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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작가 Feb 22. 2023

하늘이 무너져도 방송은 나간다고?

방송 사고에 대한 기억

방송가에 내려오는 격언 혹은 아포리즘 중 대표적인 거 하나,


'어떤 일이 있어도 방송은 무조건 나간다'.


계획한 대로 진행이 안 되고 꼬이고 지지고 볶고 하더라도 희한하게도 방송 프로그램이란 건 나간다는 얘기다. 섭외가 틀어져도 나가고, 완성도가 떨어져도 나가고, 심지어 기획과 전혀 다른 느낌의 영상으로 만들어져도 어떻게든 방영은 된다는 거다.


왜? 안 그러면 사고니까.


방송의 편성표는 시청자와의 약속이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줄 알았다.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그런 걸 하도 많이 봤기에 그런 줄 알았다.


근데, 웬걸, 그렇지 않을 수도 있더라.


2010년대 어느 해 어느 날, MBC에서 아침 생방송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방송이 되고 있다.  


매일 4~5개 정도 미리 제작을 해놓은 VCR 꼭지들을 메인으로 진행자들이 사이사이에 코멘트를 하는 형식이다.


각 꼭지들은 담당 리포터기 있고 자신이 맡은 VCR 순서가 되면 진행자 옆에 나와서 라이브로 간단한 전후 토크를 하고 영상의 내용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을 한다.(당시에 열정적으로 임했던 소수의 남자 리포터 중 한 사람에, 요즘 <미스터트롯 2>에서 맹활약 중인 김용필이다.)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생방송을 하는데 그날은 어김없이 모든 피디와 작가들은 밤을 새운다. 피디들은 편집을 하고 종편실에 가서 자막과 음악, 효과 등을 넣는 종편 작업을 하고, 작가들은 리포터들이 라이브로 내레이션을 할 대본을 작성한다.


각자 완성된 테이프를 들고 와서 종편실의 데크에 넣고 정해진 시간에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된다.


방송해야 할 꼭지가 5개라면, 큐시트에 적혀 있는 순서대로 플레이를 하면 되는데, 문제는 늘 이 순서가 그대로 지켜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뭐 종종 있는 일이다. 예를 들어 2번 테이프가 와야 하는데 도착하지 않았다면 3번을 당겨 방송하면 된다.


그런 경우는 방송사고라고까진 하지 않는다. 방송이 끝난 후 복기를 하며 다음 주에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개선하면 된다. 드라마가 아니기에 각각 독립되어 있는 꼭지들은 어떤 위치라도 방송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이렇게라도 방송이 나가는 일마저 지켜지지 않는 사고가 일어난다.


그날, 테이프 1개가 결국 도착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착은 했지만 너무 늦게 와서 데크에 꽂아 넣어도 의미 없게 된 상황이다.


2번 순서로 예정되어 있던 꼭지였다. 일단 생방송이 시작되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테이프가 있을 때는 해당 피디에게 연락해 도대체 언제 도착하는지 물어본다.


당시 종편실과 엠본부 거리는 택시로 3분 정도 거리. 정문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기다리지 않고 계단으로 뛰어올라와 6층 F부조까지 오는데 길게 잡아 2분이다.


꼭지의 분량은 8분.


생방송을 끝내야 하는 시간이 오전 8시 05분이라면 무조건 7시 57분에는 테이프가 꽂혀야 한다.


전화기는 불이 났고, 담당 피디는 우샤인볼트 급으로 달려왔지만, MC들이 있는 얘기 없는 얘기 하며 시간을 끌고 있던 그 시간은 7시 59분이었다.


몇 초의 시간 동안 팀장 피디는 그래도 테이프를 넣어야 하나 갈등했는데, 부장은 고개를 저었고 스튜디오의 MC들에게 말했다. 주조정실에 얘기할 테니 8시 3분 정도까지만 끌어주고 클로징 멘트 하자고.


방송 프로그램은 예정된 시간에서 2분 내로만 끝내면 대외적인 방송사고는 아니다. 죄송합니다, 만 하면 된다.


그런데, 내가 하는 방송에서, 하늘이 무너져도 방송은 나간다, 는 말이 아닐 수도 있음을 경험했다.


방송을 마친 후 팀장 피디는 부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살려달라고.


5개의 테이프 중 4개로만 방송을 했던 흔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다음에는 한 제작사 대표에게 직접 들은(전언이 아니다) 방송사고 얘기 하겠다. 추억이니까.


돌아보면, 내가 그날 부장이었다면, 테이프를 데크에 꽂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을 거다. 담당 피디를 옆에 세워놓고 5분 정도 다가올 때 스톱해야 하는 지점을 알려달라 하고 스톱 한 후에  매끄럽지 않겠지만 클로징 멘트 했으리라. 그랬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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