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사과의 정석
웹소설> 식당천재 박종원 대선 출마
12월 29일 수요일 오전 7시. 3시간 후 있을 기자회견을 앞두고, 박종원 후보는 박종원 작가를 불렀다. 한글 모니터 창이 열렸다.
- 이따 기자회견에서 어떻게 말씀하실지는 결정하셨습니까?
박종원 후보는 한숨을 쉬었다.
‘네, 기본적인 가닥은 잡았는데요, 작가님하고 얘기하면서 최종 결론을 내리려고요.’
- 선대위원들하고 형수님이 하신 대화는 보고 받으셨고요?
‘네, 받았습니다.’
1시간 전.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있던 박종원 후보를 툭 건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황규익 작가였다. 박종원 후보는 눈을 뜨며 일어났다.
“어우, 제가 잠깐 졸았나 보네요. 어떻게, 얘기는 끝나셨어요? 지금 몇 시죠?”
“아침 6시네요. 네, 제수씨가 탈탈 털어서 말씀 잘해주신 거 같네요. 명료한 사안이라서 길게 정리할 것도 없었습니다.”
황규익 작가가 박종원 후보에게 건넨 건 A4 1장이 다였다. 박 후보는 진지한 표정으로 들여다봤다.
아내 소무진은 20대 시절을 스튜어디스로 보냈고, 30대는 쇼호스트로 활동했으며 40대가 되었을 때 박종원과 결혼했다.
스튜어디스와 쇼호스트는 경쟁이 치열한 사회다.
더군다나 대부분이 여성들로 구성되었고, 조금이라도 상사의 눈에 들고 위로 올라가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쟁자를 누르는 것이 일상다반사였고 그 과정은 아름다운 경쟁과 그렇지 못한 다툼이 공존했다.
문제의 폭행 사건은 서로가 뒤에서 험담을 하고 오해를 낳게 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에피소드였다.
소무진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이 한몫을 했다. 머리끄덩이를 붙잡는 사태로 시작했던 다른 스튜어디스와의 다툼이 소무진의 거의 일방적인 게임으로 끝난 것이다.
그녀들은 그 사건으로 똑같이 징계를 받았지만 더 맞았다는 이유로 20년도 지난 후에 제보를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음은 이력서 관련 시비였는데, 네모세모연구소에서도 모든 사실들을 확정적으로 보도하지는 않았기에 소무진은 영혼을 끌어 모아 기억을 더듬고 지원했던 회사에 연락을 해 자료를 받아야 했다.
그녀가 살아오면서 입사를 위해 지원을 했던 경험은 항공사 두 곳과 홈쇼핑 채널 한 곳이다.
항공사에 제출한 이력서는 대학을 졸업한 후, 6개월 과정의 항공승무원 전문학원에 다니면서 낸 것이 전부다.
문제는 학원을 수료하기 전에 합격이 되어 더 이상 학원을 다닐 필요가 없었는데, 이력서 상에는 학원 수료라고 기재를 했다는 점이 시비를 삼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홈쇼핑 채널에 지원할 때는 경력에 적을 수 있는 내용은 항공 승무원을 했다는 것밖에는 없었다.
다만, 자랑을 조금 더 했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는데, 승무원 근무 7년 차 때 6개월 간 회사의 지원으로 미국의 한 항공사에 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는 해당 항공사와 연계된 대학원에서 8주간의 강의를 수강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미국의 한 대학원 연수로 표현을 했다.
디테일하게 알아보지 않을 경우, 자칫 미국의 대학원에서 6개월간 강의를 들은 것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정확하고 명확하게 표기하지 않은 것이다.
“잘 알겠습니다. 문제 삼을 수 있겠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나머지는 아내하고 정리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제수씨 모셔올게요.”
황규익 작가가 사무실에서 나갔고 잠시 후, 소무진이 들어왔다. 박종원 후보는 다가가 말없이 아내를 끌어안았다.
오전 10시.
1층 기자회견장에 아내 소무진과 함께 마이크 앞에 섰다.
“박종원입니다. 어제 보도를 보고 제 아내하고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과거 폭행사건의 한 당사자였다는 내용, 그리고 항공승무원이 되기 위해 항공사에 지원했을 때와 쇼호스트가 되기 위해 홈쇼핑 채널에 지원할 때 제출했던 이력서의 문제들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려고 할 수 있는 데로 최대한 했습니다. 저희 선대위원님들과 함께 대화를 했고 자료를 모았고, 기억을 모았습니다. 그런 후에 정리를 했습니다. 그 내용은 제 아내 소무진 씨가 직접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소무진이 마이크 앞으로 나왔고 카메라가 터지고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커졌다. 소무진은 마이크를 잡고 입을 열었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공직 선거에 나섰기에 저에 대해 검증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제 보도를 봤고, 곰곰이 따져봤습니다. 20대 때 항공승무원을 하던 시절, 이번에 제보자로 나온 분과 싸웠다는 점, 사실입니다. 무슨 이유로 다투었는지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다음, 보도에서는 디테일하게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제가 그동안 지원을 했던 곳을 떠올렸고 자료를 최대한 구해봤습니다. 많은 곳은 아니었기에 어렵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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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에서 3위를 하며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던 식당 대선후보 박종원이었기에 그의 아내에 대한 보도는 많은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어떻게 반응을 할 것인지 많은 언론에서 주목했다.
박종원과 소무진의 기자회견이 진행될 때 거리 곳곳에서는 TV 화면을 많은 이들이 응시했고, 전철과 버스, 사무실에서는 저마다의 스마트폰으로 시청했다.
소무진은 지원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했던 행동들에 대해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얘기를 했다.
이제, 결론을 얘기할 차례였다.
“국민 여러분, 저 소무진은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숙하겠습니다. 어제 복귀를 하려고 했던 프로그램에서 저는 빠지겠습니다. 제작진에게는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에 따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저와 함께 준비했던 제작진 분들에게는 피해 가는 결과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기자들은 키보드를 두드렸고 속보들이 포털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속보! 박종원 아내 소무진, 복귀 프로그램 하차 발표!」
「박종원 후보 아내 소무진, 잘못 인정하고 자숙하기로 선언」
「전직 쇼호스트 소무진, 쿨 하게 잘못 인정」
하지만, 쿨한 인정과 사과, 발 빠른 행동을 높이 사는 보도들도 적지 않게 올라왔다.
「쿨한 소무진, 사과의 정석 보여줘」
「발 빠른 사과 돋보인 박종원 후보, 아내 소무진」
「다른 대선후보, 앞으로 어떻게 사과해야 하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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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간. 민지당 중앙당사.
이정명 후보와 선대위원들은 박종원 후보와 소무진의 기자회견을 함께 봤다.
새로운 캐치프레이즈와 슬로건을 발표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박종원 후보의 기자회견 소식에 시청을 하고 진행하기로 양해를 구했다.
기자회견이 끝났고, 이정명 후보와 선대위원들은 말을 먼저 꺼내는 이가 없었다.
홍보본부장으로 영입된 전 피디 김영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기자회견을 보신 소감들이 여기 계신 분들이 다 엇비슷해 보이네요. 아무 말씀들 없으신 거 보니. 제 생각에는 이정명 후보님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윤정열 후보가 아니라 박종원 후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이정명 후보님도 신속한 사과 하셨는데, 오늘 박종원 후보 부부가 보여준 사과도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이정명 후보가 받았다.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박종원 후보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셔오고 싶은 분입니다. 만약 제가 대통령에 된다면 어떻게 해서든 같이 정부를 구성하고 싶은 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기자가 손을 들었다.
“오늘 행사는 안 하십니까?”
김영휘 피디가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민지당의 새로운 캐치프레이즈와 슬로건을 발표하는 자리를 갖겠습니다. 발표에는 카피라이터 정찰 씨가 수고해주시겠습니다.”
정찰 카피라이터가 옆에 세워져 있는 단상 앞으로 나왔다.
손에는 포인터가 들려 있었고, 누군가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하얀색 천이 내려왔다.
“네, 민지당 이정명 대선후보가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를 발표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바로 이거였습니다.”
하얀색 천에 파워 포인트로 ‘이정명은 합니다’가 나타났다.
“이정명은 합니다. 이 구호로 지금까지 이정명 후보는 많은 분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왔습니다. 그의 인생이 그래 왔습니다. 여기에 3실, 실력 실적 실천으로 열심히 해왔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이제는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얀 천에 큰 글씨가 나타났다.
‘앞으로, 제대로’
“을지로나 종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윤정열 후보처럼 과거로도 아닙니다. 앞으로 가야 하고, 제대로 가야 합니다.”
짝짝짝짝짝.
정찰 카피라이터는 계속 얘기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앞으로 가고 제대로 가야 할까요? 이정명이 대통령이 되면 누가 좋아야 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하얀 천에 큰 글씨가 나타났다.
‘나를 위해, 이정명’
“그렇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닙니다. 바로 나를 위해 이정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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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서울 관악구의 한 전통시장.
윤정열 후보가 상인들의 손을 잡으며 인사를 하기에 바빴다.
“윤정열! 윤정열! 윤정열!”
윤정열을 연호하는 소리들이 들렸고, 화답하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았다.
아마도 날이 추워서 그런 것이리라.
‘빨간오뎅’이라고 쓰인 포장마차 앞에서 오뎅을 먹는 윤정열에게 다가가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보좌진.
윤정열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봤고 보좌진은 그의 귀에 말을 했다.
갑자기 윤정열이 의자 위로 올라갔다.
“여러분! 앞으로! 제대로! 이게 뭡니까! 민지당 이정명 후보가 내세우는 구호라고 합니다. 무슨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입니까! 정말 유치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슬로건도 들었는데 이렇게 이기적일 수 없습니다. 나를 위해 이정명이랍니다. 여러분, 저는 국민을 위해 윤정열인데, 이게 말이 되는 겁니까! 이런 사람이 저하고 토론을 할 수나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와와와와
“저 윤정열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위해 멸사봉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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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박종원의 심야식당이 시작되었다.
앞치마를 두른 박종원 후보는 씨익 웃으며 얘기했다.
“여러분, 오늘 심야식당도 힘차게 시작해보겠습니다. 방역 지침 상 9시에 마쳐야 하는데요, 대선 후보님들에게 공고해볼까 합니다. 민지당 이정명 후보님, 국민의심 윤정열 후보님, 국민이당 안철순 후보님 그리고 정이당 심상순 후보님, 새로운꿈결 김동인 후보님 중 누구라도 여기에 오시면 따뜻한 음식 대접하겠습니다. 시간 되시면 오시면 됩니다. 자, 그럼 들어오세요~”
그렇게 박종원 후보의 경쾌한 칼질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