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주 작가 Jan 06. 2021

<일밤> ‘TV 인생극장’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카피와 참고 사이

<일요일일요일밤에(일밤)>는 2021년 1월 5일 현재 23년째 같은 자리 같은 시간대를 고수하고 있다. 1595회를 기록 중이다.(전신인 <일요일 밤의 대행진>이 시작된 1983년부터 치면 30년이 훌쩍 넘는다.)


비록 요즘 시청자들은 일요일 MBC 저녁 시간대 하면 <복면가왕>을 먼저 떠올리는 이들이 많겠지만, ‘복면가왕’은 엄연히 <일밤>의 한 코너로 출발했다. 이렇게 시작은 <일밤>이라는 강력한 브랜드의 보호 속에서 했지만 점점 자립심을 갖게 되어 독립한 프로그램들은 꽤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우결)>가 그랬고 <세상을 바꾸는 퀴즈(세바퀴)가 그랬다. 이 얘기는 <일밤>이라는 그릇은 어떤 내용이 들어와도 희한하게 평균 이상이 되게 하는 마법을 지녔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점이 <일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일밤>이라는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같은 거대한 문화담론을 논하기에 내 그릇이 너무 작다. 난 그저 유구한 <일밤>의 역사와 전통의 한 자락을 슬쩍 잡아보는 행운을 누렸던, 1990년대 초중반 무렵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 내볼까 한다. 다만, 그나마 내가 경험했던 그 시기는, 주말 예능 시간대에서 KBS의 <유머일번지>와 <쇼비디오자키>에 질식할 정도로 눌렸던 엄혹했던 1980년대를 벗어나 도약을 하고 KBS를 지배하기 시작한 때였다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1차 지배 시기였던 ‘몰래카메라’에 이어 2차 지배를 공고히 한 ‘이휘재의 TV 인생극장’이 꽃피우고 만개했던 바로 그 시기다.


‘TV 인생극장’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계기는 1993년 즈음의 어느 날 송창의 피디가 던져준 한 권의 VHS 테이프였다,라고 일단 쓰긴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쓰긴 했지만 이 조차도 100% 팩트라고 자신할 수는 없다. 당시에는 워낙 많은 일본 프로그램을 봤기 때문이다.


여의도 MBC 8층 편성국 안으로 들어가면 후미진 곳에 작은 사무실이 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방이 VHS 테이프로 빼곡히 꽂혀 있는 풍경이 보인다. 이른바, 아이디어의 보고이자 꿈의 방이었다. 대부분이 일본의 TV 프로그램들이 녹화되어 있는 테이프들이었다.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봤냐고? 각각의 테이프에는 평균 4~5편의 일본 TV 프로그램들이 녹화되어 있고 테이프 번호만 알면 해당 번호 테이프에는 어떤 내용으로 전개되는 프로그램인지가 친절하게 기술되어 있는 A4 용지가 두툼하게 노트로 철해져 있었다.


물론 누구나 들어와서 테이프를 빌려간 건 아니다. 선배인 강제상 작가가 대출 1위였을 거라 확신한다. 나도 자주 이용한 편이었다. 그렇기에 당시 피디가 테이프를 먼저 보고 던져준 것이었는지 강제상 작가가 같이 보자고 했던 것인지가 살짝 헷갈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같이 봤다는 건 팩트다.


그 안에는 일본에서 방영된 한 드라마가 들어 있었다. 60분 물이었고 주인공이 매우 혼란한 갈등에 빠지면서 ‘선택’을 하면서 펼쳐지는 내용이었다. 그 드라마를 같이 본 작가들은 뭔가 아이디어가 나올 것 같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고 그날 이후 새로운 코미디 시추에이션 드라마 코너를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 회의에 돌입한다.


‘선택’이라는, 우리 모두가 매일 시시각각 겪는 주제다. 문제는 늘 한쪽밖에 선택할 수 없는 것이고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누구나 궁금해한다. 오랜 회의 끝에 우리는 양쪽의 길을 모두 보여주는, 드라마니까 가능하고 무엇보다 코미디로 풀면 더욱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고 또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일밤>의 야심 찬 새 코너 ‘TV 인생극장’을 론칭한다. 1993년의 어느 일요일 밤이었다.

‘TV 인생극장’ 첫 회는 예쁜데 가난한 여자와 못생겼는데 부자인 여성 사이에서의 선택을 다뤘다. 예쁜 여성으로 당시 인기 절정의 배우 신은경이, 못생긴 여성으로 역시 특채로 들어온 개그우먼 이영자가 나왔다. 선택을 하는 역할이 잘생긴 롱다리 신인 개그맨 이휘재다. 사실 ‘인생극장’이라는 코너를 만들 때 제작진의 방점은 이휘재라기보다는 이영자에 있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이휘재가 너무 연기를 잘했던 것이었다. 그 후로 이휘재의 급성장, 탄탄대로가 열린다.


이렇게 시작된 <일밤>의 ‘TV 인생극장’은 ‘몰래카메라’에 이어 연타석 홈런을 터트리면서 <일밤>을 국민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게 한다. 당시에는 시청률이 30% 나오면 선방했다는 평가였고 20% 대가 나오면 고개를 숙였으니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시리라 생각한다.


인생극장’의 아이디어 회의와 대본 작업은 철저한 공동작업이었다. 어떤 스토리로 할 건지 누구를 캐스팅할 건지는 물론, 대사 하나하나까지 회의를 통해 하고 대본으로 정리하는 작업만 연차 낮은 작가들이 하나씩 나눠서 했다. 나는 주로 ‘인생 B’를 정리했다.


이렇게 <일밤>의 황금 시절을 작가로서 함께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