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볼 때리는 여자들 논란

웹소설> 식당천재 박종원 대선 출마

by 김영주 작가

불판 위에 우삼겹을 얹었다.

치이이이익.


젓가락이 들어와 우삼겹을 잡으려 하자 다른 젓가락이 들어와 제지했다. 박종원 후보의 젓가락이었다.


"아직 뒤집으시면 안 됩니다, 허 후보님."


"괜찮습니다. 제가 먹을 겁니다."


허경제 후보는 기어이 우삼겹을 뒤집었다. 붉은색의 빛깔이 전체적으로 퍼져 보였다.


박 후보는 다른 우삼겹 하나를 끌고 와 젓가락으로 살짝 누르며 견제했다.


"근데 이 아침에 연락도 없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허 후보는 우삼겹을 우걱우걱 씹었다.


"TV를 보는데 박 후보님이 말씀하시더군요. 대선 후보 누구든 언제든 오셔서 토론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왔습니다."


"아, 예. 그러시군요. 그렇다고 이렇게 갑옷을 입고 오실 줄은... 갑질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두 후보는 눈을 마주치더니 크게 웃었다.


으하하하하


"저한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니까 오신 건 맞을 텐데요."


허 후보가 다리를 꼬며 얼굴을 박 후보 쪽으로 바짝 들이댔다.


"박종원 후보님, 제 눈을 바라보세요."


"네."


박종원 후보는 싱글거리며 허 후보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두 후보는 그렇게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이제 박 후보님의 몸과 마음이 깨끗이 정화됐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킁킁


"어이구, 우삼겹은 정화되지 못하고 있네요. 탑니다. 어서 드시지요."


허 후보는 우삼겹 두 개를 입 안에 넣으며 말했다.


"박 후보님, 저하고 단일화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박 후보는 쌈을 펴고 우삼겹 하나를 올렸다.


"제가 어찌 신을 자처하시는 분하고 감히 단일화를… 그냥 식사 배불리 하시고 가시지요."


잠시 후, 이런 기사가 포털을 장식했다.


「박종원 후보, 허경제 후보를 신으로 인정」

.

.

.


12월 27일 오후. 서울 목동의 한 스튜디오.


‘방송인 초청 대선후보 간담회’라는 이름의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개그맨 김기라가 진행 마이크를 잡았다.


“네, 대통령 선거 사상 최초로 전문 방송인들이 대선 후보들을 초청해서 얘기를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여러 후보들에게 연락을 드렸는데, 식당 박종원 후보가 가장 빨리 피드백을 주셔서 오늘 첫 번째로 모시게 됐습니다. 인사 부탁드립니다.”


박수와 함께 박종원 후보가 일어나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박종원입니다. 사실 여러분들은 저의 동료이자 선배이자 후배님들이죠. 그런 점에서 이 자리에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얼마나 얘기 나눌지 모르겠지만 많이 질문해주시고 저도 최대한 정성껏 대답하겠습니다. 딱딱하게 무슨 질의응답하는 식으로 말고 편하게 대화한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편안하게 문을 열어서인지 방송인들은 환대의 표정으로 화답했다.


이 자리에 모인 방송인들은 연예인과 제작진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좀 더 세분화하면 연예인은 가수, 연기자, 예능인, 아나운서, 성우 등이고 제작진은 채널의 임직원으로 피디, 기자 및 엔지니어 등이다.


대한민국의 방송을 이끌어 가는 거의 모든 직종에서 방역이 허락하는 인원이 스튜디오에 들어왔고, 유튜브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방송인들은 왜 굳이 대선 후보들을 초청해서 얘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한 걸까.

김기라의 입을 빌어서 들어본다.


“사실 그동안 선거철만 다가오면 우리 방송인들, 특히 얼굴이 좀 알려진 연예인들은 꽤나 불편했습니다. 어떤 편에 서기라도 하면 왜 그쪽에 섰냐고 뭐라 그러고, 안 서면 넌 왜 사회의식도 없냐 그러고. 각자의 편에 서면 서로 으르렁거리고. 그래서 몇몇 뜻있는 분들이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기라가 하는 말에 모두가 경청했다.


“그래서 더 이상 애매모호하게 스탠스를 취하지 말고 아예 대선 후보들을 모셔서 얘기를 나누자, 그리고 각자 어떤 후보를 지지하든 하지 않든 그건 자유롭게 결정하자는 겁니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이 케이팝, 케이드라마, 케이영화, 케이예능이 글로벌 대세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우리 방송인도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 표현해야 하지 않겠냐, 이런 점은 할리우드 배우들에게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아무쪼록 대선 후보들에게 기탄없이 질문하시고 대답이 마음에 안 들면 비판하시면 됩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얘기 들어가겠는데요, 그전에 광고 잠깐 보겠습니다.”


한쪽에는 오늘 방송을 하는 동안 소화해야 하는 제품들이 놓여 있었다. 개그맨 서경식이 맡았다.


“공무원 시험 합격엔 애드립, 공인중개사 시험 합격엔 애드립이죠. 아 내가 오늘까지 이 얘기해야 하나 싶지만 그래도 모델비 받았으니까 합니다. 애드립 많이 애용해주세요~”


김기라가 받았다.


“네, 깔끔합니다. 저희 방송인들이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 한다니까 협찬하겠다는 기업들이 줄을 서서요. 자, 어떤 분이 먼저 얘기하시겠습니까?”

.

.

.


12월 27일, 자영업자에 대해 100만 원의 방역지원금이 지급되기 시작했다.


첫날에는 영업시간 제한 소상공인 중 사업자등록번호 끝자리가 홀수인 28만 9654명에게 100만 원씩 2896억 5400만 원이 지급됐다.


28일에는 짝수에 해당하는 업자가 지급 대상이고 29일부터는 관계없이 신청이 가능하다.

물론 티도 안 나는 지원이라는 불만은 속출하고 있다.

.

.

.

“좀 전에 프로그램 하차 통보를 받았습니다. 편집을 한 건 인정합니다. 그래도 예능인데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에 대한 박 후보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박종원 후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지금 말씀하신 분은 혹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 분인가요?”


“SBC <볼 때리는 여자들>이라는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피디입니다.”


“아, 프로듀서군요. 근데 좀 전에 프로그램 하차 통보를 받았다고요?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이 사안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요. 어느 분이 설명 좀 해주실 수 있습니까?”


연예 리포터 김태준이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연예 전문 리포터 김태준입니다. <볼 때리는 여자들>이라는 프로그램은 각 분야의 여성 연예인들이 여자 축구팀을 결성해서 진정성을 가지고 진심으로 축구를 하는 내용입니다. 문제는 지난주 방송이었습니다. A와 B팀이 경기를 했는데 A팀이 6대 3으로 이겼습니다. 근데 그 과정이 손에 땀을 쥐게 했거든요. 3대 2라는 펠레스코어도 나왔고요. 근데 알고 보니 실제로 한 경기는 5대 0까지 갔다는 거죠. 그러니 이게 재미를 위해 점수를 왔다 갔다 조작했다는 겁니다.”


박종원 후보는 알겠다는 표정을 했다.


“아아~ 알겠습니다. 실제 진행된 경기는 5대 0까지 갔고, 거기에 승자 팀은 한 골 더 넣었고 진 팀은 3골 넣어서 최종 6대 3이 된 거네요. 근데 제작진은 이걸 좀 더 아슬아슬하게 보이려고 1대 0, 2대 0, 2대 1 하는 식으로 해서 3대 2도 만들고 했다는 거고요.”


김기라가 받았다.


“이야~ 역시 박종원 후보님은 똑똑하시네요. 꼭 대통령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우우~ 야유가 일었다.


“농담입니다 농담.”


“근데 그게 어떻게 편집이 됐다는 게 알려진 거죠?”


“어떤 시청자가 매의 눈으로 밝혀냈습니다. 예를 들어 자막 상으로는 4대 2인데 현장의 스코어보드에는 4대 0으로 쓰여 있는 걸 포착한 거죠. 좌우지간, 프로그램 측에서는 편집을 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렇죠, 피디님?”


피디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맞습니다. 사실이니까요. 경기가 5대 0으로 너무 원사이드 하게 진행돼서 끝나고 고민을 했습니다. 피디 작가진들이 회의를 했는데요, 갑론을박이 있었습니다. 의견도 팽팽했고요. 근데 저는 최종 결과만 사실대로 가면 과정은 예능 프로그램의 특성상 편집을 해도 괜찮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좀 더 많았던 겁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많은 시청자분들이 분노하실 줄을 몰랐습니다.”


김기라가 받았다.


“박 후보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종원 후보가 심각한 표정 지었다.


“음, 어렵네요. 근데 얘기를 듣고 보니까 많은 걸 생각하게 하네요. 먼저 여러분 의견 들어볼까요? 손 들어보세요. 편집을 한 건 잘 못한 일이다!”


100여 명 중 절반 정도가 손을 들었다.


“아니다, 예능인데 뭐 그 정도는 어때? 그럴 수 있다!”


역시 절반 정도가 손을 들었다.


“이야~ 팽팽하네요. 이게 결국 방송에서 편집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겠죠. 만약에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었고 실제 피파 같은 곳에서 하는, 케이리그 주관 축구경기였다고 하면 어떨까요? 왜 스포츠 하이라이트 같은 프로그램들 있잖아요.”


김태준 리포터가 말했다.


“그건 당연히 안 되겠죠. 그런 경기는 실제 축구선수들이 목숨 걸고 하는 거잖아요.”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여자 연예인들도 목숨 걸고 하던데요? 진정성 200%라고 했고요.”


“그래도 직업이 축구선수인 경우하고는 좀 구분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자연스럽게 토론이 되고 있었다.


“재미를 위해 편집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요?”


박종원 후보가 말했다.


“10여 년 전에 <나는 진짜 가수다>라는 프로그램 기억하시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쟁쟁한 현역 가수들이 경쟁하는 거였잖아요. 꼴찌는 탈락하고요. 초반에 김건무 씨가 꼴찌 해서 탈락 위기에 처했을 때 경쟁했던 가수들이 다들 말도 안 된다 했고, 그러다 개그맨 김재동이 재도전 기회 주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다시 한 적 있었죠. 당시 김재동 씨가 국민들한테 엄청 욕먹었고요.”


“맞습니다. 그때 엄청 욕먹었죠.”


“당시 일간지 사설에도 언급된 거로 기억합니다. 근데 작년인가 김재동 씨하고 이런저런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때 자기가 재도전 언급했던 이유를 고백하더라고요.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다면서요.”


모든 사람들이 숨죽이고 박 후보를 바라봤다. 김기라가 눈을 크게 떴다.


“아니, 무슨 말 못 한 게 있대요?”


박종원이 말했다.


“그때 작가인지 피디인지는 기억 안 나는데 자기한테 다가와서 슬그머니 쪽지를 건넸대요.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고요. - 재도전하자고 얘기해주세요.”


아아아.


“연출을 한다는 것, 편집을 한다는 것, 재미를 추구한다는 것이 엔터테인먼트에서 본질이죠. 근데 이제는 점점 시대가 공정, 정의하고 떼려야 뗄 수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번 사태도 그 맥락에서 고민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예능 프로그램이 이럴진대 다른 온갖 사회적 이슈에서는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방송인들과 박종원 후보의 때로는 진지, 때로는 유쾌한 토론이 깊어졌다.

.

.

.


12월 28일, 화요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71일 전.


박종원 후보의 집. 소무진 여사가 거울 앞에서 옷들을 번갈아 대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기분 좋은 일 있나 봐요.”


“오늘 프로그램 생방이잖아요. 사전 녹화도 있어서 옷을 여유 있게 준비 해오라네요.”


“아 맞다. 오늘 복귀하는 날이네요. 방송으로만 볼게요.”


“네.”

.

.

.


오전. 강남의 한 스튜디오. 네모세모연구소.


진행자들은 회의에 한창이었다.


“소무진 내용은 이 정도면 되겠지?”


“오늘은 일단 이 정도 질러보고, 반응 보면서 진도 나가자고.”


“오늘 쇼호스트 복귀 첫 방송이라는데, 크크크.”


그렇게, 서로 다른 공간에서 방송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는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6화. 3.5프로TV 그리고 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