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의 유망주 탄생
6개월간의 신인 코미디 작가 연수가 끝나고 프리랜서가 된 나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민 프로그램은 <이경규의 코미디 동서남북>이었다. 담당 피디는 유근형. 무척이나 좋은 피디였는데 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좋지 않은 일을 당하게 된다. 기회가 되면 나중에 말씀드리겠다.
이 프로그램은 이경규가 단독으로 메인 MC가 된 최초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경규의 코미디 동서남북 >이라는 프로그램의 제목을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 없겠지만, 여기에서 탄생한 3명의 유망주를 말씀드리면 누구나 ‘아아~’ 하실 거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공식 전형을 통과한 공채 개그맨이 아닌 이른바 ‘특채’라는 점이다. 서울예전을 나와 FD(무대감독)로 일하다 개그맨이 된 이휘재, 김한석. 두 친구는 이 프로그램에서 ‘롱다리와 숏다리’로 캐릭터를 잡아 꽤 인기를 얻었다. 개그맨을 하겠다는 친구들이 비주얼까지 좋았던, 당시까지 거의 없던 사례였다. 그래서 주목을 받았고 내부의 공채 개그맨들에게는 질투가 섞인 견제를 받았지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잡아나간다.
또 한 사람은 바로 강호동이다. 씨름 천하장사로서 예능 감각이 뛰어나 과연 어느 방송사에서 영입할까 하는 게 초미의 관심사가 됐던 친구다. 씨름을 할 때도 자신의 경기가 TV에서 중계가 되는 경우, 다음 날 방송사로 연락해 시청률을 궁금해할 정도였다니 이 정도면 예능의 DNA 보유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천하장사 이만기를 누르고 나서 포효하던 그의 제스처는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었으니 그가 모래바닥을 떠나 예능 바닥으로 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그를 과감하게 꼬시고 MBC 예능국으로 데리고 온 사람이 바로 이경규였다.
이경규의 책 <몰래카메라를 사랑하시는 국민 여러분>을 보면 그가 어떻게 강호동 영입에 성공했는지가 자세하게 나온다. 마포의 한 주물럭 식당에 강호동을 초대하여 예능을 하자고 권유했는데 그 비싼 주물럭을 쉬지도 않고 먹으며 거절했다는 얘기, 고깃값이 아까워 혼신의 힘을 다해 붙잡았다는 얘기다. 그때 만약 이경규가 강호동의 거절에 ‘아 예’ 하고 일어섰다면 대한민국의 예능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자리를 빌려 이경규와 강호동에게 감사를 표한다. 물론, FD로 우회 상장하는 전략으로 예능계에 진입한 이휘재와 김한석에게도 같은 마음이다.
이렇게 강호동, 이휘재, 김한석은 같은 라인에서 출발한 비공채 예능인이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자주 하리라 생각한다.
1993년 5월에 생긴 <이경규의 코미디 동서남북>은 6개월 남짓 하고 폐지된다. 작가들도 각자 갈 길을 찾아야 하게 됐고 나도 마찬가지 신세가 되는데, 또다시 손을 내밀어 준 프로그램이 있었으니.... <일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