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박종원의 키친 프러포즈
웹소설> 식당천재 박종원 대선 출마
2021년 12월 24일 금요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D-75
박종원 후보 캠프 사옥. 크리스마스 캐럴이 나오고 있었다. 점점 거리에서 캐럴을 들을 수 없게 되어 사옥에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캐럴을 들을 수 있게 한 것이다.
3층에도 캐럴은 들려왔고, 커피를 마시던 박종원 후보는 박종원 작가를 콜 했다. 그의 앞으로 모니터 창이 떴다.
‘작가님, 벌써 크리스마스이브네요. 작년 하고는 완전히 다른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고 계시네요.’
모니터 창에 한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전 어차피 믿음이 없는 쪽이라서요. 상관하지 않아요.
‘작가님이 천주교라고 했나요?’
- 중학교 때 친구 따라갔다가 세례를 받았죠. 고등학교 때는 독실한 신자였고요. 근데 대학 들어가고부터 믿음이 잘 안 생기더라고요. 종교라는 게 과학의 눈으로 보면 안 되는데…
‘그렇죠. 그냥 마음으로 봐야죠. 저도 어릴 때부터 개신교, 불교, 가톨릭 다 다녀봤는데 그냥 다 인정하자는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어요. 먹는 게 저한테는 신이라고도 할 수 있고. 하하하.’
- 그거 괜찮네요. 치느님처럼?
‘그게 속 편하죠. 그나저나 요즘 국민의심이 아주 시끄럽네요. 이래 가지고 대선 제대로 치를 수 있을까요?’
- 이준식 대표 또 그만둔 거 말씀하시는 거죠?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던 봉합이 18일 만에 터졌다. 국민의심의 30대 당 대표 이준식과 대통령 후보 윤정열의 삐거덕거리며 이어져 온 불협화음이 기어이 터지고 말았다.
사실 젊은 당 대표를 선출하는 것으로 이미지 쇄신에 성공한 국민의심이지만, 그것만 빼고는 모든 게 쉽지 않았다.
정권교체를 목표로 뛰어야 하는 선수를 뽑는 것부터가 난항이었다. 경선에 출전한 후보들은 10명도 넘었지만, ‘그래, 바로 저 사람이야!’라고 할 만한 이가 없었다.
그래도 선수를 뽑지 않을 수는 없기에 예선과 본선을 거치며 좁혀나갔는데, 최종 결승에 올라온 두 사람의 면면은 많은 이들을 고민에 빠지게 했다.
검사를 하다가 정치인이 되었다는 점만 빼고는 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한 사람은 당 안에서는 따르는 이들이 거의 없는 비주류였다. 또 다른 한 사람은 검사의 옷을 벗은 게 고작 몇 달밖에 안 된, 검사로서는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랐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신인이었고 무엇보다 당 밖에 있었던 인사였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치열하게 우열을 가렸다. 결과는 내부자들이 결정했다.
당원들은 외부에서 막 들어온 정치 신인을 선택했다. 이른바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 싸우면서 ‘공정’의 가치를 신봉해온 사람이라는 점이 어필했다.
하지만, 젊은 당 대표와의 궁합은 아름답지 않았다. 2030 남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온 당 대표와 6070 당원들의 지지를 받고 선택이 된 후보였기에 두 사람이 양쪽에서 이끌며 가운데의 중도 세력을 안으로 정권 교체를 할 수 있겠다는 것이 당 대표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후보의 생각과 행동은 번번이 엇나갔다. 젊은 당 대표가 싫어하는 이들을 굳이 영입했고, 특히 후보의 배우자가 커다란 리스크로 작용하면서 대응에 대한 의견 차이로 결국 폭발한 것이다.
박종원 후보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했다.
‘저로서는 참 이해가 안 가요. 문제 되는 이력서를 제출한 게 한 두 개도 아니고, 민지당에서 정리한 걸 보면 17개인가 18개나 되던데, 그 정도 되면 실수라기보다는 습관인 거잖아요. 그럼 애초에 처음 문제가 불거졌을 때 ’아, 너무 오래전 일이기도 하고요, 제가 잘못한 게 맞네요. 젊었을 때 그 일이 너무 하고 싶어서, 뭘 모르고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하고 납작 고개 숙였으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을 텐데요, 왜 그랬나 모르겠어요.’
- 그렇죠. 이런 건 초반에 터졌을 때 팍! 사과했으면 더 문제 삼는 사람 없을 텐데요. 바로 비교된 사례가 나왔잖아요. 이정명 후보는 아들이 무슨 도박을 했다고 나왔을 때 4시간 만에 바로 사과했잖아요. 수사도 받겠다, 치료도 받겠다, 하는 식으로 신속하게 했어요. 그러니까 별 얘기 없고요.
‘그렇죠. 역시 수습을 어떻게 하느냐가 참 중요해요. 저도 앞으로 무슨 문제가 불거지면 무조건 사과하려고요.’
- 하하하. 박 후보님한테 어떤 일이 나올진 모르지만 무턱대고 사과부터 하는 것도 비호감으로 낙인찍혀요. 일단 뭔지는 알아보신 다음에 하셔야죠.
‘그렇겠죠? 역시 박 작가님하고 대화를 하면 마음이 편해져요. 어제 참 심난했는데 다시 힘이 나네요. 또 뛰어야겠죠.’
- 그럼요. 아직 75일이나 남아 있어요.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몰라요. 파이팅 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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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원 후보가 박종원 작가와의 아침 토크를 마칠 무렵, 대선판을 요동치게 할 소식이 전해졌다. 문대인 대통령이 박근해 전 대통령에 대해 사면을 발표한 것이다.
정부에서는 어제까지만 해도 박근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할 것이라는 조짐을 일도 보이지 않았기에, 오전에 던져진 사면이라는 다이너마이트는 각 당과 대선 후보들에게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박근해 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가.
6070 세대의 많은 수가 향수를 가지고 있는 박정휘 전 대통령의 딸로서 아버지에 이어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청와대에서 생활을 하여 청와대가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던 사람이었기에 그의 대통령 당선은 다시 집으로 돌아간 것에 불과한 사건이었다고도 볼 수 있었다.
문제는 최손실이라는 사람에 의해 장악되어 결국 국정농단의 당사자가 되어 교과서에서만 나오는 단어인 줄 알았던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현실화시킨 장본인이 되었다.
탄핵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려진 자리에 들어간 사람이 문대인 대통령이었고, 탄핵이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검찰의 수뇌부가 윤정열 후보다.
또한 시장 시절 박근해 대통령에 맞서 단식 투쟁을 했던 이는 이정명 후보다. 이러니 박근해 전 대통령에게 내려진 사면이 앞으로 대선판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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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모병제를 실시하고, 2027년의 병사 월급을 200만 원 이상으로 하겠습니다.”
민지당 이정명 후보가 국방 분야 공약을 발표했다. 선택적 모병제라는 공약이 기자들의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다.
“징집병의 규모를 줄이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임기 내에 징집병의 규모를 15만 명으로 축소하겠습니다. 대신 모병을 통해 전투부사관 5만 명을 증원하고 전문성을 가진 군무원 5만 명을 충원하겠습니다.”
“모병제로의 전환이나 기간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모병으로의 대체가 한순간에 갑자기 되는 건 아닙니다. 점진적으로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징집병의 규모도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내부적으로 계산한 건 있지만 오늘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모병제.
그동안 논란은 있었지만 대선 후보에 의해 공개적으로 선언이 된 건 처음이다. 비록 전면적인 건 아닌 선택적 모병제이지만 현재의 징집제도에 변화를 몰고 올 공약이었다.
늘 그렇지만 선거라는 건, 특히 5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대통령 선거는 우리가 사는 사회에 어떤 이슈가 있고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에 대한 집단 지성을 발휘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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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오늘은 박종원의 심야식당이 다소 일찍 준비에 들어갔다.
황규익 작가가 스튜디오에 먼저 나와 콧노래 부르며 준비하고 있었고, 박종원 후보가 들어왔다.
“황 작가님,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그냥 흥얼거리기만 해도 기준 좋아지잖아요. 박 후보님도 해보세요. 괜찮아요.”
“전 노래에 소질이 없어서. 오늘은 좀 일찍 모시기로 했죠?”
“네, 좀 있으면 예약된 분들 들어오실 거예요. 근데 박종원의 심야식당이 문을 여니까 반응이 폭발적이네요. 벌써 국민의심에서는 따라 하더라고요.”
“네? 저희 거를 따라 해요?”
황규익 작가는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유튜브를 열었다.
“그렇다니까요. 이거 보세요. 아무리 봐도 저희 거 따라한 거죠.”
화면에서는 ‘정열이형네 밥집’이라는 타이틀을 한 영상이 플레이됐다.
서울의 한 식당이 배경이었다. 안에서 칼질하고 밥을 볶는 모습이 펼쳐졌고, 곧이어 윤정열 후보가 주방에서 요리하는 장면이 나왔다.
셰프인 것 같기도 하고 진행자이 것 같기도 한 젊은 여성과 함께 주방에 있고, 바 형태의 앞자리에 손님 두 명이 앉아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는 콘셉트. 12월 27일 월요일 오후 6시에 방송된다는 티저 예고 영상이었다.
“에이~ 뭐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따라 했다고는 뭐.”
황규익 작가는 영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냄새가 나요. 손님들을 초대해서 식사하면서 얘기하는 건 누가 봐도 박종원의 심야식당이잖아요. 이 사람들은 박 후보님처럼 본격적으로 할 수는 없으니까 한 식당을 대여했네요. 당장 고소 들어갈까요?”
박종원 후보는 영상을 끄며 웃었다.
“웃자고 하는 얘기죠? 그래요, 우리는 오늘 고소하게 가보죠.”
“고소하게요?”
으하하하하
아저씨 두 사람이 주방에서 대책 없이 웃었고 그때, 구두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박종원 후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음을 멈췄다.
소무진이 들어왔다.
“어 제수씨가 여긴 어쩐 일이세요?”
소무진이 웃으며 말했다.
“어머, 황 작가님도 계셨네요. 이 사람 응원하러 왔죠. 근데 방금 웃는 소리가 들렸는데.”
“제가 좀 웃기잖아요. 잘 오셨어요. 이쪽에 앉으시죠.”
소무진은 바 한쪽에 앉아 둘러봤다.
“화면으로 보던 거보다 꽤 크네요. 옛날에 데이트했던 거 생각나요.”
박 후보가 손을 흔들었다.
“에이~ 별 얘길 다해요.”
“아니에요. 지금 카메라 돌리시죠! 괜찮죠, 소무진 님?”
“네? 아 뭐 네… 후보 부인은 사생활 공개되는 거 감수해야 하더라고요.”
외부에 ‘ON AIR'가 들어왔다. 모니터에 스튜디오가 나타났고, 지나가던 시민들이 발길을 멈췄다.
즉석에서 황규익 작가가 진행하는 박종원 소무진 부부의 토크쇼가 펼쳐졌다.
“소무진 씨, 이 자리에 오니까 데이트했던 게 생각난다고요? 좀만 더 자세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소무진이 웃었다.
“제가 종원 씨 소개로 만나고 며칠 안 지났을 땐데요, 저녁 식사를 하자고 어디 어디로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갔죠.”
박종원 후보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웃고 있었다.
“영동시장 골목 안 쪽이었어요. 지하더라고요. 내려가니까 지금 이런 형태의 키친이 있는 거예요. 거기에 종원 씨가 혼자 딱 들어가 있더라고요. 자기 회사에서 운영하는 랩인데, 온갖 메뉴 다 실험하는 곳이라고요. 그날은 저 한 사람만 위해서 빌렸다는 거예요. 그날 밤 거기에서 종원 씨가 해주는 음식들 원 없이 먹었어요. 그리고…”
“그리고?”
“결혼하자 그러더라고요.”
“갑자기요?”
“네, 갑자기요.”
“정말입니까, 박종원 후보님? 지금 시청자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똑바로 말씀하셔야 합니다.”
박종원 후보가 고개를 들었다.
“네. 프러포즈했습니다.”
으하하하하하.
황규익 작가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한참을 웃었다. 박종원 후보는 소무진을 살짝 밀었다.
“아니, 그런 얘기할 거면 여기 왜 왔어요? 이제 손님들 들어오실 거예요. 자자, 들어오세요~”
그렇게, 박종원의 심야식당이 문을 열었고,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이 깊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