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주 작가 May 17. 2022

51화. 양미리와 까나리

웹소설> 식당천재 박종원 대선 출마

주말 동안의 대선 이슈는 토론이었다.


  토론을 해서 이슈가 된 게 아니라, 토론을 할 것이냐 혹은 토론의 방식을 어떻게 할 것이냐, 그리고 왜 나는 토론에 안 끼워주느냐를 가지고 무척 뜨거웠다.


  “법원이 안 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양당만이 참여하는 토론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민지당과 국민의심이 안하무법의 도를 넘고 있습니다! 법원도 선관위도 같은 판단을 내렸음에도 양자 토론을 강행하겠다는 것은 꼼수 담합으로 반민주적인 횡포라 할 수 있습니다!”


  정이당 심상순 후보는 1월 30일 오후 정이당 중앙당 회의실에서 ‘양자토론 규탄 긴급 대선전략위원회’를 열고 철야 농성에 들어갈 것을 결의했다.


  분기탱천한 심 후보보다 먼저 철야 농성을 결정한 건 국민이당 안철순 후보였다.


  일찌감치 국회 본청 앞에 텐트를 설치한 후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제가 밤샘 농성을 하려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기득권 양당의 편법적이고 불공정한 양자 토론에 항의하기 위해서, 두 번째 지금 대한민국이 얼마나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이건 도대체 말이 안 되는 거 아닙니꽈!!!”


  안철순 후보는 양자 토론 협상이 결렬되면 밤샘 농성을 중단하지만, 양자 토론회를 기어이 하게 된다면 토론회가 시작되는 월요일 저녁까지 농성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안 후보와 심 후보가 듀오로 폭발하던 일요일 오후, 민지당과 국민의심은 다음 날로 예정한 양자 토론을 위한 실무 협상을 하였지만, 좀처럼 토론 방식에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초반에 이견을 보인 쟁점은 토론 의제였다.


  민지당 쪽에서는 민생 경제, 외교 안보 등 주제를 구분하여 토론하자고 했고 국민의심 측에서는 주제 제한을 두지 말고 자유롭게 하자고 했다.


  민지당 토론 협상단장 박국민 의원이 나섰다.


  "대통령의 자격이 있는지 보려면 경제, 국방, 외교, 문화 등에 식견이나 통찰이 있는지 검증해야 하지 않을까요?"


  국민의심에서는 성일중 의원이 토론 준비단장으로 맞섰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주제를 집중적으로 하는 게 진짜 토론 아닙니까?"


  오후 내내 팽팽하게 달리던 양측은 민지당 이정명 후보가 페이스북에 ‘원하는 대로 주제 없이, 자료 없이 토론하자’고 올리는 것으로 협상은 재개됐고 진전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번에 쟁점이 된 건 자료 지참 여부였다.


  박국민 의원 - 아니 대선 토론을 하는데 무슨 자료를 가지고 와서 해요? 토론하다가 커닝을 하면서 할 거예요?


  성일중 의원 - 이거 보세요. 얼마나 디테일하게 할 얘기가 많아요. 특히 대정동 부동산 특혜 개발 의혹 같은 주제는 얼마나 복잡합니까. 관련 자료들을 지참해야 토론다운 토론이 되지 않겠습니까?


  박국민 의원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료가 없으면 토론을 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대통령 후보 정도 되면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토론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일중 의원 - 범죄 혐의 관련 자료를 왜 지참하면 안 된다는 거죠? 이정명 후보가 얼마나 교묘하고 괴변을 잘 늘어놓습니까? 요리조리 빠져나가려고 그러는 거 아닌가요? 자료를 들이대면 바로 대답하지 못할 사안이라도 있는 거 아닌가요?


  결국 두 차례에 걸친 토론 방식을 둘러싼 협상은 합의를 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히 양자가 토론을 하기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토론할 것인가를 놓고 합의를 하지 못해 토론을 하지 못할 처지가 된 것이다.


  게다가 토론 협상을 하는 양당에 대해 적개심에 가까운 눈빛을 보내며 철야농성에 들어간 양당이 있는 상황이 되었다.


  토론을 하기로 한 양당은 우왕좌왕, 너희만 토론하는 건 안 된다는 양당은 좌불안석이었다.


  심상순 후보는 의원회관 일각에서 농성에 들어갔고, 안철순 후보는 본청 앞에 투명한 텐트 안에 들어가 농성을 시작했다.


  텐트 안에는 ‘기득권 야합 불공정 TV토론 중단하라!’고 쓰인 현수막을 걸어놓고 유튜브로 생중계를 시작했다.


  “국민 여러분, 민지당과 국민의심이 자기들끼리만 토론을 하려는 것은 누가 봐도 4자 토론의 김을 빼자는 겁니다. 도대체 제가 그렇게 무섭습니까?”


  짝짝짝짝짝.


  텐트 주변에 모여든 지지자들의 박수가 나왔다. 안 후보는 미소 지으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안 후보는 텐트 밖으로 나와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제 뜻을 알아주시고 응원까지 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안 후보는 인사를 나누고 다시 텐트 안으로 들어가려고 몸을 돌렸다. 근데, 더 큰 박수 소리가 나왔다.


  안 후보는 텐트로 들어가려다 크게 웃으며 박수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지지자들이 박수를 치는 방향이 자신 쪽이 아니었다.


  기자들도 박수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향하며 카메라 후레시를 터트렸다.


  안 후보가 소리 나는 곳을 보니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남자는 바로, 박종원 후보였다.


  안 후보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사태를 파악하고 박 후보에게 다가가 주먹 인사를 했다.


  “박종원 후보님이 여기 어쩐 일이십니까?”


  박 후보도 주먹을 맞췄다.


  “안 후보님이 밤샘 하시면서 고생하신다는 데 제가 편하게 집에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얼굴도 뵙고 무리하지 마시라 말씀드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안 후보는 순간 자신의 텐트 속 카메라를 의식했다.


  “감사합니다. 추운데 여기 계시지 마시고 제 텐트로 가시죠. 마침 유튜브 생중계도 하고 있습니다. 제 토크쇼로 초대합니다. 전에 박종원 후보님 심야식당에 초대해주셨잖아요. 이번엔 제가 초대할게요. 가시죠.”


  “어이구, 그럼 그럴까요? 들어가서 천천히 말씀 나누시죠.”


  즉석에서 만들어진 안철순 후보와 박종원 후보의 토크쇼가 성사되었다.


  기자들은 텐트 앞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고, 텐트 안에는 두 후보가 카메라를 보며 앉았다.


  안 후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국민 여러분, 제가 알기로 지금도 국회 안에서는 민지당과 국민의심 간에 양자 토론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서로 양보하지 않는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보십시오, 저하고 박종원 후보는 이렇게 쉽게 같이 자리했습니다. 저희가 훨씬 낫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러네요. 지금 아마도 안 후보님을 좋아하시고 지지하시는 분들이 이 방송 많이 보고 계실 텐데요, 여러분, 양당 간에 토론을 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를 하고 계시는 안철순 후보님에게 응원 많이 보내주시고요, 무엇보다 안 후보님 건강 상하지 않게 많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안 후보는 활짝 웃으며 말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박종원 후보님. 여기는 제가 마련한 스튜디오니까 진행 좀 하겠습니다. 우선,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민지당하고 국민의심이 자기들끼리만 토론을 한다고 해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아니 법원에서도 양당 토론은 안 된다고 했는데 기득권 양당은 토론을 강행하려고 한단 말이에요. 박 후보님은 양당 토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 후보는 급 진행된 안 후보 토크에 함께 하기 시작했다.


  “일단 법원에서 제동을 건 건 양당 후보가 TV토론을 하지 말라고 하는 거니까요, 아마도 지금 협상하는 건 유튜브 중계 방식으로 하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거에 대해서는 뭐 자기들끼리 하겠다고 하면 강제로 막을 수는 없는 거겠죠.”


  “아니, 박 후보님은 두 당이 자기들끼리만 하려고 하는 작태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공식적인 후보 토론이 최소 3번은 열리기로 돼 있으니까요, 일단 토론 준비에 최선을 다해야겠죠.”


  안 후보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박 후보를 봤다.


  “박 후보님은 저보다 지지율도 높잖아요. 근데 1, 2위 후보들이 자기들끼리만 토론하겠다는 게 화나지 않으신가요? 4위 하는 저도 화나고, 5위 하는 심상순 후보님도 지금 철야농성하겠다고 하잖아요. 진짜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꽈!!!”


  박 후보는 씨익 웃었다.


  “물론 나오신 모든 후보들이 다 같이 토론하면 가장 바람직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러면 26명인가 27명이 다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러긴 쉽지 않을 테니까 선관위에서 나름의 기준을 만들어 놓은 거겠죠. 거기에 부합하는 분들이 아마 이정명 후보님, 윤정열 후보님, 저, 그리고 안 후보님에 심상순 후보님 정도이겠죠. 공식적으로 이렇게 5명이 토론하는 건 예정되어 있으니까 다른 후보들이 누구와 하느냐 하는 거야 뭐 제가 뭐라 할 수 없을 뿐입니다. 근데 듣기로 이정명 후보는 5명이 다 하자고 했는데 윤정열 후보 쪽에서 굳이 양자 토론 먼저 하겠다 하는 거 아닌가요?”


  “분명히 제가 해칠까 봐 그런 거 같습니다.”


  카랑카랑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박 후보와 안 후보가 소리 나는 곳을 보자 심상순 후보가 텐트 문을 열고 웃고 있었다.


  박 후보가 벌떡 일어났다.


  “어이구 심 후보님, 어서 오세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박 후보가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를 내주었다.


  그러자 밖에 있던 안 후보의 보좌관이 의자 한 개를 재빠르게 텐트 안으로 집어넣었다.


  의자 세 개가 놓였고 안 후보를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박 후보와 심 후보가 앉는 모양이 되었다.


  ”국민 여러분, 이제 3자 토크쇼가 시작됐습니다. 민지당과 국민의심이 추진하려는 양자 토론이 잘 될까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양자 토론 성사도 못 시키는데 무슨 대통령이 되겠다는 겁니까? 저희는 그렇지 않습니다. 벌써 이렇게 3자 토론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심상순 후보님?“


  ”그렇죠. 이른바 1위 2위 후보들끼리 토론 잘 하시라 그러고, 우리 3위 4위 5위끼리 도란도란 얘기 나눠보는 것도 좋겠네요. 박종원 후보님도 괜찮으시죠?“


  ”그럼요, 여기서 제가 3위니까 살짝 손해 보는 느낌이 없잖아 들긴 하지만, 그래도 국민 여러분이 이런 저희 솔직한 모습 보시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와~ 지금 꽤 늦은 밤 시간인데요, 동시 접속자가 20만 명이 넘었네요. 정말 반응 좋은데요?“


  안 후보의 진행병이 다시 발동했다.


  ”박 후보님, 안 그래도 슬슬 배가 고파지는데 재미있는 음식 얘기 하나 해주실래요?“


  ”그럴까요? 요즘 같은 겨울철 동해 가면 별미가 있는데요, 그게 뭘까요?“


  심 후보가 말했다.


  ”양미리 아닌가요?“


  ”역시 대단하시네요. 맞습니다. 양미리죠. 그럼 까나리 아시죠?“


  질세라 안 후보가 냉큼 말했다.


  ”까나리 알죠. 액젓이 유명하잖아요. 근데 양미리하고 까나리가 무슨 관계라도 있나요?“


  박 후보가 말했다.


  ”까나리 하고 양미리는 사실 같은 겁니다.“


  ”네?“


  ”까나리 하고 양미리가 같은 거라고요?“


  ”그럼요. 서해안에서는 절 자란 까나리를 젓갈로 담가 먹는 게 일반적인 방식이고요, 동해안에서는 다 자랄 때까지 기다려서 구워 먹거나 조려먹죠.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있을 뿐 사실 같은 거예요.“


  그렇게 일요일 밤은 양당은 토론의 방식을 놓고, 세 당은 그들의 방식을 성토하며 동해와 서해처럼 흘러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50화. 대선 토론 다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