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게릴라 거리 유세
웹소설> 식당천재 박종원 대선 출마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8일 남겨 놓은 3월 1일 화요일 오전 8시.
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의 한 언덕 위. 박종원 후보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고스란히 보였다.
“서대문형무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을 만들었다는 게 의미심장하네요.”
황규익 작가도 감회에 젖은 표정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저곳에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고통을 겪었을까요.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겠죠. 저는 그때 태어났다면 아마 독립운동하는 건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
“에이~ 황 작가님은 그때 태어났어도 만주 벌판 달리고 있었을 거 같은데요?”
두 사람은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날이 날인만큼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같은 장소. 제103주년 3‧1절 기념식 참석을 위해 박 후보는 기념관 안으로 들어갔다. 앞줄에는 이정명 후보와 안철순 후보, 윤정열 후보가 나란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 후보와 안 후보는 작은 소리로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고 윤 후보는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때, 막 들어온 민지당 송양길 대표가 안철순 후보에게 다가갔고, 안 후보는 마스크를 했지만 웃는 눈으로 일어나 송 대표와 악수했다.
뒤이어 안 후보에게 다가가 악수를 제안한 이는 국민의심 이준식 대표였는데, 안 후보의 마스크 위 눈웃음이 싹 사라졌다. 자세도 앉은 상태에서 손만 내민 모습이었다.
박종원 후보는 모든 이들과 반갑게 악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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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2시. 박종원 캠프 사옥 1층 앞. 박종원 후보가 나왔다.
스마트폰을 셀프 거치대에 끼우고 오른손으로 높이 들었다. 뒤이어 나온 오상일 피디는 짐벌 카메라를 박 후보에게 향하면서 거리를 두는 모양새였다.
박 후보는 스마트폰이 잘 나오는지 확인하고 라이브 버튼을 눌렀다.
“오 피디님, 준비되셨죠? 저한테는 너무 가까이 붙지는 마시고 자연스럽게 팔로우한다는 느낌으로 갈게요. 오늘은 하루 종일 리얼로 가보자고요.”
“네, 알겠습니다. 나중에 후보님 라방(라이브 방송) 장면하고 제가 찍는 거랑 적절하게 섞어서 유튜브 채널에 올릴게요. 자, 그럼 가볼까요?”
박 후보가 카메라를 보며 앞으로 나아갔다.
“여러분, 기호 5번 박종원 후보입니다. 지금부터 라이브로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이곳 논현 영동시장에서 출발해서요, 전철 타고 말놀이 좀 하고요, 저녁 6시 정도에는 종로 탑골공원 쪽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삼일절이잖아요. 자, 신논현역으로 갑니다.”
국경일인 3월 1일은 원래는 오전 3‧1절 행사만 마치면 다음 날 예정된 마지막 TV토론 준비에 집중할 계획이었지만, 박 후보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행사를 함께 다녀와 토론 준비를 함께 하던 황규익 작가에게 던졌다.
“작가님, 제가 평소 실력으로 토론에 임해야지 오늘 한다고 뭐 크게 달라지겠어요?”
서류를 뒤지던 황 작가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오늘 일정은 어떻게 하시게요. 예정되어 있던 유세 일정도 어제 취소했는데요. 다시 세팅하기는 좀 무리일 거 같은데요.”
옆에서 카메라 장비를 점검하던 오상일 피디가 보였다.
“오 피디님, 혹시 브이로그라는 거 아시죠?”
“젊은 친구들이 자기 일상 찍는 거 말하는 거죠?”
“오늘 그런 거 해보면 어때요? 거리로 나가서 즉석에서 시민들 만나서 얘기하고 얘기 듣고 하는 거죠. 전철도 타고 이동하고요. 뭐 그게 유세 아니겠어요?”
황 작가가 일어났다.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요? 그냥 계획 없이 서울 여기저기 다닌다는 거죠? 재미있을 거 같은데요?”
박 후보도 결심을 굳힌 듯 일어났다.
“그래요, 저한테는 이런 게 어울려요. 오 피디님만 보조 차원에서 촬영해주시죠. 저는 스마트폰 거치해서 라이브 하면서 갈게요.”
“그럼 저는 뒤에서 따라갈까요?”
“황 작가님은 캠프에서 내일 토론 점검 좀 해주시면 되지 싶어요. 오늘은 저 혼자 가볼게요.”
그렇게 해서 전격 길을 나선 것이다. 신논현역 입구가 50여 미터 앞에 보였다.
지나가던 30대 여성 두 명이 박종원 후보를 발견하고 소리치며 다가왔다.
“박종원 후보님, 안녕하세요? 지금 방송하시는 거예요?”
“예, 지금 라이브 중입니다. 인사하세요.”
시민들과 박 후보는 휴대폰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라방을 시작한 지 10분 남짓 되었는데 동시 접속자가 1,000명을 넘었다.
“오늘 휴일인데 어디 가시는 중이세요?”
“일이 있어서 회사 출근하는 중이에요.”
“저런, 무슨 회사가 오늘도 일을 시켜요?”
“저희 사장님 좀 혼내주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휴일에는 직원 분들 좀 쉬게 좀 놔두세요, 네? 이제 됐죠? 그럼, 살살 일 하세요. 파이팅!”
“파이팅!”
박 후보는 지나가는 시민들과 인사를 하면서, 혹은 악수를 하면서 신논현역 1번 출구를 향했다.
박 후보가 카메라를 봤다.
“아, 여기 어디냐고요? 신논현역입니다. 1번 출구고요. 저희 캠프가 논현 영동시장 쪽에 있거든요. 여기에서 전철을 탈 겁니다. 어디로 가냐고요? 그건 모릅니다. 가봐야 압니다. 자,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박 후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사실 저쪽 교보문고 들어가서 제 책들이 얼마나 팔리고 있는지 점검 좀 해야 하는데, 풋! 아, 아닙니다. 교보문고가 지척에 있지만, 거의 못 갔습니다.”
박 후보는 카드를 찍고 플랫폼으로 들어갔다.
“네, 정말 오랜만에 전철을 타봅니다. 학교 다닐 때, 식당 처음 했을 때는 무지하게 탔죠. 버스를 더 많이 타긴 했고요. 근데, 여기 9호선인가? 우와~ 무지 좋네~”
전철이 들어왔고, 박 후보가 탔고 시차를 두고 오상일 피디가 탔다.
전철 안에 앉아 있던 시민들이 박 후보를 발견하고 격한 반응을 했다. 10대 소녀로 보이는 두 친구가 일어나 박 후보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어우~ 아니에요. 전 서 있는 게 편해요. 학생 같은데, 몇 학년이에요?”
“고1이에요.”
“오~ 사춘기 아닌가요?”
“아뇨. 그런 거 같지 않아요.”
“요즘 무슨 생각 제일 많이 하세요?”
“음, 글쎄요... 아무 생각 없어요.”
“아무 생각 없어요? 그 자세 좋아요.”
까르르르.
박 후보가 시민들 사이를 다녔다.
“조용히 이동하고 계시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박 후보가 카메라를 봤다.
“여러분, 전철 오랜만에 타니까 참 좋습니다. 오 피디님, 우리 어디에서 환승할까요?”
오 피디가 다가왔다.
“시청하시는 분에게 맡기는 게 어떨까요?”
박 후보가 카메라를 출입문 위에 붙어 있는 전철 노선표를 비추었다.
“자, 여러분이 정해주시는 역에서 환승을 하면서 시민들 만난 다음에 거기에서 정해주시는 역으로 가서 밖으로 나가 또 만나겠습니다. 자, 어느 역에서 환승할까요? 지금 저희가 타고 있는 건 9호선이고요, 가고 있는 방향은 김포공항 쪽입니다.”
카메라 댓글 창에는 여러 환승역이 떴다. 동작역, 노량진역, 여의도역, 당산역 등이 언급됐는데 가장 많은 건 당산역이었다.
“네, 많은 역을 말씀해주시는데요, 이 역이 좀 더 많은 거 같네요. 당산역에서 환승을 하겠습니다.”
당산역까지 가는 동안 박종원 후보는 전철의 맨 앞 칸에서 끝 칸까지 이동하면서 시민들과 인사하고 대화하고 사진 찍고 기운을 나눴다.
동시 접속자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당산역. 박종원 후보가 내렸다. 환승을 하는 수많은 시민들이 오고 갔다. 박 후보는 시민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기호 5번 박종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기호 5번 박종원입니다. 잘하겠습니다. 기호 5번 박종원입니다. 재미있는 정치 하겠습니다.”
환승 개찰구를 나갔다.
“자, 여기는 환승역인 당산역입니다. 여러분이 정해주시는 역으로 갈까 하는데요, 어디로 갈까요?”
댓글창에 의견들이 쏟아졌다.
- 2호선 합정 방향으로 가서 홍대입구역에 가주세요,
- 2호선 신도림역이 좋습니다.
- 박 후보님, 제가 지금 대림역에 있습니다. 여기로 와 주세요~
- 저도 홍대입구역에 있습니다!
- 후보님, 홍대입구역에 지금 사람들 짱 많아요!
박 후보가 댓글창을 보며 말했다.
“우와~ 압도적으로 홍대 말씀하시네요. 좋습니다. 그럼 여기서 2호선으로 환승해서 홍대입구역으로 가겠습니다.”
박 후보가 2호선으로 환승을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려는 순간, 한 할아버지가 길을 막았다.
“아니 이게 누구여! 무슨 대통령을 한다고 그래? 식당이나 하지!”
카랑카랑한 소리가 울렸고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박 후보는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 예, 맞습니다 맞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그럼 당장 그만둬! 윤정열이랑 당장 단일화 하란 말여!”
“아 예, 깊이 고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지금 우크라이나가 왜 저 모양이여! 코미디 하다가 대통령 돼서 그런 거여, 알아!”
박 후보가 허리 숙여 인사했고 할아버지는 그의 태도에 약간 머쓱해하는 표정하고 자리를 떴다. 박 후보는 에스컬레이터로 올랐다.
“보셨죠? 한 어르신한테 혼났네요. 뭐 그런 생각 하실 수 있죠. 제가 감당해야죠.”
2호선 전철이 왔고, 박 후보가 탔다. 마찬가지로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며 전철을 옮겨 다녔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박 후보를 보며 화답했다.
2호선 당산역에서 홍대입구역은 불과 2개 역이었기에 금방 도착했다. 박 후보는 우측 문 쪽에 서 있다가 맞은편 문이 열리자 화들짝 놀라 뛰어내렸다.
“깜짝 놀랐습니다. 왼쪽 문이었네요. 자 여러분, 홍대입구역에 도착했습니다. 벌써부터 젊음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그럼, 올라가 보겠습니다.”
박 후보는 계단을 올라갔고, 적지 않은 인파를 헤치며 8번 출구 앞으로 나왔다.
꺄악.
박 후보를 발견한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안녕하세요. 기호 5번 박종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박종원 대통령! 기호 5번 박종원!
박종원 대통령을 연호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박 후보는 몰려드는 인파를 향해 거듭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기호 5번 박종원입니다. 재미있는 정치 보여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화답했다. 박 후보는 앞으로 걸음을 옮기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오상일 피디도 촬영을 접고 사람들이 박 후보에게 세게 밀쳐지는 걸 방어했다.
“너무 오시면 안 됩니다! 넘어지시면 큰 일 납니다! 조심하세요! 조심하세요!”
박종원 대통령! 기호 5번 박종원! 밥은 먹고 다니냐!
오상일 피디가 박 후보 앞에서 사람들을 막으며 얘기했다.
“저기 올라가서 간단히 한 말씀하시는 게 좋겠는데요?”
박 후보가 8번 출구 앞에 있는 계단 위로 올라갔다.
“여러분! 여러분! 여러분!!!!”
모여 있던 시민들이 박 후보에게 집중했다.
“시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3월 10일 하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