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성에 관한 신동준의 생각은 어떠했나.
동갓의 핵심인 식이섬유 소스 역시 저온숙성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렇다면 신동준에게도 숙성은 보다 맛있는 맛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필수 코스일까.
답은 아니다.
숙성은 대세에 지장이 없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회를 놓고 봤을 때 바로 회 친 것이 더 맛있을까, 숙성을 거친 회가 더 맛있을까에 대한 신동준의 답은 무엇일까.
양 쪽의 요리사가 비슷한 실력의 소유자라는 전제라면, 둘 다 맛있다는 것이다.
활어회는 쫄깃쫄깃한 맛이 있고, 숙성회는 깊은 맛이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 종류의 맛을 놓고 봤을 때 어디가 더 질이 떨어지는 맛이라고 그 누구도 확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맛에 있어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나는 회를 하는 데 있어 반드시 숙성을 거쳐야지만 최고의 맛을 지닌 회를 만들어 낼 수 있소! 숙성을 시키지 않은 회는 회의 자격이 없다!’라고 어떤 요리사가 주장한다면, 그것은 맛에 대한 아집이요 독선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맛집의 음식의 맛은 어디에서 결정적으로 결정이 되는 것일까.
재료도 좋고, 숙성도 좋고, 정성도 좋지만 또 하나,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아니 어떤 면에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하나 있다.
분위기다.
맛은 분위기다.
음식은 분위기가 좌우한다.
신동준은 스스로 얘기한다.
“솔직히 동갓이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겠어요?”라고.
“세상에 맛있는 요리가 얼마나 많겠어요, 거기에 비하면 동갓은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동갓이 맛있다는 손님들의 반응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 지점에서 신동준의 맛을 조율하고 통제하는 고도의 전략이 나오는 것이다.
“굶주리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오늘에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3일 전에 예약을 하고 오면 동갓은 당연히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혹 맛이 없다 하더라도 어렵게 마음을 먹고 예약을 하고 찾아온 손님들은 속으로 이렇게 얘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냐, 내 혀가 잘못된 걸 거야, 이건 분명히 맛이 있는 거야.”
맛이란, 분위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가 쑥스러워하며 내게 내민 게 있었다.
“제가 좀 써봤어요.”
시였다.
그대로 보여드린다.
신동준의 詩
오래전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집에 돌아와
울면서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앉아
그렇게 말했다.
소원이 있습니다.
식당을 차리게 해 주세요.
저에게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세요.
그렇게 착한 아버지를 협박한 날이었다.
나는 깊은 산골에 있다.
늦여름 밤 날씨는 아직 후덥지근한 것이 더운 냄새가 가시질 않았다.
새벽이 다가올 무렵이면 푸른 이끼가 뜰에 깔리고
낙엽은 길에 가득하다.
산속에는 찾아오는 발자국 소리 없으나 솔 그림자만 덩그런 남아 나와
대화를 나눈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그들이 친구이고 그 속에서 낮잠을 즐긴다.
목이 마르면 샘물을 마시고
마른나무를 주워 라면 한 봉지 끊여 먹은 후 소주 한잔 곁들여 본다.
음식을 구상할 때 산속을 헤맬 때면 외롭기 한이 없다.
그럴 때면 어머니 뱃속이 그립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요리사가 되어 맛있는 음식을 해드릴 수도 없다.
어머니~~~
밤새 악몽에 시달리다
아찔한 꽃내음에 잠에서 깬다.
저기서, 저기서 뭔가 맛을 뽑아낼 수만 있다면.
역사적 라이벌이었던 일본의 음식 돈가스.
왜 하필이면 돈가스였나.
콜럼버스는 무작정 떠났다.
나 역시 무작정 떠났다.
헤매다 보니 내가 발견한 아메리카 대륙은 공교롭게도
돈가스였던 것이다.
비가 오면 산속에서 계곡물을 보니 장국을 끓이고,
울창한 숲을 보니 야채로 접시에 담으면 좋을 것 같다.
하늘을 보니 흰 구름을 얹어주고 싶다.
먹고 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머리와 가슴을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다.
아무것도 없어야, 비워야
다시 새롭게 뭔가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내가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천하를 얻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지독한 열병.
고뇌.
죽음.
압박.
나의 욕망.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저녁에서 밤으로 가는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푸른 나무와 얼굴을 스치는 미풍
너의 향기와 새의 노랫소리를 오랫동안 꿈꾸었다.
이제 나의 머리와 가슴과 정신은 자줏빛으로 치장되고 양기를 담뿍 받아
수많은 요리법을 펼쳐 놓는다.
그때 감지를 받은 내 온몸이 부르르 떨린다!
새의 울음소리조차도 칼질하는 소리로 들릴 정도이니
내 머리는 이미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내 마음은 온화한 표정으로 음식의 방향을 정리하고 있었다.
형식을 파괴하고 자연의 순리를 따르고 있다.
어느덧 여름밤의 빗방울이 차갑게 대지 위로 떨어지는 것을
여름은 그 끝자락을 향해 달린다.
큰 소나무에서
황금빛으로 물든 솔잎 사이로 빗물이 뚝뚝 떨어진다.
여름도 이젠 지치고 나의 정신도 지쳤지만
힘없는 내 얼굴은 미소 짓는다.
여름은 아직도 오랫동안 나와 함께
안식을 동경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지쳐버린 눈을 감고 꿈속으로 가면서 이전보다 훨씬 복잡한
요리법이 구사되고 있다.
야채와 과일의 용법이 인상적인데 전체적인
조성감이 매우 분명하다.
첫맛은 가벼움을 내는 선율인 것 같지만 전 소스의 기초를 이룬다.
이젠 모든 하던 일을 멈추자.
모든 생각들을 잊어버리자.
내 모든 사고, 감각은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나의 혼미한 영혼은 아무런 감시 없이 자유로이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내가 원하는 요리법이 구상이 안 되면 충격을
받아 극심한 신경쇠약으로 고통을 받는다.
정신은 끓어오르는 듯.
나는 슬픔도 기쁨도 손을 맞잡고 견디어 왔다.
이제 방황을 멈추고.
주위의 깊은 계곡은 어둠이 가득 찼다.
오, 넓고 조용한 평화여 이곳이 진정 나의 안식처일지도.
이 세상을 만든 조물주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