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신촌에, 전설의 식당이 있었다
전설의 돈가스 - 에필로그
이른바 요즘 핫한 웹소설처럼 쓰려했으나 잘 안 돼버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이야기인 <전설의 돈가스>를 이제 마무리할까 한다. 에필로그 격으로 그동안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2001년 가을 무렵, MBC <찾아라! 맛있는TV(이하 '맛TV')>라는 프로그램의 작가로 참여했다. 기획 단계부터 시작하여 파일럿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바로 정규편성이 되어 무려 16년이나 방송이 된 장수 프로그램이다. 16년 만에 폐지가 된 이유도 프로그램의 인기가 없어졌다거나, 광고 판매가 잘 안 됐다거나 시청률이 떨어져서가 아닌, MBC가 토요일 오전 시간 대에 메이저리그 중계를 하게 돼서라고 알고 있다.
지금이야 '맛집'이나 '먹방'이라는 말을 너무도 당연하게 쓰지만, 2001년만 해도 내가 기억하기로 맛집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맛TV>가 생기면서 쓰이기 시작했다. (당시에도 '먹방'이라는 말은 없었다.)
이렇게, 맛TV가 음식 프로그램에서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운 좋게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팀에 인연을 맺게 되어 음식에 문외한인 내가 음식 프로그램을 하게 된 것이다.
<맛TV>는 최초로 외식을 하는 식당을 소개하는 50분 물이었다.(식당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2001년 이전에 전혀 없었다는 게 아니다. 프로그램 전체 내용을 오롯이 식당만 소개한 프로그램은 처음이었다는 뜻이다.)
3~4개의 꼭지에 각각 꽤 많은 식당을 욱여넣었다. 외국의 식당을 소개하는 꼭지, 주제 관련 7개의 식당을 스피디하게 소개하는 '맛7', 스타가 자주 찾는 식당을 소개하는 '스타의 맛집', 지역의 식당들을 소개하는 '대동맛지도' 등으로 한 회에 최소 10개 이상의 식당을 소개했다.
그렇기에 회 차가 거듭되면서 '맛TV'에서 소개하는 맛집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해져 갔다. 그렇지만 당시 우리나라에 있는 식당이 대략 62만 개였기에 아이템은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2005년 무렵이었다. 출판사 넥서스 편집인의 전화를 받았다. 맛집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메인 작가이니 책을 써보면 어떻겠냐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비록 내가 음식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첫 책을 낸다는 생각으로 덜컥 오케이 했다.
방송을 하며 알게 된 맛집들과 방송과 관계없이 섭외한 맛집들을 취재하여 총 119곳의 맛집을 담았다. 한 집당 2~3쪽 정도를 할애했다. 사진작가가 따로 찍은 사진도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나온 나의 첫 책이 <어디 싸고 맛있는 집 없을까?>다.
그런데, 책이 출간되고 문제가 있었다. MBC에서 태클을 걸었다. 타이틀을 표지에 썼다고. 부제로 조그맣게 'MBC <찾아라! 맜있는TV 작가가 쓴>'이 딸려 있었는데, 편집자도 설마 문제가 될까 했던 이슈였는데, 이슈가 된 거다. 결론만 말하면, 내 인세를 MBC와 반띵 하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그 일을 겪으면서 만약 두 번째 책을 쓰게 된다면, 두 가지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하나는 프로그램 타이틀을 걸지 않겠다는 것, 다른 하나는 여러 곳을 취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맛집에 관한 책을 또 쓰게 된다면, 기필코 한 집만 패리라! 다짐했다. 그래야 온전한 내 이름을 걸 수 있을 테니.
맛집에 관해 또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당시 메인으로 하던 일이 맛집 프로였던지라 틈틈이 맛집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총각네 야채가게>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맛집 한 곳에 관한 책을 쓴다면 이렇게 하리라 생각하며 기막힌 스토리가 있는 맛집은 없을지 눈에 불을 켜고 다니던 어느 날, 이 집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제야 소설에서 밝히지 못한 그 집의 진짜 이름을 밝히겠다.
<신돈갓>이다.
지금은 아마 CGV 신촌일 텐데, 녹색극장이었던 적이 있다. 옆에 가파른 오르막 계단이 있다. 악마의 계단이라 부른. 그 계단을 올라가면 좌우로 작은 길인데 우측으로 20여 미터만 가면 왼편에 있었다. 들어가면 4인용 테이블이 4개가 꽉 차 있는, 아담한 곳이었다.
아마도, 기사를 보고 알았을 거다. 희한한 돈가스집의 존재를. 당시 포털의 강자였던 야후에서 검색을 해보면 신돈갓에 관한 글 혹은 기사들이 꽤 나왔다.
맛TV에서 방송을 일단 했다. 그 인연으로 사장님을 알게 되는데 신동일 대표다. 방송 후에 찾아가 인사를 했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고 나는 오마이뉴스 시민 기자의 자격으로 신돈갓에 대한 기사를 썼다.
난 시간이 날 때면 신돈갓을 찾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곳에 머물렀고 장사가 끝나면 맥주 기울이며 얘기를 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신돈갓에 이르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신동일 사장의 캐릭터가 남달랐다. 돈가스에 목숨을 걸고 장사를 했다. 대기업 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게 된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음식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스토리를 들었다.
신촌에 있지만 알고 보면 쉽게 찾아오기 힘든 뒷골목, 4개의 테이블에 결코 싸지 않은 돈가스를 파는 집이었지만,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고 콧대가 높아 마치 '이렇게 해도 찾아온다고?' 하는 식으로 만들어 놓은 장치들이 매력적이었다.
전화가 아닌 인터넷에 들어가 식당 홈페이지를 찾아 회원 가입 후 송금을 해야 비로소 예약이 되는 집. 하루에 세 타임밖에 없는 집. 돈가스가 코스로 제공되어 식사시간이 최소 1시간 30분이 걸리는 집. 가격이 꽤 높은 집. 수시로 말을 걸고 사진 촬영을 강요하는 집. 손님이 설거지를 하면 1,000원을 할인해 주는 집. 악마의 계단이라 부르는 곳을 청소하면 할인해 주는 집. 듣도 보도 못한 돈가스가 3개 이상 나오는 집. 아이스크림튀김이 후식으로 제공되는 집.
이런 스토리가 있는 집이었으니, '그래, 이건 제2의 총각네 야채가게다!' 쾌재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난 몇 번이나 영업이 끝날 무렵 찾아 사장님과 맥주 마시며 기회를 엿보던 중, 용기를 내어 입을 연다.
"사장님, 아시다시피 신돈갓에 대해 제가 꽤 알게 됐잖아요."
"예. 그렇죠. 근데요?"
"사장님, 이 집 스토리로 책을 한 권 써보면 어떨까요?"
신동일 사장은 나를 바라봤다.
"사장님이랑 저랑 공저로 하고 인세도 반띵."
난 할 말 다 했고 이제는 그의 답을 들어야 했다.
"김 작가님!"
침 꼴깍.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네?"
"제 이야기를 글로 써주실 분을 기다렸다고요."
오예~
"우리 같이 잘해봅시다!"
"그럼요, 사장님!"
우리는 굳게 악수를 했다. 아니, 포옹을 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김 작가님, 근데요, 지금 저랑 같이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네? 어디를..."
"전 무언가 중차대한 사안을 결정하면 반드시 치르는 의식이 있습니다."
"의, 의식이요..?"
"네. 혹시 검룡소라는 곳을 아세요?"
검룡소? 뭐지?
"한강의 발원지입니다. 강원도 정선에 산에 있는데요, 거기에서 물이 나오는데 그 물이 흐르고 흘러 한강이 되거든요. 전 중요한 무언가를 결심하면 그곳을 가서 물을 들이켰습니다. 지금 가실 수 있죠?"
그때 시간은 대략 밤 10시였다. 그런데, 당시의 스토리 전개 상 거절하기도 난감했으니, 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와이프한테 전화할게요."
사장님의 승용차로 길을 나섰다. 휴게소를 한 번 들르는데 그때는 내가 운전대를 잡기로 했다.
두 시간 정도 됐을까. 어느 휴게소에 내렸다. 난 지방을 갈 때 휴게소에 들르면 무조건 사는 것이 있었는데 호두과자다. 그런데 그날만은 이상하게도 평소에 사던 봉지에 넣는 게 아닌 두툼한 박스에 담긴 만 원짜리를 샀다. 손에 힘주어 움켜쥐고 키를 받아 내가 운전을 시작했다.
몇 시쯤 되었을까. 강원랜드 앞을 산 길을 한참 달렸다. 이렇게 깊이 들어갈 수도 있나 싶었을 때,
"작가님, 다 온 거 같네요. 저쪽입니다."
희미한 불빛이 보이는 곳을 들어와 멈춰 섰다. 온통 깜깜했다. 우리는 각자 휴대폰 불빛을 켰다. 조금 걸어가니 안내 간판이 있었다. 검룡소에 대한 설명이 쓰여 있었다.
"이제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됩니다. 가시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호두과자 박스를 들었다. 그리고 사장님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명백히 산이었다.
등산. 휴대폰 불빛만 끄면 깜깜했다. 1미터 앞이 안 보일 정도의 어둠 그 자체. 저벅저벅. 깜깜한 곳을 사장님과 내가 걸어갔다. 저벅저벅저벅. 2개의 휴대폰 불빛과 2가지의 걸음 옮기는 소리만 있었던 깜깜한 산자락. 도대체 얼마나 산을 올랐을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데서는 죽어도 모르겠구나.'
흠칫.
갑자기, 머리가 쭈뼛 섰다.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새벽 3시, 강원도 정선 부근의 어느 산속을 걷고 있는 나와 옆의 한 남자. 180이 훌쩍 넘는 거구의 남성. 솔직히 상식적이지는 않은 사람.
순간 생각을 했다. 내가 혹시 그동안 이 남자에게 실수를 한 게 있었을까. 의식하지 못했지만 이 사람의 기분을 거스르게 한 건 없었을까. 방송작가랍시고 무의식적으로 거들먹거렸던 적은 없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가만!
묻지 마 살인. 꼭 이유가 있어야만 뭔 일을 하나. 동기가 있어야 하나. 여보, 미안해. 이게 내 운명인가 봐. 미안해 정말.
주머니를 뒤졌다. 이곳에 도착할 때 운전한 건 나였고 키는 아직 내 손에 있었다. 다른 손에는 호두과자 박스. 차 키는 날카롭고, 박스는 봉지보다 강하다. 갑자기 나를 넘어뜨린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여기 널린 게 돌들인 거 같은데 돌을 든다면? 잠깐 신발 끈 매는 척하면서 돌멩이 하나 챙겨? 어떡하지? 어떡하지?
"작가님, 다 왔습니다."
"네? 아아아 여기가..."
물이 나오고 있었다. 약수터처럼 자그마한 연못이 형성되어 있었고 옆에는 바가지가 있었다. 흘러나오는 물에 손을 넣었다. 짜릿. 시원했다.
"자, 이 물이 흘러 흘러 한강으로 갑니다. 우리 잘해 보자고요."
"네, 사장님."
건배. 바가지에 든 애기 한강물을 마셨다. 그리고, 후다닥 내려왔고, 시간이 늦었으니 가까운 모텔에서 자고 가자는 제안을 거절하고 운전대 잡아 후다닥 서울로 왔다.
신돈갓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출간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래서 당시 썼던 원고들을 이런 방식으로 활용한 것이다.
신동일 사장과는 어느 순간부터 연락을 못했고 신돈갓은 문을 닫았고 결국 소식이 끊겼다. 그렇게 신돈갓은 전설이 되었다.
돈가스의 혁명을 하고자 했던 신동일 사장. 지금은 어느 곳에서 무슨 작당을 하고 계실지 궁금하다. 혹시 삼겹살의 혁명을 하고 계신 건 아닐 런지...
그동안, 재미없는 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자주는 아닐지라도 틈틈이 글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