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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작가 Feb 23. 2023

방송사고, 이런 일도 있었다?

방송사고에 대한 기억 (2)

내가 직접 겪은 방송사고 얘기는 한 차례 했으니, 이번엔 들은 얘기를 전한다.


식사 자리에서 당사자에게 직접 들었다. 지금은 없는, 꽤 잘나가던 방송 제작사 대표의 얘기다.


내가 살다 살다 별 걸 다 겪었네. 그때만 생각하면... 아우..


무슨 일인데요, 대표님?


우리가 스브스 다큐멘터리를 가끔 만들었잖아. 주말 밤 10시 쯤 나가던.


예. 아이템만 통과되면 어떤 제작사든 제작할 수 있다는 열려 있던 그 다큐 말하는 거죠?


그렇지..뭐 말은 오픈인데 대충 몇몇 제작사들이 돌아가면서 만들었다고 봐야지. 우리도 3, 4개월에 한 번 정도는 들어갔고.


근데 뭔 일이 있었는데요?


사고 한 번 쳤잖아.


사고요? 방송 시간 10분 전에 입고?


그러기라도 했으면 문제 없지. 1분 전에 테이프 꽂기도 하는데.


그럼 늦기라도 한 거예요?


아예 못 들어갔어.


네? 납품을 아예 못 했다고요?


어.


그럼 방송은요?


펑크지 펑크. 우린 바로 아웃 됐고.


그럼 그 시간엔 부랴부랴 다른 프로가 나갔고요?


그야 당연하지.


우와.. 아니 어쩌다가 그런 일이 일어났대요?


한 조연출이 있었어....


다큐멘터리는 별 문제 없이 만들어졌고, 방영 당일 오전 11시 정도, "스브스에 납품하고 오겠습니다, 대표님" 하고 테이프를 들고 나가는 조연출의 모습을 분명히 봤단다.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오늘 밤에 한 식당에 불러 방송 보면서 고기나 먹자 생각했고.


그날은 주말이었고 스브스의 담당 부장(CP라고 한다)은 마침 직원 야유회 중이었기에 전화로만 인사를 나눴다. 테이프 잘 들고 갔고 당일 납품하게 돼서 죄송하다 등등.


스브스로 간 조연출에게 연락은 오진 않았지만 그야 뭐 늘상 있는 일이니 대표도 이런 저런 일 처리하고 사람들 만나며 시간을 보냈는데, 저녁 8신가 9신가 즈음에 CP에게 전화가 온다.


최 대표!


아 예 부장님, 야유회는 잘 즐기고...


입고 안 했어?


네?


다큐 마스터 아직도 안 가져왔냐고!


네? 아까 점심 전에 저희 조연출이 들고 가는 거 확인했는데요.


뭔 소리야, 방송 1시간도 안 남았는데 마스터 안 들어왔대!


착착오가 생겼나 보네요. 제가 바로 확인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방송이 1시간도 안 남았는데 테이프가 방송사에 들어오지 않은 상황.


조연출이 테이프를 들고 간 시간은 정오 전. 스브스에 도착했어도 몇 번 도착했을 시간인데 도착하지 않았다는 건 조연출이 무 교통사고 같은 거라도 일어난 게 아니면 납품을 엉뚱한 데 했다? 아냐 처음 해보는 조연출이 아닌데...


대표는 머리가 지끈지끈 복잡해지면서 조연출에게 전화를 한다. 다행히, 조연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야! 너 어떻게 된 거야! 마스터 납품 안됐다는데!


예, 납품 안 했습니다.


뭐? 뭐? 뭐라고? 납품을 안 했다고!!!


예. 안 했습니다.


그 대화까지는 버럭버럭 고래고래 소리쳤던 대표, 순간 이건 뭔가 다른 게 있다는 직감이 들어 톤을 낮추고 부드러움 코드로 급 전환했다.


OO야, 너 뭔 일이 있는 거구나. 뭐 이야기가 나중에 듣고, 일단 납품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방송 1시간 정도 남아 있으니까 여유 많네.


너, 지금 혹시 어디에 있는 거야?


대표님, 이미 늦었습니다. 저, 지금 강릉입니다.


뭐, 강릉?


강릉이면, 지금 총알택시로 출발한다 해도 스브스까지 10시 전에 도착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대표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우와... 대박. 테이프를 인질로, 아니 테이프니까 인질이 아니라 물질인가? 그랬다는 거네요.


그렇지. 방송은 1시간도 안 남았는데 그 자식은 강릉에 있다는데 뭘 어찌 하겠어 내가. 이왕 사고 터진 거, 부장님한테는 큰 사고가 났다 하면서 죄송합니다, 다른 거로 대체 편성해주세요, 했지.


근데, 그 친구 왜 그랬대요? 방송 바닥 떠날 각오 아니면 그렇게 못하잖아요.


그 일이 있기 수 개월 전.


조연출이 촬영하다 부주의로 카메라를 떨어뜨려 박살을 냈다.


그 소식을 들은 대표는 조연출에게 고래고래 버럭버럭 혼쭐을 냈고, 전액은 아니었겠지만, 책임을 느끼라는 의미로 일정 금액을 급여에서 제했다.


결국 그 일이 그에게 일종의 원한을 갖게 했고, 그는 대표에게 복수할 기회를 엿봤을 것이고, 테이프를 들고 강릉으로 가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대표님이 잘못 하셨네요.


그지? 뭐 설마 그런 일이 있을 거라 생각했겠어? 참 별일 다 있어.


그렇게,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던 또 하나의 방송사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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