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상상 좀 해봤습니다만...>
잠시 후, 좌회전, 좌회전 하겠습니다. 이어서 직진입니다. 딸꾹~
응? 뭐지? 딸꾹질 소리 같았는데.
분명히 딸꾹질처럼 들린 무슨 소리였다.
난 현재 멀쩡한 속으로 운전을 하고 있고 더우기 혼자다.
룸밀러로 뒤를 봤지만 뒷좌석에 누가 있을리는 만무했고 따라오는 차들만 보였다.
신호가 적색으로 바뀌고 멈췄을 때, 왼쪽 옆에 다른 차가 섰다.
예순이 되어 보이는 한 남자가 기침을 한다.
저 사람인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본다. 아무도 없다.
내가 잘못 들었나...?
신호가 녹색으로 바뀐다. 액셀을 지그시 밟았다.
.
.
.
휴우~~~
입을 막고 있던 혜나는 초조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마터면 들킬 뻔했네. 이게 조금만 방심하면 이런다니까.”
“호호호, 또 그랬어? 이번엔 뭐야?”
옆자리에서 근무하는 4842 언니가 킥킥거린다.
“딸꾹질이 갑자기 나와서요. 큰 일 날 뻔 했어요.”
“안 들킨 거 확실해?”
모니터를 다시 한 번 스크린 한 혜나는 그제야 미소를 머금는다.
“예, 그런 거 같아요. 8401이 순간 놀라서 여기저기 돌아보긴 했어요. 근데 뭐 있을 리가 없잖아요.”
“이구, 벌써 몇 번째야, 그러다 진짜 큰 일 치러.”
그때, 혜나 앞의 모니터에 ‘500m 전방, 시속 60km 속도제한구역’ 표시가 깜빡거린다.
4842 언니가 혜나 쪽 모니터를 가리킨다.
혜나는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주시하면서 오른손 검지로 입술 쪽에 있는 버튼을 터치한다.
“500미터 전방, 시속 60킬로미터 속도제한구역입니다. 시속 60킬로미터 속도제한구역입니다.”
그 모습은 마치 성우가 내레이션을 하는 것 같다고 할 것까지도 없는, 내비게이션을 켜면 나오는 안내 소리 그 자체였다.
주식회사 내비게이션.
대외적인 명칭이다.
실제로 내비게이션을 판매하고 영업하는 사업부도 있기는 하다.
빌딩 2층과 3층에 있는 사무실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하층부에는 다른 업무를 하는 사무실이 존재한다.
엘리베이터에 타면 지하 6층까지의 주차장 아래 또 다른 버튼이 있다. ‘BB’라고 되어 있는.
출입이 가능한 카드를 버튼 앞에 대면 엘리베이터는 지하 6층을 지나 꽤 아래로 내려가 한 지점에 멈춘다.
‘BB’가 ‘B13’으로 바뀌고, 문이 열리면 마치 상당히 거대한 규모의 PC방과도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대기업 홈쇼핑 혹은 통신회사의 상담원들이 저마다의 책상에 앉아 소리내어 통화하는 모습을 그려도 된다.
족히 천 명은 돼 보이는 이어폰을 한 여성들이 각자의 모니터를 보며 내비게이션 안내를 하고 있다.
전방에 과속방지턱입니다.
계속 해서 직진, 직진입니다.
잠시 후 좌회전, 계속 해서 우회전입니다.
잠시 후 목적지 부근에 도착합니다.
이상 안내를 종료합니다.
내비게이터라고 불리는 직원들 각각의 모니터에는 담당 운전자가 주행하고 있는 도로가 보이고 안내를 지시하는 지시문이 뜰 때마다 내비게이션 안내를 한다.
목소리는 다 다르지만 전자적 장치를 통해 운전자의 내비게이션에는 동일한 음향으로 출력된다.
이곳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
감시다. 대국민 감시.
국가권력은 수십 여 년 동안 자신들에게 반하는 세력에 대한 감시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지금의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이들은 이렇게까지 비밀로 하지는 않았다.
국정원, 보안사 등의 정보기관은 물론이고 시군구의 조직 일각에서도 버젓이 해왔다.
정권이 교체되고 이들의 몇몇 조직이 타격을 입었지만, 빠른 시일 내로 복구, 지금의 공간으로 들어왔다.
자신들이 다시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도 이 업무는 필수였다.
미행, 도청은 기본이었고 조직에 요원을 침투시키는 방법은 고전에 속한다.
감시 기술의 연구개발로 급기야 차량 내 설치된 내비게이션을 통한 1대 1 감시에까지 이른 것이다.
왜 내비게이션인가.
뭔가 은밀한 대화를 하고 싶을 때 최적의 장소는 차 안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디어를 장식했던 수많은 폭로들, 감추고 싶었던 비밀이 공개되는 데 가장 많이 기여한 이들이 누구인가. 운전기사이다.
이에 착안하여 그들은 자동차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술을 연구했고, 그것이 바로 내비게이션을 통한 실시간 감시 시스템의 개발이었다.
감시를 해야 할 대상이 선정되고 그의 차량이 등록되면 담당 직원이 배정된다.
담당 직원은 운전자 차량 번호를 따 예를 들어 8401 내비게이터라 하고, 그냥 줄여서 8401이라고도 부른다.
감시의 시작은 대상자가 차에 타 시동을 거는 순간이다.
내비게이션이 켜지면 대상자가 탄 자동차 내부의 모습이 나타난다.
내비게이션 우상단에 위치한 눈에 보일락말락할 정도의 미세한 구멍이 바로 카메라 렌즈다.
렌즈는 내부를 환하게 비추고 역시 은밀하게 설치된 마이크 장치로 대상자의 음성이 녹음된다.
몇 명이 탑승을 하든 각자의 목소리가 각기 다른 채널로 들어와 선명한 오디오를 추출한다.
이렇게 감시할 대상자가 차에 있을 경우 완벽하게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대상자가 차에서 나오면?
그 다음부터는 곳곳에 위치한 cc-tv를 통해 하는 수밖에 없다.
카페 같은 내부공간으로 대상자가 이동하면 최대한 가까운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스프링클러가 임무를 이어 받는다.
그렇다고 대상자의 24시간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들도 사실 100%까지 다 알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사실, 어떤 인간이든 51% 정도만 파악이 되면 그의 거의 전부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시스템이 가동된 3년 전에만 해도 이들은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운전자를 감시하려 했다.
하지만, 차량 등록이 2,000만 대가 넘어가면서 결국 욕심이었음을 인정한다.
성인 2,000만 명을 감시하려면 1대 1 감시 시스템에서는 2,000만 명의 직원이 필요한 것이다.
줄이고 줄이고 줄여, 자신들에게 해를 끼칠 위험도가 극에 달한다고 판단한 대상자 1,756명을 추려냈다.
현재 주식회사 내비게이션은 1,756명의 내비게이터들이 같은 수의 대상자를 1대 1로 감시, 아니 안내하고 있다.
그들의 대부분은 자신들이 다시 권력을 잡게 되는 순간 처단해야 할 사람들이다.
8401 내비게이터 이혜나는 약 석 달 전에 발령 받은 직원이다.
2층에서 실제 내비게이션 고객 상담센터에서 근무했다.
입사할 당시, 고객센터 직원 공모에 합격했다.
근데, 근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얘기들이 들려왔다.
자긴 언제 지하로 내려간대?
그러게요, 거기로 내려가면 연봉이 따블이라면서요?
정말요? 거긴 무슨 일을 하는데요?
정확히는 몰라, 확실한 건 입이 무거운 사람들을 추천한다는데?
독실한 크리스찬이면 가산점이 붙는대요.
무슨 비밀 임무라도 한대요?
좌우지간, 지하로 발령 받으면 그날로 인생 편다는 소문이에요.
혜나는 매일 그런 얘길 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자가 왔다.
[사원 이혜나 님을 B13 8401 내비게이터로 인사조치합니다. 2019년 6월3일 07:00부로 명합니다.]
지하 출근용 카드를 발급받아 B13으로 내려와 일주일에 걸친 교육을 이수하고 보안서약서에 서명을 한 후 지금의 8401 내비게이터가 되었다.
높은 연봉때문인 것도 있지만, 누굴 감시한다는 생각은 안 했다.
안내를 할 뿐이라 생각했다.
일 자체가 힘들진 않았다.
근무의 시작은 8401이 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동을 걸 때이고, 퇴근은 집이든 모처든 자동차의 시동을 끄고 멈출 때이다.
근무가 시작되고 2시간 이상 집중하여 일을 해야 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런 경우는 서울을 벗어나 지방을 갈 때뿐이었다.
많아야 한 달에 한 번 있을까.
8401은 거의 매일 1시간 정도를 일하러 가고 비슷한 시간을 집으로 오는데 사용했다.
차에서 있는 동안, 8401이 하는 일은 전화 통화와 동승자와의 대화가 전부였다.
매일 그날 감시한 내용에 관한 리포트를 상부에 보내면 퇴근이었다.
.
.
.
석 달 전쯤 됐을 거다.
주행 중에 내비게이션이 자꾸 말썽을 일으켰다.
엉뚱한 곳을 안내하고 심지어 한동안 안내 방송이 안 나오기도 했다.
내비게이션 회사에 AS 문의를 하니, 수리 대신 다른 기종을 무료 장착해준다 했다. 마다 할 이유가 없었다.
그게 현재의 내비게이션이다.
다 좋은데,
문제는,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엔 라디오 소리인가 했다.
딸꾹질 소리도 들렸다.
수다 떠는 소리까지 더해졌다.
나를 보는 여성, 8401 내비게이터, 이혜나 사원이다.
시동을 끄고 돋보기로 샅샅이 뒤져 알아냈다.
어디서 나를 보고 듣고 있는지를.
그래서 요즘은 차를 타는 건 데이트 하는 거라 생각하며 달린다.
그리고 오늘, 그동안 생각해오던 걸 실행에 옮기려 한다.
.
.
.
“꺅~~~~~!!!”
“왜 그래, 8401!!!”
혜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가, 방금,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무슨 일이야?”
“아니에요. 바퀴벌레인 줄 알았어요.”
“에이, 난 또. 여긴 그런 거 없는 거 몰라? 일해!”
혜나는 손으로 입을 막고 모니터를 주시한다.
정차를 했는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다.
다만, 모니터에 보이는 그림은 바다라는 것이다.
저, 저렇게 가까이 바다가 있는 곳은..?
아... 절벽!
8401이 절벽에 있다. 도대체, 왜?
문제는 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어디 간 거지? 어디에 있지?
차가 주행을 시작한다.
점점, 바다가 가까이 온다.
안돼, 안돼, 안돼!!!!!!
까꿍~~~~!
뭐, 뭐지?
놀라셨죠, 혜나 씨?
꺅!!!
그의 얼굴이 갑자기 아래쪽에서 쑥 올라온 것이다.
“어때요, 이제 그만 숨어 있고 한번 보죠.”
혜나는 떨기만 한다.
“내일 저녁 7시, 제가 수요일마다 가는 거기, 잘 어시죠?”
“네, 네...”
“굿. 내일 봬요~”
딸꾹. 딸꾹.
“하하하. 오랜만에 들으니까 좋은데요.”
그래, 그놈의 딸꾹질 때문이었다.
“뭐해요, 안내 안 하고”
“유턴, 유턴입니다.”
8401 운전자 성주는 기분좋게 차를 돌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