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주 작가 Jan 29. 2021

‘형 어디 가’가 배출한 여성 피디

<쇼! 토요특급>에 대한 추억

방송작가는 역할과 연차에 따라 구분이 있다. 메인 작가, 서브 작가, 꼭지 작가, 막내 작가, 섭외 작가 등이다.


이러한 유형이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정해진다. 예를 들어 <너의 목소리가 보여> 같은 많은 출연자가 나오는 버라이어티 예능은 작가팀만 10명이 넘어간다. 메인 작가 1명, 막내 작가 1~2명, 중간은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있는 서브 작가들이다. 반면 다큐멘터리의 경우는 단출해서 기본형은 메인 작가와 막내 작가로 짜이고 제작비가 좀 되는 다큐멘터리면 리서처가 들어오기도 한다.


현재의 정확한 시스템은 모르지만 아는 후배가 <한국인의 밥상>을 하던 몇 년 전에는 4개의 팀으로 구성되고 각 팀에는 메인 작가와 막내 작가가 있었다. <생생 정보>처럼 VCR 꼭지 4~5개로 채워지는 정보 프로그램들은 각 꼭지 작가가 1명씩 있고 메인 작가와 막내 작가가 받쳐주는 모양새다.


막내 작가로 방송작가를 시작해서 메인 작가의 자리에 오르려면 어느 정도의 기간이 걸릴까. 프로그램들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10년 차 정도가 메인 작가를 한다고 하면 대략 10년이 걸린다는 얘기다. 물론 7년 차, 8년 차에도 메인 작가를 맡는 프로그램도 있다. 반대로 12, 13년 차가 되어도 운대가 안 맞아 메인 작가를 하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고정불변도 아니다.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메인 작가이지만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서브 작가를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방송작가의 지위(?)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프로그램에 많은 영향을 받는 프리랜서이다.


이 얘기를 왜 꺼낸 건지 깜빡 잊고 있었다. 93년에 예능 막내 작가로 시작한 나는 도대체 언제 메인 작가가 되었을까.


당시의 대본들을 꺼내보니 작가팀의 이름들 중 내가 첫 번째로 나오기 시작한 건 97년이었다. 주말 예능 버라이어티 <쇼! 토요특급>이었다.


<쇼! 토요특급>은 <일밤>의 토요일 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피디가 된 김승환 피디가 의욕적으로 메인을 맡았고 진행자도 이홍렬과 이휘재가 메인이었다.


가수들의 인기곡을 코믹 드라마로 보여주는 ‘뮤직드라마’가 있었고, 초대 스타와 그들의 단골집으로 찾아가서 구구단 게임을 하며 노는 ‘스타의 단골집’이라는 코너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많이 생각나는 코너 ‘이홍렬 이휘재의 형 어디 가’가 있었다.


1997년 말에 한국 경제가 암흑기로 접어들게 한 IMF가 있었다. 그 전부터도 우리 경제가 좋지는 않았나 보다. ‘형 어디 가’의 부제가 ‘경제를 살리자’였으니 말이다.


주로 해외로 나갔다. 선진국의 다양한 기업과 농업 등의 현장을 이홍렬과 이휘재가 찾아가 재미있게 배워보는 콘셉트였다. ‘형 어디 가’는 이홍렬과 이휘재의 케미가 좋았고 해외 풍광과 착한 내용으로 회를 거듭할수록 인기가 높아졌다.


오스트리아 편을 기획하면서 김승환 피디가 아이디어를 냈다. 대학생 남녀 2명을 참여시켜보자고. 코너의 인기가 좋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기획이었다. ‘그거 좋지 않은 생각인데요.’ 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공지를 했다. 전국에서 지원자가 빗발쳤다. 당연히 면접을 보고 선발하려고 했는데 너무 몰려와 음악캠프를 하는 D스튜디오 전체를 빌렸다. 예능국 피디들에게 긴급 도움을 요청, 고르고 고른 수 백 명을 면접 봤고 마침내 두 명의 대학생이 뽑혔다. 비주얼을 전혀 무시한 건 아니었는데 학벌이 결정적인 거였냐 해도 할 말 없는, 연세대생 남자와 서울대생 여자였다.


운 좋게 작가 티오도 있어 나도 함께 오스트리아행 비행기를 타게 됐다. 약 열흘간의 오스트리아 출장. 인스브루크, 잘츠부르크, 비엔나를 돌았다. 한국에서 스키장도 안 가본 내가 오스트리아 히말라야 산 위의 스키장에서 촬영을 했다. 오스트리아 곳곳에서 이홍렬이 뛰었고 이휘재가 나타나 “형, 어디 가!”를 외쳤다.


로또에 당첨됐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운이 좋았던 대학생 친구들은 단순히 방송 촬영 현장을 따라온 것을 넘어 대 스타 이홍렬 이휘재와 함께 출연자로서 함께 촬영했다. 귀국한 후에는 스튜디오 녹화 현장에도 출연했다. 그야말로 두 친구는 방송 체험을 찐하게 한 것이다.


20년도 훨씬 더 지난 지금, 그 친구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안타깝지만 남학생의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 여학생만 소식을 듣고 있다.


몇 년이 지난 뒤, 우연히 마주쳤다. 그것도 MBC 사옥 안에서 말이다. 그 친구는 오스트리아와 한국에서 경험한 방송 참여 경험이 진로를 바꾸게 했는데, 똑똑한 친구라서 인가, 독하게 공부하여 그 어렵다는 언론고시를 통과한다. MBC 예능국에 들어와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이홍렬 이휘재와 재회도 한다. 조연출의 혹독한 수련을 거쳐 프로듀서가 되고 수많은 프로그램들을 하고 <일밤>의 코너 ‘오빠밴드’ 등을 연출하는 능력자 피디로서 우뚝 선다.


그리고,


신동엽과 결혼한다.


그녀는 현재도 MBC 예능국의 에이스 피디다.


1997년의 ‘형 어디 가’는 미래의 피디를 배출한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차인표>는 예정되어 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