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주 작가 Feb 07. 2021

<일밤>에서 만난 서태지와 아이들

그들이 특별했던 이유

<PD수첩>의 막내 작가로 일하던 1992년 시절, 그 숨 막히던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한 건 ‘직관’이었다. 무슨 소리냐고? 여의도 MBC 사옥을 출입하며 안팎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특권을 누렸는데, 특히 스튜디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서 예능 프로그램들의 제작 현장을 가까이에서 직접 봤다는 얘기다.


요즘은 보안을 극도로 신경 쓰는 현장들이 꽤 있지만(참고로 <복면가왕>은 방청객들에게 비밀누설 금지 서약서를 받는다) 당시에는 뉴스를 제외하면 출입증을 걸고 있는 한 들어가지 못할 현장이 없었다. 혹여 물어봐도 ‘아, 작가입니다.’ 하면 99% 통과였다.


<PD수첩>을 녹화하는 스튜디오는 F스튜디오였는데, 안쪽 구석탱이에 있었다. 크기도 소박했다.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스튜디오는 크게 A, B, C, D로 나뉘었는데 1층에 있었다. 좌우 양편으로 A스튜디오와 보통 공개홀이라고 부른 D스튜디오가 있었고 중간에 B와 C스튜디오가 자리했다. B와 C 스튜디오는 A와 D에 비해 조금 작았는데 비공개 콩트 코미디나 드라마 세트 촬영을 주로 했다. A스튜디오에서는 버라이어티 <일밤>, <토요일토요일은즐거워>, <특종TV연예> 등을 주로 했고 D공개홀에서는 쇼 프로그램의 녹화 혹은 생방송을 주로 했다.


당시 난 4층 교양제작국에서 일하다가 심심하면 혹은 틈이 나면 또는 일을 마치면 스튜디오를 기웃거렸고 촬영이 진행되고 있으면 넋을 잃고 구경하곤 했다. 가장 기다리고 즐겼던 직관은 토요일 오후의 D공개홀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음악중심>의 리허설 장면을 객석 맨 위에 앉아 고스란히 목도할 수 있었다. 당대의 수많은 가수들이 생방송 무대에 오르기 전에 어떻게 춤추고 노래하고 말하는지 볼 수 있었고 나만의 소확행이었다.


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처음 선을 보인 곳은 A스튜디오였다. 아쉽지만 그 현장을 직관하진 못했다. 그때 난 미처 서태지와 아이들이란 그룹의 데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서태지와 아이들은 <특종TV연예>의 한 코너였던 신인을 소개하고 평하고 점수를 매기는 코너에 나왔고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점수를 얻지 못했다. 물론 그 날 이후 그들은 자신들의 진가를 몰라본 소위 가요 전문가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한민국을 뒤집어버린다. 아마도 <PD수첩>에서도 그들을 다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인가, 93년 예능국 작가가 되어 ‘공식적으로’ 직관의 자격을 얻게 된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복귀와 2집 첫 녹화를 오매불망 기다렸고 마침내 그곳에 있을 수 있었다.


<특종TV연예>에서 이름만 바꾼 <지금은 특집 방송 중>이라는 프로그램이었고 A스튜디오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복귀를 힘차게 알리는 MC의 외침이 끝나자 힘 있지만 부드러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한 명씩 모습을 드러내며 노래하고 춤을 췄다. 카메라 뒤에서 나는 두근거리며 지켜봤다. ‘이 밤이 깊어가지만’이라는 노래였다. 노래가 끝나고 잠깐의 토크가 있고 마침내 2집의 타이틀곡이 발표됐는데 직관하던 내게는 아쉽게도 뮤직비디오로 소개가 됐다. ‘하여가’였다. 물론 충분히 충격적인 음악이었다.


그렇게 직관의 맛을 즐기던 내가 <일밤>을 하던 어느 날, 서태지와 아이들과 미팅을 하게 되었으니 정말이지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당시 코너 중에 ‘시네마천국’이라는 15분 즈음의 코믹 드라마가 있었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것이다.


그런데 그 모습을 내가 지금 굳이 여기에까지 기록하는 까닭은, 서태지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그 코너는 수많은 스타들이 주인공으로 섭외되어 출연했는데, 제작진이 아이템을 정하고 아이디어 회의를 해서 대본 작업을 하고 피디가 촬영을 하고 편집을 거쳐 초대된 스타와 진행자들이 스튜디오에서 영상을 보면서 웃고 약간의 편집을 통해 완제품으로 만들어 방송을 하면 끝이었다.


그런데 거의 유일하게, 서태지는(아이들까지 온 건 아니었다) 아이템을 잡을 때도 굳이 찾아와 회의를 하며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고 더욱 놀라운 건 편집을 할 때도 편집실로 찾아와서 자신 그룹의 이미지에 마이너스가 되리라 생각한 것들에 대해서는 의견을 주었다.


당대의 스타들이 출연했던 ‘TV 인생극장’과 ‘시네마천국’ 작업을 하면서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스타는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당시 그렇게 회의를 거쳐 작업했던 시네마천국의 대본이 없는 것이 몹시 안타깝다. 마지막 장면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우주복을 입고 우주선에 오르는 것이었다는 정도만 기억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밤>을 함께 한 연예인들 (3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