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돈가스인가, 축구공인가.

전설의 돈가스 제19화.

by 김영주 작가

명동의 뒷골목에서 <동갓>이라는 이름의 돈가스 전문점을 하고 있는 신동준에게는 꼭 이루고 싶은 꿈이 2가지 있었다.


하나는 당시 돈가스 전문점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명성을 누리고 있던 <명동돈가스>의 아성을 깨는 것이고, 두 번째는 돈가스의 본고장 일본에 진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2001년 11월 당시 신동준의 판단으로는 <명동돈가스>의 아성은 어느 정도 무너뜨렸다고 생각을 했으니, 이제 남은 건 일본으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일본으로 진출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 고민하던 끝에 일단은 그 전초전적인 성격으로 한일 간에 돈가스 대결을 벌여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던 중, 마침 2002 한일월드컵이 다가오고 있었으니 한일 돈가스 대결 이벤트를 보다 구체적으로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2002년 6월에서 7월 한 달 동안 한반도 전역을 달궜던 한일월드컵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회의 장이기도 했다.


명동에서 동갓을 하고 있던 신동준에게도 다가오는 월드컵은 뭔가 도약을 할 수 있는, 꼭 해야만 하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 그런 기회였던 것이다.


도대체 어떤 이벤트를 할 수 있을까를 자나 깨나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지내 전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백일을 맞아 예약을 했다는 한 대학생 커플을 맞이하던 중이었다.

물론 이 커플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곧 열릴 한일월드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철희야, 이번에 우리나라 16강을 할 수 있을까?”


철희라고 불린 남학생은 여자 친구의 질문에 가당치나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에이, 16강은 무슨, 1승이라도 올리면 최고지.”

“근데, 왜 월드컵을 우리나라하고 일본 하고 같이 하는 거야?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던 거 아냐?”

“글쎄.. 나도 들은 얘기긴 한데, 일본이 유치에 나선 건 더 빨랐다는데 우리가 하두 얘길 하니까 ‘에라, 그래 아시아에서 하는 거니까 너네 둘이 같이 해라, 우린 모르겠다.’ 했다던데?”


여느 때의 신동준 같았으면 손님들의 대화에 바로 끼어들어 분위기를 고양시키거나 반전을 시켰겠지만, 그날은 그저 한 귀로 들으며 요리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근데 일본하고 우리는 진짜 악연이야, 악연. 이거 말이 공동개최지 대결이잖아, 살벌한 대결.”

“그래도 축구는 우리한테 안 된다며?”


남자 친구는 이야기가 계속 축구가 되자 신이 나는지 여자 친구에게 아는 척하기 바빠졌다. 예전엔 여자한테 가장 인기 없는 남자 3위가 군대 얘기하는 남자이고 2위가 축구 얘기하는 남자, 1위가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하는 남자라고 하는데, 확실히 월드컵의 힘은 컸던 것이다.


“뭐 옛날엔 우리가 확실히 우위였는데, 이젠 장담할 수 없어. 일본 애들이 얼마나 지독한 애들인데.”


여자 친구는 축구 얘기가 지쳤는지, 그때 나온 돈가스를 보며 화제를 바꿨다.


“그러고 보니까 이 돈가스도 일본에서 온 거잖아.”


남자 친구는 신동준을 힐끗 보고 나서 여자 친구를 다시 본다.


“그렇지. 일본에선 역사가 굉장히 오래됐다고 하더라고.”

“그럼 돈가스는 우리는 절대 못 따라가려나?”

“에이.. 설마 그렇겠어? 야, 이 돈가스만 해두 일본 애들 돈가스한테 절대 안 꿀릴 걸? 그쵸, 사장님?”


남자 친구는 신동준에게 칭찬이라도 받으려는 마음에서 동의를 구하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신동준은 그 순간 멈칫하고 만다.

전광석화 같이 머리 안에서 한바탕 회오리가 몰아치고 나더니 이내 고요 속으로 들어갔다.


신동준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돈가스 대결이다. 돈가스 한일전이다!’


“사장님! 사장님!”


신동준은 남학생이 세 번을 부른 다음에야 정신을 차렸다.


“왜, 맛없어?”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요리사와 일본의 요리사가 돈가스로 대결을 펼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괜찮은 이벤트였다.

문제는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다.

신동준은 자신의 구상에 대해 한 스포츠신문의 이영주 기자에게 생각을 물었다.

이영주 기자는 예전에 취재를 하고 나서 생각지도 않은 커다란 분량으로 기사를 실어주어 알게 된 사이였다.


“이 기자님, 돈가스쟁이 신동준인데요, 제가 한일월드컵을 활용해서 뭔가 이벤트를 했으면 좋겠는데 좋은 생각 없을까요?”

“글쎄요... 대충 생각하고 계신 거라도 없으세요?”

“뭐.. 돈가스가 일본에서 온 거니까 한일 간에 돈가스 대결 같은 건 어떨까요?”

“우와,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그런 게 실제 이루어지면 화제는 확실히 될 거 같은데요? 추진은 직접 하고 계시는 거예요?”

“아니, 아직... 생각만...”


이영주 기자는 생각을 하는지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음... 사장님, 일단 작게 시작한다는 의미로 사장님이 뭔가 월드컵을 상징할 수 있는 음식을 개발해 보면 어떨까요?”


말하자면 월드컵 관련 돈가스를 개발해보면 어떻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신동준에게는 그 아이디어가 좋은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하고 말 겨를이 없었다.

당장 월드컵 돈가스를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 사냥을 나서기 시작했다.


물론 늘 하던 대로 자연을 향해 몸을 던져보기도 했지만, 아이템이 월드컵인지라 스포츠 용품 센터와 월드컵 관련 물품들을 보러 다니지 않을 수 없었고, 롯데, 신세계, 동대문 등을 닥치는 대로 다니며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좋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기를 일주일 정도 다녔을 때인가, 그날도 스포츠용품을 파는 곳을 한번 둘러보고 나와 공원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초등학생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월드컵이기 때문에 지겹도록 보아 오던 축구공이 그 순간 이상하게 신동준의 눈에 꽂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축구공의 모양을 완성시켜주고 있는 한 조각인 5각형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연달아 드는 생각이 돈가스를 축구공처럼 만들면 되겠다는 발상이었다.


생각을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지, 구상이 서면 그것을 음식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것이다.

신동준은 바로 가게 주방으로 돌아와 축구공 모양의 돈가스를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완성하게 된다.


이 재미있는 월드컵 돈가스는 2001년 12월 12일의 <스포츠조선>에 사진과 함께 기사의 형태로 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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