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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작가 Feb 14. 2021

현대방송을 아시나요?

HBS를 추억하며

요즘이야 볼 채널과 매체가 널리고 널렸지만, 1994년까지만 해도 TV는 딱 3개밖에 없었다. 시간을 조금만 거꾸로 돌려 1990년으로 가면 지상파 TV는 케이본부와 마봉춘이 다였다. 91년에 스브스가 가세하면서 비로소 지상파 3사가 되었다.


시청률도 높을 수밖에 없었다. 좀 만든다 싶은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20% 정도면 미소 지을 정도였고 <일밤> 같은 주말 예능은 30%가 보통이었다. 91년 시작한 MBC 주말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는 64.9%를 찍었고, 97년에 하던 KBS 드라마 <첫사랑>은 65.8%를 찍었다. 아마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숫자일 것이다.


90년대 들어와 방송가는 크게 두 가지면에서 큰 변화를 가져오는데, 하나는 외주제작 비율을 높인 것이고 두 번째가 다매체 다채널 시대를 표방한 것이다. 그리하여, 1995년 케이블 TV 시대가 열린다. 수 십여 개의 채널이 생겼다. 지금도 있는 매일경제TV나 동아TV, 바둑TV 같은 곳이다. 그리고 당시 지상파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적지 않은 피디와 작가들의 관심을 가져온 케이블 채널 중 한 곳이 바로 현대방송이었다.


이름 그대로 현대그룹이 만든 방송사였다. 지금은 홈쇼핑을 하고 있는 CJ쇼핑이 있는 사당역 위쪽에 자리 잡은 사옥이었다. 그곳을 가본 분들은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현대방송의 규모가 꽤 컸다는 것을.


재벌 기업답게 케이블이지만 지상파에 육박하는 몸집을 만들어 지상파에서 일하던 인력들을 빨아들였다. 경력 피디직으로 옮기거나 정규 직원으로 간 지인들이 꽤 있었다. 작가들이야 프리랜서이니만큼 능력껏 가서 일을 했는데, 나도 마찬가지로 현대방송에 발을 걸칠 수 있었다. 선배 작가가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나에게 손짓을 했다. 연예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지상파에서 맡던 역할보다 더 큰 역할이 주어졌으니 마다 할 이 거의 없었다. 마봉춘에서 예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이경규는 현대방송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최초의 프로그램을 할 수 있었으니, <이경규 쇼>다.


현대방송이 개국하자마자 생긴 <이경규쇼>의 메인 작가로 <웃으면 복이 와요> 메인 작가 선배가 일찌감치 들어가 자리를 마련했고, 나는 96년 봄 무렵 건너가 작가를 했다. 일주일에 3~4일은 여의도 마봉춘에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를 하고, 2~3일은 사당동으로 가 현대방송 <이경규쇼>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결혼도 하지 않은 총각이라 체력이 받쳐줬나 짐작할 따름이다.

96년 5월 8일 방영된 <이경규쇼> 제60회 대본의 표지를 보면 당시 같이 만들었던 피디와 작가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감개무량해진다. 이재훈 피디는 그 후 몇몇 케이블채널을 운영하고 현재는 홈쇼핑 등을 제작하는 유통회사의 대표이다. 양희승 작가는 얼마 전에 KBS 연기대상에서 작가상을 수상한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의 작가다. 박현숙 작가는 훗날 <런닝맨>의 메인 작가가 되고, 당시 막내작가였던 심은하는 현재 케이본부의 예능과 쇼양을 주름잡는 작가로 활약 중이다. 역시 난 좋은 선배인가 보다. 후배들이 뛰어넘을 수 있게 해주었으니. 맨 위의 기획 이명기라고 되어 있는 분도 마봉춘에서 건너오신 분이다.


프로그램의 내용은 지상파에서 하던 버라이어티와 다르지 않았다. 진행 방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현대방송은 인력과 물량을 아끼지 않았다. 외관은 케이블이지만 지상파라는 의식으로 제작했다. 그래서 별 다른 차별화가 없었다.

<언제나 웃는 세상>이라는 제목의 코미디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였다. 이 프로그램은 코미디 작가계의 대부라 할 수 있는 김일태 작가가 메인을 했고 나는 서브 작가로서 참여했다. 최고의 개그맨과 작가들이 투입되어 콩트를 만들었다. ‘방배동 블루스’라는 이름의 시트콤도 코너로 있었다. 하지만, 역시 이렇다 할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현대방송은 의욕적으로 <작은 영웅들> 같은 드라마도 만들고, 국내 최초로 일일 연예정보 프로그램 <HBS 연예특급>도 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으니 4년 만에 손을 들고 만다. 99년 넥스티미디어에 매각됐고 다시 CJ그룹에 팔려 영화 채널로 모습을 바꿨다.


그때 그런 방송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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