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주 작가 Feb 02. 2021

<일밤>을 함께 한 연예인들 (3부)

김국진이라는 사람

2015년 4월부터 MBC의 일요일 저녁 예능은 '복면가왕'이 지배하고 있지만, 정확하게 얘기하면 <일밤 -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이다. 1988년에 시작된 <일밤>은 현재도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참여했던 90년대의 <일밤>은 3~4개의 코너들로 운용했고, MC들도 꽤 자주 바뀌었다. 주병진, 이경규, 노사연, 김흥국의 1기 MC진과(물론 80년대의 김병조 등이 있었다) 이문세, 이홍렬, 이휘재의 2기가 굵직하게 있었고, 길진 않지만 굵고 짧게 한 MC들에 이수만, 최수종, 이재룡 등이 있다. 그리고 96년이 되면 터줏대감 이경규에 이 사람이 가세한다. 김국진이다.


김국진은 1991년 <제1회 KBS 대학개그제>를 통해 KBS 전속 개그맨이 되었다. 제 ‘1회’라는 타이틀이 붙은 걸로 봐서 그 전에는 개그맨을 선발하는데 대학생으로 국한 지은 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1991년은 우리 방송계에 커다란 지각변동이 일어난 해다. 1980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부에 의해 단행된 언론통폐합으로 지상파 방송사가 KBS, MBC의 2개만 있던 시절에 SBS라는 또 하나의 지상파가 생긴 것이다. 이른바 ‘서울방송’의 출현은 MBC와 KBS 구도를 흔들었고 예능계에도 새로운 이적 시장이 열리게 한다.


신생 스브스는 케이본부와 마봉춘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그맨들에게 추파를 던졌고 적지 않은 이들이 SBS로 이적한다. KBS <한바탕 웃음으로>의 ‘봉숭아학당’의 선생과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MBC에서 맹활약하던 박미선, 이홍렬 등이 건너간다. 그 시절 이홍렬이 남긴 명언이 있다.


“영주야, SBS가 뭐가 좋은 지 아니? MBC는 주차하려면 몇 바퀴 뺑뺑 돌고 겨우 대고 올라오잖아, 거기는 주차장이 넓은 차원을 넘어서 내 이름이 새겨진 주차구역이 있어!”


그렇게 스브스의 파장은 엄청났다. 결국 뭔가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야 할 엄중한 상황에서 KBS의 제1회 대학개그제가 개최된 것이다. 그리고 향후 대한민국의 예능을 먹여 살리게 되는 막강 예능인들이 들어온 것이다.


최종 선발된 15명의 신인 개그맨 중 유독 튄 친구가 있었으니 그가 김국진이었다. 치와와를 떠올리게 하는 얼굴과 가녀린 몸매에 허를 찌르는 개그, 무엇보다 그의 독특한 음색과 톤은 단박에 주목을 받게 했다. 그는 신선한 젊은 피를 수혈하고자 했던 대학개그제의 기획의도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같이 합격한 김용만, 박수홍, 김수용과는 이내 친해져 ‘감자골 4인방’이 된다.


그런데 너무 빨리 스타가 된 것일까. 바빠도 너무 바빴다. 김국진을 부르지 않은 KBS 예능을 찾기가 힘들었고, 김용만은 일주일에 11개의 프로그램을 하기도 했다. 결국, 사달이 나는데, 과로로 쓰러지는 일들이 발생한 것이다. 이들은 개그맨으로서는 초유의 결정을 내리는데, 방송 활동 중단! 1993년 1월 10일이었다.


감자골 4인방은 시청자에게 잠시 쉬고 오겠다는 작별 인사를 계획하는데, 그만 KBS를 넘어 MBC <일밤>의 녹화 현장까지 오게 된다. 그런데! 그들의 MBC 출연을 저지하러 KBS 개그맨 수십 명이 몰려온 것이다. 난 당시 예능작가가 아니어서 목격은 못했는데 몸싸움이 있었다고 한다. 이경규의 중재로 간신히 녹화를 마쳤다고 한다. 이해가 되시는가? 그만큼 전속의 개념이 서슬 퍼랬던 시절의 에피소드다.


그 사태로 감자골 4인방은 대한민국의 방송계에서 사라지는데, 박수홍은 입대를 하고 김국진 김용만 김수용은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는데 어찌 된 일인지 김수용은 비자가 안 나와 두 사람만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김국진과 김용만은 1년 여의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복귀, 당당하게 MBC 예능국의 문을 두드렸고, MBC는 김국진에게 <테마게임>, <일밤>을 주었고 김용만도 혼자 혹은 같이 예능을 주름잡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로소 나와 김국진은 <일밤>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96년 2월 11일 방영한 366회 대본을 보면, 김국진의 장기인 “여보세요?”를 살린 코너 ‘김국진의 긴급구조 여보세요?’가 있다. 매 회 조혜련이 사고를 당하고 전화를 걸면 구조대원 김국진이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고 출동해서 구해준다는 스토리다. 조혜련이 몸고생 많이 했는데 주로 당한 사고가 얼음에 혓바닥이 붙기, 핸들에 머리가 끼기, 입 안으로 당구공이 들어가기 등이었다. 김국진은 연기도 맛깔스럽게 해서 ‘기묘한 이야기’ 류의 코믹 드라마도 꽤 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라 금세 친해졌는데, 내가 97년 1월에 결혼을 했을 때 고맙게도 사회를 봐줬다. 성당에서 한 혼인 미사였는데, 가톨릭 신자답게 주송을 훌륭하게 해냈다. 결혼식이 다 끝났을 때 하객들이 너도나도 김국진과 사진을 찍으려고 난리가 나 단체사진 촬영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라디오스타>로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어가고 있는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형 어디 가’가 배출한 여성 피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