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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작가 Dec 18. 2020

1991년 가을, MBC 방송문화원

내가 대학을 졸업한 해는 1991년 가을이다. 전공 필수 2과목에서 F가 나오는 바람에, 무려 8학기를 마치고 군에 갔지만 전역을 하고도 복학하여 한 학기를 다니는 바람에 이른바 코스모스졸업을 했다. 국문과를 나왔기에, 진로는 당연히 글과 관련이 있는 쪽을 생각했다. 당시에 나는 방송작가, 특히 드라마가 아닌 비드라마에도 작가가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 소설을 써서 먹고 사는 전업작가를 꿈도 꾸지 못했고 막연하게 잡지사나 출판사 쪽을 알아볼까 하던 어느 날, 둘째 누나에게 연락이 왔다.


"영주야, 오늘 회사 게시판에서 봤는데 MBC 방송문화원이라는 게 생기는데 보니까 작가반이 있던데? 네가 관심 두는 쪽 아냐?"


나보다 4살이 위인 둘째 누나는 대학에서 첼로를 전공, MBC관현악단에서 첼로주자로 일하던 문화방송 직원이었다. 복도의 게시판에서 방송문화원이 생기고 원생을 모집한다는 걸 우연히 봤고 내게 정보를 준 것이다.


당시에는 홈페이지를 통해 알아볼 수 있었던 거 같진 않다. 이런저런 경로로 방송문화원(현, MBC아카데미)에 대해 알아봤으리라. 내용은 이랬다. 지상파가 MBC, KBS로 달랑 2개만 있던 그 시절, 지상파도 계속 성장하였고 게다가 SBS라는 거대한 지상파민영방송사가 개국을 앞두고 있어 방송인력이 폭발적으로 필요한 시기가 온 것이다. 그중 MBC가 가장 발 빠르게 움직여 방송사상 처음으로 방송인력을 키우는 전문 학원을 설립한 것이다.


학원이라 하지만 돈만 내면 들어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전형절차가 있었다. 작가과정의 경우, 1기생 30명이 모집정원이고, 대학교 졸업생이어야 하고 1차 시험은 프로그램 모니터, 2차 시험은 학원에 와서 하는 작문 시험이었다. 후배들을 보면 면접도 있었다는데 1기도 면접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일찌감치 시나리오작가로 진로를 잡은 과 동기 진구에게 얘기했고, 같이 지원을 해서 대한민국의 방송판을 접수하기로 의기투합했다.


1차 전형인 프로그램 모니터는 예시로 주어진 4~5개의 MBC 프로그램 중 1개를 선택하여 모니터를 작성해서 보내는 형식. 진구와 나는 <PD수첩>을 대상으로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둘이 사이좋게 들어가 열심히 공부하자는 뜻에서 그렇게 했다. 그런데 이런! 진구는 1차에서 탈락하고 나는 붙었다. 왜 그렇게 된 건지는 알 수 없다(글씨를 나보다 못 썼던 건 확실하다). 진구는 자신은 방송과는 역시 인연이 아니었다며 영화판으로 갔고, 나는 2차 시험인 작문을 하러 신천(지금은 2호선 잠실새내역)에 있는 MBC 방송문화원으로 갔고, 주어진 주제에 주어진 시간에 나름대로 글을 썼고, 운이 좋았는지 합격한다. 그렇게 해서 MBC 아카데미 작가과정 1기생이 된다.


지금도 거금이지만, 1기 6개월 과정의 등록금도 꽤 했다. 부모님에게는 대학원 한 학기 다니는 셈 치시라는 논리로 허락을 받았다. 작가과정이 있었고 연출과정(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배우 임호의 여동생이 있었다), 아나운서과정(이재용 아나운서가 동기다), 성우과정, 카메라과정, 엔지니어과정 등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지 지상파에서 설립한 학원에 합격했을 뿐이었는데도 모든 과정의 1기생들은 마치 MBC에 합격이라도 한 것인 양 들떠했다.


총 6개월 과정이었고, 격일로 나가 수업을 들었다. 30명이었고 여성이 27명, 남성은 3명이었고 두 명의 남자는 형들이었고 나만 미혼이었다. 작가과정은 2기부터 드라마과정과 비드라마과정으로 나뉘었는데 1기만 유일하게 드라마와 비드라마 모두를 공부했다. 우리를 실험대상으로 한 것이리라. MBC의 다양한 프로듀서들과 예능, 교양, 드라마 작가 선배들이 번갈아가며 와서 강의를 했다.


학원이라는 게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서로가 익숙해지는 시기가 오면 스터디라는 이름의 패거리들이 형성된다. 작가반도 마찬가지였다. 20대의 나는 꽃미남 과의 남자였다. 게다가 남자는 3명, 나 혼자 총각이었으니 각 동아리에서 나를 영입하려고 무던 애를 썼다. 난 우연히 친해진 몇몇 동기들과 자주 어울렸다. 별 건 아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대면 수업을 잠시 못 하고 있는 MBC 아카데미 구성작가과정은 2020년 12월 현재 74기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주 6일 오전 오후 강의를 수강하는 빡센 스케줄이다. 그래서 3개월 과정으로 줄었다. 내가 다닐 때는 6개월 과정이었고 4개월은 이론 수업, 나머지 2개월은 각 과정의 학생들이 한 팀이 되어 실제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워크샵 기간으로 운영했다. 그런데 나는 워크샵을 경험하지 못했다. 4개월 만에 취업이 된 것이다. 전수조사를 한 건 아니지만, 추정컨대 내가 취업 1호가 아니었을까.


어느 날, MBC <PD수첩> 팀에서 막내작가를 구한다는 공지가 떴는데, 일이 거친 편이니 남자가 있으면 우선 보내달라고 했다는 거다. 남자 셋이 모였고 두 형들은 흔쾌히 나보고 면접을 보러 가라고 했다. 며칠 후, 나는 양복을 입고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 4층 교양제작국 사무실로 뚜벅뚜벅 들어가 <PD수첩> 제작진을 만난다. 이번에도 운이 좋았는지 다음 날부터 나는 신천이 아닌 여의도로 출근을 하게 된다.


여기서 후일담 하나. 당시 교양제작국에는 <여론광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작가 중 한 사람이 과 선배 형이었다. 그 형이 말하길,


“야, 어느 날 니가 양복을 쫙 빼입고 교양제작국 사무실로 들어오는데 깜짝 놀랐어.”

“왜요? 오랜만에 봐서요?”

“그것도 그렇지만 PD수첩 쪽으로 가길래 난 니가 제보하러 온 줄 알았거든. 너가 방송작가 하러 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렇게, 방송작가로서 첫 발을 내딛은 1992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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