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주 작가 Jan 17. 2021

<일밤>을 함께 한 연예인들 (1부)

이경규라는 사람

교양제작국이 있는 4층에서 예능국이 있는 3층으로 내려가서 제일 신기했던 건 내가 연예인들과 ‘일’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내가 뭐라고! (물론 나를 비하하는 건 아니다.)


같이 시작한 개그맨 동기들이야 아직은 유명인이 아니었지만, 예를 들어 이경규와 같은 공간에서 회의를 하고 사적인 대화도 하고 밥도 먹는 ‘식구’가 되었다.


1990대 중후반 여의도 MBC 예능국에서 같이 일한 수많은 연예인들에 대한 기억들을 다 적자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라겠지만, 이 글에서는 우선 4명에 대한 얘기만 해볼까 한다. <일밤>, <쇼! 토요특급> 등에서 자주 만났던 이경규, 이문세, 이홍렬, 김국진, 이휘재(이휘재는 최근 층간소음으로 뉴스를 탔다).


내가 일해본 연예인들 중에 가장 웃기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다. 아직 이 사람보다 웃기는 연예인은 만나지 못했다. 이경규 님이다(딱 한 번만 ‘님’이라 하고 이하 모든 호칭은 생략한다).


이경규라는 사람은 뇌구조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TV에서는 웃긴데 사적인 자리에서는 안 웃기거나, 4인 이하의 모임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뒤집어지는데 카메라 불만 들어오면 안 웃기거나 하는 예능인들이 꽤 있다. 혹은 김국진처럼 카메라 앞에서는 웃기지만 카메라 불만 꺼지면 웃기고 안 웃기고 가 아닌 말이 별로 없는 스타일도 있다.


이경규는 삶 자체가 코미디인 사람이다. 존재 자체에서 웃음이 흘러넘친다. 90년대에도 낚시 얘기를 꽤 했다. 와이프 몰래 낚시 가러 나왔는데 낚싯대를 놓고 왔다는 에피소드들은 흔해 빠졌다.


그런데, 내가 이경규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이게 다가 아니다. 예능인 혹은 개그맨 중에 회의를 가장 열심히 한 사람이다. 보통 회의를 하는 주체는 작가들과 피디들이다. 출연하는 연예인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회의 자리에 오지 않는다. 제작진이 같이 상의를 하기 위해 올 수 있는지 연락하는 경우 말고는 어지간해서는 제작진의 회의 공간에 연예인이 오지 않는다.


그 점에서 그는 달랐다. 뻑하면 회의실에 나타났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툭하면 왔다. 그렇다고 작정하고 함께 아이디어 회의를 한 것도 아니다(물론 우리들의 아이디어가 막힐 때 홀연히 그가 나타나 맥을 잡아준 적도 많았다). 그냥 어제 있었던 얘기, 다른 프로 얘기, 다른 연예인 얘기를 했다. 쉴 틈 없이 했다. 그야말로 제대로 털곤 했다. 물론 당시에 그는 MBC 프로그램만 했고 출근(?) 하는 공간도 한정적이었다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조건이긴 했지만, 요즘에도 자주 그러고 있다는 소문을 봐서는 역시 그만의 스타일임이 확실하다. 내 생각에 이경규라는 예능인이 여전히 탑을 달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그는 <일밤>에서 ‘몰래카메라’와 ‘시네마천국’, ‘이경규의 진짜가짜’ 등 수없이 많은 코너들을 했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실패작들도 많다. 하지만 그는 늘 시도하고 도전하는 걸 즐겼다.


‘몰래카메라’에 관한 얘기를 하면 꼭 받는 질문이 있다.


그거 진짜로, 리얼로 속이는 건가요?


이에 대한 답은 ‘몰래카메라’의 시작부터 끝을 함께 한 강제상 작가에게 답을 듣기로 한다.


강 작가 : 그럼요. 진짜 속이는 거죠. 100 사람이 한 사람 속이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가 자주 있죠. 진행하는데 당사자가 “저기 이거 혹시 몰래카메라 아니에요?” 그러면 감독도 작가도 카메라 감독도 조명감독도 “아닌데요.” 하거든요. 그럼 열이면 열 다 믿습니다. 그런데! 벋! 정말 아주 매우 가끔! 몰래카메라가 들통이 나려는 위기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겨울 스키장에서 했던 박상원 배우 편이었는데요, 이 분이 정말 빈틈없으시더라고요. 스키장 도착하자마자 바로 눈치채고 김영희 피디에게 강하게 어필을 했죠. 그때는 필이 있었어요. 부인하면 박상원은 촬영 거부하겠구나, 라는. 작전회의를 했죠. 그리고 멋지게 몰래카메라를 완성했습니다.


혹시 어떤 몰래카메라였는지 아시겠는가. 이경규가 영하의 추운 날씨에 스키장 리프트에 앉아 오프닝 멘트만 하고 하고 하고 또 하고 또 했던, 박상원이 아닌 이경규를 속였던 편이다.


이 얘기는 뭔가. ‘몰래카메라’ 역사상 이경규가 역으로 속았던 편이 몇 편 있다. 이는 주인공이 눈치를 챘던 경우라는 거고 그만큼 몰래카메라는 리얼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속는 것처럼 연기로 간다? 그렇게 하면 리얼한 표정이 절대 안 나오기에 그렇게 진행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이경규라는 사람. 그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것도 아주 뜨겁게.


얼마 쓰지 않은 것 같은데 꽤 길어졌다. 여러분이 읽는데 많은 시간 뺏을 수 없으니 여기서 마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경규가 <일밤>을 사랑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