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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작가 Jan 19. 2021

<일밤>을 함께 한 연예인들 (2부)

이홍렬에 대한 기억 몇 가지

이홍렬 씨보다 ‘홍렬이 형’이 더 편한 분이다. ‘몰래카메라’로 KBS 주말 예능이 눌려오던 설움을 벗어던지고 당당하게 <일밤>의 제1 전성기에 이어, ‘TV 인생극장’으로 제2의 전성기를 열었을 때는 이문세 이홍렬 이휘재의 막강 트로이카가 활약을 했다. 이문세나 이휘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었지만, 가슴이 따뜻해지는 예능을 추구하고 실천했던 분이 바로 이홍렬이다.


TV에서는 자주 봤지만 내가 1993년 MBC 예능작가가 되었을 때는 볼 수 없었는데, 알고 보니 일본으로 코미디 유학을 갔던 것이다. 인기를 꽤 얻은 코미디언이었지만 한계를 느껴 공부를 하겠다며 1991년 홀로 일본으로 떠난 것이다. 그렇게 일본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일본의 선진(당시에는 그랬다) 예능을 현지에서 익히고 하산, 아니 동해를 건너왔고 그의 내공을 가만둘 제작진들이 아니었다. 그렇게 이문세 이휘재의 가운데 자리로 한쪽 콧구멍으로 5백 원 동전을 넣는 무시무시한 초능력 보유자 이홍렬이 들어온 것이다.


물론, 여느 개그맨과 다름없이 이런 코너도 하고 저런 코너도 했다. 그중 나의 가슴 한 구석 아직도 남아 있는 그의 모습은 ‘이홍렬의 한다면 한다’라는 코너를 할 때였다. 말 그대로 불혹의 남자 이홍렬이 국내외 가리지 않고 도전을 하는 콘셉트였다. 태국을 가서 킥복싱에 도전하고 다른 나라에 가선 댄스에 도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호주 케언즈로 첫 취항하는 항공사의 협찬으로 20여 명의 제작진 모두가 함께 가게 된다. 첫 취항 첫 비행기를 타고 갔다. 승무원들과 우리들의 숫자가 엇비슷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곳에 가서 뭘 했느냐고? 준비한 콩트들과 이홍렬의 한다면 한다를 촬영했다. 콩트는 이런 내용이었다.


호주의 푸른 바다가 보이는 무인도에 불시착한 세 사람. 기도를 했다.


신이시여, 저희를 구해주소서!


신이 나타난다.


신 : 소원을 들어주겠다. 차례대로 말해 보거라.

A : 저는 비즈니스차 미국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빨리 가야 합니다!

신 : 그래 보내주마. 얍.

(A는 뿅! 사라진다)

B : 저는 집에서 아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빨리 만나게 해 주세요!

신 : 그래 가서 만나거라!

B : (사라진다)

. 혼자 남은 C, 당혹스러운 표정.

신 : 그래 자넨 소원이 뭔가?

C : 저요? 아 난 집에 가봤자 혼잔데.. 저기요, 저 심심하니까요 저랑 같이 있었던 두 분 다시 오게 해 주실래요?

신 : 그래, 얍!

. A, B 다시 나타나며 어리둥절

. C는 좋아하고 A, B 황당해하는 데서.


이런 콩트들을 호주 케언즈에 가서 찍은 것이다. 또 그곳에서 이홍렬은 40m 높이에서 몸을 던지는 번지점프에 도전했고, 덩달아 나도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번지점프를 해봤다. 꽤 비싼 금액을 지불하고 왜 뛰어내리는지 모르겠지만, 몸을 던지기 직전이 가장 후들후들했는데 뛰어내리니 순식간이었다. 차원을 이동한다면 이런 느낌이려나 하는?


이홍렬은 그곳에서 더 위험한 미션을 수행했는데 바로 스카이다이빙이었다. 수 킬로미터 위의 상공에서 낙하산을 지고 뛰어내린다. 물론 초보자이기에 이홍렬이 아래 엎드린 자세로 떨어지고 조교가 바로 위에 붙어서 내려가는 구조다. 그래도 그렇지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결코 아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유재석은 절대 못했을 거라 장담한다. 손에 땀을 쥐게 한 스카이다이빙이 무사히 끝나고 난 그에게 물었다.


형, 무섭지 않았어요?

당연히 무서웠지. 그 순간에도 만에 하나 잘못되면 어찌해야 하나 생각하는데, 낙하산이 안 펴진 채 그대로 내려온다! 내가 아래 있잖아. 그럼 땅에 닿기 전에 싹! 뒤집어야지.


그런 형이었다.


얼마 전에 <6시 내 고향>에 나오는 걸 보며 여전하다는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보고 싶은 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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