다.
신동준 : 으하하하, 배현주 손님아. 웃긴다고 했지? 그럼 된 거야, 그게 바로 내가 노린 거거든. 제발 부탁이야, 나 농담이 아니라 진짜 심각하거든. 그러니까 배현주동갓으로 하게 해 주라, 응?
배현주 : 에이, 아저씨 말도 안 돼요.
신동준 : 아니다, 말이 된다. 내가 이 돈가스를 개발할 생각을 하게 된 건 순전히 배현주 손님 덕분인데 왜 말이 안 되니?
배현주 : 에이, 그래도 어떻게... 제가 뭘 했다고..
신동준 : 배현주 손님아, 그대가 누구니? 우리 집 최초의 단골손님 아니니? 난 진짜 손님을 기리기 위한 충정이란다.
이렇게 한국과 일본을 메일이 왔다 갔다 하기를 한 10여 차례.
결국 배현주 씨에게 두 발 손 발 백기를 든 메일이 오고야 만다.
배윤정 : 아저씨, 알았어요. 허락할게요. 저 아저씨 때문에 공부를 못 하겠어요. 제 이름을 붙이든지 친구 이름을 쓰시든지 말든지 아저씨 맘대로 하세요.
신동준 : 으하하하, 배현주 손님아, 고맙다 고마워. 역시 최고의 손님이야. 앞으로 배현주 손님에겐 내 동갓을 평생 무료로 주는 것을 로열티로 할 게. 으하하하!
동갓의 돈가스들 중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재미를 주었던 돈가스인 '배현주동갓'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식당에서 자는 남자
신동준은 집에 들어가는 날이 1주일 중에 하루가 있을까 말까 했다.
들어가는 날도 몸을 씻고 옷이나 갈아입고 한두 시간 정도 눈이나 붙이고 다시 나오는 정도이다.
도대체 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내기에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것일까.
아니, 혹시 안 들어가는 건 아닐까.
다음 날 예약이 첫 타임인 3시 30분부터 있게 되면 소스는 반드시 전 날에 만들어 놓아야 한다.
또 그날 마지막 시간인 8시 타임에 손님이 있었다면 영업이 끝나는 시간은 밤 10시로 보면 된다.
마지막 타임의 손님들이 다 나가면, 모든 할 일을 제쳐두고 그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장을 보는 일.
바로 신촌 로터리로 향한다.
11시까지 하기 때문에 시간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신동준이 시장을 보러 가는 곳은 악마의 53계단을 내려가서 신촌 지하철역을 내려가 반대편으로 가면 있는 곳인 그랜드마트다.
굳이 그랜드마트를 이용하는 까닭은 가까운 데 있다는 것과 밤 11시까지 한다는 점이다.
신동준이 자신의 돈가스를 만들기 위해 시장을 보는 방법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그저 매장 곳곳을 다니며 필요한 재료들을 보고 나쁘지만 않으면 사는 방법이다.
양파, 피망, 당근, 감자 등을 고를 때도 흔히 TV에 요리의 대가라는 사람들이 나와 카메라 앞에서 진지하게 폼을 잡으며 식 재료를 심사숙고해서 고르는 모습, 혹은 최고의 식 재료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철학을 내세우는 모습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그저 질이 떨어지지만 않으면 된다는 주의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고기는 어떤 걸 구매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