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에는 ‘차인표 쇼’
차인표라는 이름의 배우를 주인공으로 하고, 영화 제목마저 <차인표>로 한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아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 이병헌이다, 그 사람의 이름은. 오해하지 마시라. 배우 이병헌이 아니다. 영화감독 이병헌이다. 그런 감독이 있어?라는 질문을 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극한직업>의 감독이다. 또 오해하지 마시라. EBS의 장수 프로그램 <극한직업>이 아니다. 류승룡, 이하늬가 나오고 진선유 배우를 뜨게 만든 영화 <극한직업>이다. 2019년 1,600만 명의 배꼽을 잡은 바로 그 영화다.
그 이병헌 감독이 약 5년 전 차인표를 주연으로 하는 영화 시나리오를 만들고 차인표 배우에게 제안했다. 당시 무명의 감독의 제안에 차인표는 거절을 했고, 세월이 흘러 결국 만난 것이다. 그 사이 이병헌 감독은 무명에서 유명이 됐고, 차인표 배우는 하이틴 스타에서 한참을 더 내려갔다. 영화 <차인표>는 결국 이병헌 감독이 내세운 다른 감독에 의해 만들어지고,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에 걸린다.
차인표 배우는 1994년 MBC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로 일약 스타가 됐다. 불과 1년 전인 1993년 공채 탤런트로 들어온 신인이었다. 내가 예능작가로 시작한 게 1993년이니 동기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지상파 방송사마다 거의 매년 전속 탤런트를 선발했다. 차인표는 SBS, KBS 공채 탤런트는 떨어지고 더 이상 시험 볼 곳이 MBC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합격을 한다.
당시에는 방송사 공채 탤런트들이 뽑히면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 떼로 출연하곤 했다. 내가 하고 있던 <일밤>에 차인표를 비롯한 신인 탤런트들이 나왔다. 저마다 조금이라도 시청자의 눈에 들기 위해 있는 개인기 없는 개인기를 앞다퉈했다. 어렴풋이 남아 있는 기억으로 차인표는 웃통을 까고 가슴을 씰룩씰룩하는 것으로 탄성과 웃음을 주었다.
꽤나 독특한 캐릭터였다. 연기자 같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근육질의 미남이라는 점 말고는 스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1년 후에 스타가 된 것이다. 검지 손가락 까딱까딱하는 연기로.
스타가 된 차인표는 예능에서도 자주 찾았다. 제안한다고 다 한 건 아니었다. <일밤>에서 한 ‘시네마 천국’과 <쇼! 토요특급>에서는 97년 ‘차인표 쇼’를 했다. 특히 꽤나 많은 설득 끝에 한 ‘허리케인블루’가 생각난다. ‘허리케인블루’는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개그맨 이윤석과 김진수가 듀엣으로 립싱크를 하는 코너였다. 수많은 팝의 명곡을 온몸을 불사르는 립싱크와 연주로 꽤 히트했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여러 클립들이 나오는데 지금 봐도 웃긴다. 특히 퀸의 ‘보헤미안랩소디’는 명불허전이다.
97년 3월 22일 방영된 <쇼! 토요특급>에서 그는 이휘재와 짝을 이뤄 ‘허리케인블루’를 열창, 아니 열연했다. 곡목은 ‘She’s gone’. 녹화를 앞두고 사무실에서 만나 제안했을 때 ‘제가 그런 걸 어떻게...’ 했던 그는 하며 막상 결심을 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폭풍 연습을 했고 방송에서 큰 웃음을 주었다.
그는 그 후로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자의 길을 걸어간다. 다만, 그만의 독특한 지점은 진지하게 연기하는 모습이 웃음을 유발한다는 것인데 이른바 ‘분노의 양치질’이 그랬다. 왕자, 진지 한 뼘의 허당. 그는 그러한 이미지로 인해 대박 역할을 만나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오던 중, 영화 <차인표>를 만난 것이다.
봤다. 재미있었다. 다만 생각만큼 큰 웃음을 주지는 않았다. 아마도 사람들마다 다 다르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각자가 알고 있고 받아들이고 있는 차인표는 다 다를 테니. 나는 90년대 MBC 안에서 몇 차례 회의실에서 만난 기억으로 영화 <차인표>를 봤을 뿐이고, 그의 고군분투는 무척 아름다웠다. 4대 천왕에서 3대 천왕으로 줄어든다고 했을 때 “그럼 설경구가 빠지겠네” 했을 땐 빵 터졌다.
나는 차인표 배우가 이런 콘셉트의 영화에 출연한 것 자체만으로도 그의 연기 인생에 한 획을 그었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연기자가 자신의 이름을 건 영화에 그것도 거침없이 망가지는 연기를 하겠는가. 그는 기꺼이 그렇게 함으로 그의 진가를 드러냈다. 영화 <차인표>를 통해 긴 세월 돌아 진짜 차인표가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전교를 주름잡던 친구가 있었다. 공부도 1등에 학생회장(당시에는 학도호국단장)이었다. 비록 공부를 따라갈 순 없었지만, 그와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기억이 슬그머니 피어오른다. 그의 이름은 차인혁. 그때 같은 학교 1학년에 그의 동생 차인표가 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