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3. 배철수 vs. 배칠수

단편소설 <상상 좀 해봤습니다만...>

by 김영주 작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후 6시가 되었고, 시그널 음악이 시작됐다.

‘핫 둘 핫 둘 세러디나잇 리벨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디제이 배철수가 입을 연다.

“60억 지구인은 모두 다르게 생겼죠. 지문이 다 다르다는 건 과학적 사실이고요. 또 어떤 게 다를까요. 목소리도 다르지 않을까요. 물론 비슷한 목소리들도 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내는 목소리는 그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그 무엇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의 목소리는 그 사람만의 유일무이한 콘텐츠겠죠. 그렇다면, 누군가가 어떤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요. 나아가 그러한 행위로 유명해지고 돈까지 번다면 그건 또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표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표절.”

오프닝의 내용은 여느 때 같지 않았다.

“저 배철수는 오늘 이 시간 부로 모든 청취자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저, 배철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목소리로 상업적 활동을 하고 있는 배칠수 씨는 그러한 행위를 즉각 중지해주십시오. 계속 한다면, 저작권 사용에 따른 합리적인 사용료를 지급해주셔야 한다고 엄중하게 선언합니다. 일주일의 기한을 드리겠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배캠이 끝나는 오후8시까지입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시작합니다!”

배캠이 끝난 오후 8시. 방송사 앞의 모습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수백 명의 기자들이 운집해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기웃거렸다.

잠시 후 디제이 배철수가 모습을 드러냈고, 기자들이 몰려가 그의 앞으로 마이크를 들이댔다.

“오늘 오프닝에 말씀하신 선언, 진짜입니까?”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정말 배칠수 씨에게 전쟁을 선포하신 건가요?”
“만약 일주일 내에 이렇다 할 반응이 없으면, 그 다음 수순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고소할 겁니까?”

질문이 쏟아졌다.
배철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상 외로 관심이 많으시네요. 여러 생각들이 있으시겠지만 우선 제가 배칠수 씨에게 공을 던졌으니까 어떻게 반응하실지 보고 또 얘기하시죠.”

그런 말에 ‘알았습니다.’ 하고 곱게 물러날 기자들이 아니다.

“배철수 씨, 지금 배칠수 씨와 영상통화 연결이 됐습니다. 말씀 나누시겠습니까?”

발 빠른 한 기자가 스마트폰을 보여주니 영상 안에는 한 눈에 봐도 당혹스러워 하는 표정의 배칠수가 있었다.
기자들은 스마트폰 영상으로 카메라를 들이댔다.

“배칠수 씨, 여기 배철수 씨 나와 계시는데요, 아까 배철수 씨가 라디오에서 하신 발언 들으셨습니까?”

영상 안의 배칠수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배칠수 씨, 한 말씀이라도 해주세요.”
“배철수 씨가 배칠수 씨한테 공을 넘겼다고 하십니다. 그 공 어떻게 하실 건가요?”

배칠수도 입을 연다.

“하아... 뭐, 워낙, 느닷없이 공이 훅 날아와서... 아, 형님 진짜, 갑자기, 지금까지 잘 계시다가... 왜, 왜 그러신 거예요.”

기자들의 시선과 마이크, 카메라들이 일제히 배철수에게 향했다.

“너 이름부터 바꿔, 배칠수가 뭐야 배칠수가.”
“아 형님... 정말 이러실 거예요..”

기자들은 배철수의 입만 쳐다봤다. 세트로 수염까지 봐야 했지만.

“누군가는 했어야 하는 일이야. 이왕 내가 총대 맸으니까 한번 해보자.”

배철수는 기자들을 보며 말했다.

“이제 어떤 형식으로든 공식적으로 하겠습니다. 배칠수 씨 쪽도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배철수는 뚜벅뚜벅 걸어갔고, 기자들은 스마트폰 속 배칠수를 쳐다봤다.

“뭐.. 이왕 이렇게, 돼버린 이상...”

배칠수가 비장한 표정으로 앞을 응시했다.

“배칠수의 음악캠프, 광고 듣고 오겠습니다. 헷헷헷”

이렇게, 배철수와 배칠수, 배칠수와 배철수의 희대의 전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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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수가 배칠수에게 목소리 저작권 사용료를 요구한 사건은 일약 실검 1위에 오르며 거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였다.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배철수와 배칠수 편으로 갈려 토론을 했고, 방송사들은 뉴스를 확대 편성했다.

‘성대모사, 표절인가? 표현인가?’라는 주제로 토론 프로그램이 편성됐다.

생존권의 문제로 다가온 이들도 있었는데, 성대모사와 모창을 주 무기로 먹고 살던 배칠수의 동업자들이었다.

정성호, 김학도, 안윤상 등이 긴급히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시즌5를 2018년에 성공리에 마치고 열정적으로 시즌6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jtbc <히든싱어> 팀은 제작을 중단했다.

나후나, 패튀김, 하추나, 송대곤 등 한국이미테이션협회도 현 상황을 비상시국으로 진단, 비대위를 꾸렸다.

모사를 중요 소재로 하는 코미디와 예능 프로그램도 구성을 처음부터 검토하며 몇몇 프로그램들은 방송 제작을 미루기로 했다.

이렇게 배철수와 배칠수 전쟁은 국민들의 초관심을 모으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마침내 배철수가 제시한 기한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저녁 6시. 상암동 MBC 방송센터 8층의 라디오 스튜디오에서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시작되었다.

같은 시간 1층 로비에는 기자회견장이 설치되었고
그 넓은 로비가 입추의 여지 없이 취재진들과 업계 관계자 및 연예인들로 채워졌다.

LED모니터에는 생방을 하고 있는 배철수의 모습이 보였고, 음악이 나가는 동안 그도 로비를 비추는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6시 5분. 배칠수가 들어왔다. 카메라 후레시가 터졌다.

배칠수는 자리에 앉았고 모니터의 배철수를 잠시 바라봤다.

“제 살아생전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수 있게 해주신 배철수 형님, 아니 배철수 씨에게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모니터의 배철수가 담담히 듣고 있다.

“흉내와 모방은 예술의 시작이고 근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흉내 내기는 무엇보다 희극의 기본입니다. 웃게 합니다. 여러분도 누가 흉내를 내면 웃지 않습니까. 이렇게 흉내를 내고 모방을 하는 건 훔치는 행위가 아니라 엄연한 창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디선가 박수가 나왔다.

“옳소!!!”

구석에서 정성호와 김학도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배칠수가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배철수 씨의 말씀은 저에게 깊은 고민을 안겨주었습니다.”

일순, 조용해졌다.

“네, 제가 배철수 씨 성대모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저는 당사자인 배철수 씨에게 그 어떤 연락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반드시 연락을 해야 한다거나 더욱이 승낙을 받아야 한다는 차원의 말씀은 아닙니다.”

배캠을 비추는 모니터에는 멘트를 하다 멈추는 배철수의 모습이 보였다.

“제가 그동안 했던 적지 않은 광고들도 만약 제가 없었다면 배철수 씨에게 갔을 겁니다. 아마도 제가 단가가 확실히 낮고 효과는 100%이기 때문에 그랬겠죠. 누군가의 목소리 혹은 유행어가 인기를 끌면 저 같은 목소리로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옵니다. 그런 제안이 들어올 때마다 솔직히 ‘이거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무슨 특허 등록이 되어 있는 건 아니고, 유행어라면 말 그대로 누구나 해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늘 마음 한 켠이 무거웠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배칠수라는 사람이 이렇게 진지한 구석이 있나 싶었다. 계속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배철수 씨가 제기한 문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도 고민했던 이 문제, 국민들에게 여쭤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지금 배철수의 음악캠프 생방송 중이잖아요. 방송이 끝나는 오후 8시까지 국민들에게 문자로 의견을 받으면 어떨까요. 배철수 씨의 의견이 맞으면 1번, 틀리면 2번.”

배칠수는 역시 매일 오후 생방송으로 라디오 진행하는 프로 방송인이었다.

“그런 시스템은 몇 분이면 준비되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배철수 씨가 배칠수에게 요구한 목소리 저작권 사용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면 1번, 아니다 그럴 필요는 없다, 다만 뭔가 보완조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면 2번으로 정리하면 어떨까요. 이건 순전히 제 생각인데 그냥 지금까지 대로 계속 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아서 그럽니다. 어떻습니까?”

“아~ 대박!”

방송인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아, 잠시만요. 배철수 씨 의견을 여쭤봐야죠. 배철수 씨, 이렇게 하자는 제 생각에 동의하십니까?”

모두가 모니터를 주시했다.
배철수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시죠.”

시스템은 10분이 지나지 않아 갖춰졌다.
배캠 생방 현장이 TV로 연결되어 사상 초유의 TV와 라디오 동시 생방 시스템이 가동됐다.

MBC 1층 로비의 배칠수와 8층 배철수의 음악캠프 스튜디오에서 생방송 토크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진행자로 손정은 아나운서가 긴급 투입됐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손정은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긴급하게 의견을 여쭙게 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지만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계신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배철수 씨가 배칠수 씨에게 저작권 사용료를 지급하라고 요청했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배칠수 씨는 배철수 씨의 목소리로 돈을 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러한 요구가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손정은 아나운서는 침을 꿀꺽했다.

“문항은 배칠수 씨가 제안했고 배철수 씨가 동의했는데요, 배칠수 씨가 배철수 씨에게 사용료를 지급해야 한다는데 동의하시면 1번을, 그럴 것까지는 없는데 앞으로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면 2번을 누르시면 됩니다. 문자는 1588-1234이구요, 문자 이용료 100원이 부과됩니다. 요즘 MBC 적자잖아요. 지금 시간 오후 7시인데요, 결과는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끝나는 오후 8시에 발표하겠습니다.”

초시계가 가동됐고, 로비 곳곳은 이 상황을 전하는 각 매체의 기자들의 리포팅으로 어수선해졌다.

시청자들의 문자 투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순식간에 1만을 찍고 10만을 넘어 30분이 경과할 때 100만을 돌파했다.

1층 로비에서는 다시 배칠수와 취재진 사이의 질의응답이 시작됐고,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진행되었다.

다만, 청취자들의 문자 내용의 대부분이 1번 혹은 2번이 찍혔을 뿐.

“배칠수 씨, 만약 과반수의 여론이 1번으로 나오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소속사와 진지하게 논의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사용료를 지급해야겠죠. 근데 아마도 배철수 씨 성대모사를 하는 횟수는 줄어들지 않을까요. 헷헷헷! 그럴 수도 있으니까 지금 맘껏 배철수 씨 성모모사 해야겠네요. 헷헷헷.”
“2번으로 언급하신 보완책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그건 생각해둔 게 좀 있는데요, 8시에 결과를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시간은 흘러갔고, 8시가 되어 문자투표가 종료됐다.

놀랍게도 1천만 문자를 돌파했다.

“다시 손정은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문자가 1천1백5십6만8천8백9십2개 들어왔습니다. 국민 대부분이 이 사안에 관심이 있었다는 얘기겠죠.”

로비에서 탄성이 울려 퍼졌다.

“자, 최첨단 컴퓨터 시스템에 의한 결과 발표, 이제 카운트다운 시작하겠습니다.”

화면은 3분할되어, 배철수와 배칠수, 가운데 카운트다운 숫자가 변해갔다.

10, 9, 8, 7, 6, 5, 4, 3, 2, 1…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마침내……

1번 5,784,446
2번 5,784,446

동률이었다.
모두가 탄성을 질렀고, 배철수와 배칠수, 손정은 아나운서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로비에 배철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배칠수는 일어나 배철수에게 인사를 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포옹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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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수 vs 배칠수 사건 이후 한 달이 지났다.

한국저작권협회 산하에 목소리저작권부서가 신설되었고 세부 규정이 마련됐다.

목소리저작권심의위원회에서 특정인의 목소리가 저작권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면 목소리 저작자로 등록되고, 해당 목소리를 방송인(혹은 유명인)이 모사 혹은 활용할 경우, 저작자에게 일정의 사용료가 지급되기로 됐다.

어떤 개그맨의 유행어를 이용하여 광고를 제작하거나 방송에 활용해도 개그맨에게 저작권료가 지급된다.

모든 저작권사용료는 방송사의 제작비에서 지급되는 것으로 규정됐다.

이렇게 해서, 연기자, 작가 등에 이어 목소리도 저작권이 인정이 된 것이다.

배철수와 배칠수, 두 사람은 과연 이런 사태를 예견한 걸까.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끝.

* 본 소설은 실제 인물인 배철수, 배칠수 씨와 전혀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두 분은 좋은 사이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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