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듀오를 실험하다
‘쌀집 아저씨’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 김영희 피디는 도전을 즐겼다. 70년대를 풍미했던 코미디를 90년대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신 웃으면복이와요>를 만들었다. 웃음만 주는 예능으로는 부족함을 느꼈는지 ‘공익’이라는 요소를 더해 최초로 공익 예능을 시도했고 히트를 쳤다.
특히 <일밤>에서 이경규가 새벽의 도로 옆에 죽치고 앉아 정지선을 제대로 지키는 차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는 무지막지한 콘셉트의 내용을 생각만 한 게 아니라 행동으로 밀어붙였다. 심지어 현장에 있었던 이경규조차 ‘진짜 정지선을 지키는 차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고요? 그게 말이 돼요!’ 하며 일어서려 했지만,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바로 그 기적을 기어이 만난 것이다.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일밤>의 자리에서 바라보곤 했던 건너 편의 김영희 피디가 뻑 하면 외치곤 했던 한마디를 잊을 수 없다.
노우 프라블럼!
정말이었다. 그에게 풀리지 않을 문제는 없었다. 누가 봐도 벽으로 가로막혀 있고 한 발만 내디디면 절벽인데, 그에게만 보이는 길은 늘 있었다. 그래서 그와 함께 하는 제작진은, 힘들었다. 아 이런 역설이라니. 이런 만고불변의 진리라니. 그랬다. 능력자와 일하는 이들은 쉬운 게 없다. 다만, 방송이 나가고 자신의 이름 석 자(혹은 두 자)를 확인하는 순간만은 그 힘듦이 감쪽 같이 사라진다. 그래서 그를 여전히 기억하는가 보다.
언젠가 말했듯이 그는 대한민국 방송 최초로 말 자막 등 적극적인 자막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역시 처음으로 듀엣으로만 프로그램을 채우는 프로그램 <콤비콤비>를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비로소 나는 그와 함께 일할 수 있었다. 이미 인기 개그맨의 반열에 오른 선배들과 나의 동기 개그맨들이 조화를 이룬 프로그램이다. 이런 콤비들이 각각의 코너들을 운용했다. 치열하게 경쟁했다.
이홍렬과 이경실의 ‘홍실홍실’, 강호동과 최성훈이 팀을 꾸린 ‘나이스보이스’, 서경석과 이윤석의 듀엣은 ‘투석스’였다. 역시 동기인 홍기훈과 나경훈이 의기투합해 ‘덩달이와 썰렁이’가 되었다. 여기에 이경규에 가장 막내인 김태균이 뭉쳐 ‘쇼킹부킹’을 만들었다.
홍실홍실은 스타 게스트 쇼를 했고 나이스보이스는 게임을, 투석스는 지적 개그로, 덩달이와 썰렁이는 바보 코미디를, 쇼킹부킹은 뭘 했는지 가물가물하다. 작가들은 각자 한 코너씩 맡았다. 나는 홍실홍실 코너를 전담했다. 대가들 앞에서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힘들었지만 재미있고 보람도 있었다. 뭐 좋은 아이디어 없나 하고 대학로에 가서 연극을 보다가 아이디어를 발견해서 적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콤비콤비>는 크게 히트하지는 못했다. 듀엣 개그로 콩트를 하는 것이 커다란 폭발력을 주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듀엣이 매우 일반적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걸 간과했거나 약간 어긋나 버린 프로그램이었다는 생각이다. 물론, 시도는 훌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