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마지막 버라이어티
93년부터 MBC 예능국에서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하고 95년 케이블 시대가 열리며 개국한 현대방송으로 발을 넓혔지만, 나머지 지상파인 KBS와 SBS는 기회가 오지 않던 차에 한 후배의 소개로 마침내 SBS에 입성을 하게 된다. 20세기의 마지막 해인 1999년이었다.
SBS는 민영 방송사답게 드라마와 예능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었다. 91년 개국하면서 자체 개그맨 공채를 통해 신동엽, 틴틴파이브, 김동현(김구라) 등의 신입 사원들이 들어와 있었고, 케이본부와 마봉춘의 직원들을 거액(?)으로 영입하여 막강한 경력직들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 남희석, 이홍렬, 박미선 등이었다. 당연히 주말 예능에 집중했는데 일요일 저녁에는 <꾸러기대행진> 등과 토요일의 <기쁜 우리 토요일(기토)>이 있었다. 내가 소개를 받아 작가로 일하게 된 프로그램은 <기토>였다.
SBS의 예능국은 당시 탄현에 있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나오는데 대형 스튜디오 중심의 사옥이었고, SBS아카데미도 그곳에 있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목동 아니면 여의도 사옥과 왔다 갔다 하는 셔틀버스도 있었다. 난 다행히 집이 일산이었기에 탄현으로 왔다 갔다 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처음으로 SBS에서 일해본 느낌은 젊다는 것이었다. 후발주자여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열려 있었다. 제작진들은 많은 이들이 실제로도 젊었다. 마봉춘과 케이본부에 없는 직군이 있었는데 ‘전촬’이라는 친구들이었다. 전문 촬영인 정도 된다. 그렇다고 촬영만 하는 카메라 감독은 아니었다. 연출도 능히 해내는 1인 피디였다. 전촬 출신 유능한 피디와 제작사 대표도 적지 않다.
내가 <기토>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여러 해 전부터 프로그램을 해와 자리가 잡혀 있었다. 아마도 메인 피디가 새로 오게 되면서 메인 작가 교체 이슈가 생겼고 수소문하여 마봉춘에서만 일해왔던 나에게까지 연이 닿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큰 고민하지 않고 피디를 만났고 함께 일하기로 어렵지 않게 결정했다. 내가 워낙 인상이 좋기에 담당 피디도 나를 단박에 마음에 들어했다.
스튜디오 녹화는 등촌동 스튜디오에서 했다. 당시의 버라이어티는 대개 여러 진행자들이 미리 촬영한 각 VCR 꼭지들을 보면서 중간중간에 관련 토크를 하는 구성이었다. <기토>도 다르지 않았다. 내가 했던 99년 11월 27일에 방영된 299회 차를 보면 메인 MC로 박수홍, 김진이 있었고 놀랍게도 송혜교가 함께 했다. 코너는 굵직하게 3개를 했다.
첫 번째 코너는 ‘MC 대격돌, 우리가 한다’로 윤정수와 쿨이 매주 게임을 하였다. MC팀과 쿨팀으로 대결을 했는데 이 날은 카레이싱 대결을 했다. 두 번째 코너는 ‘예감 적중, 거기서 만나!’이다. 서로 감과 추리력으로 만나느냐 마느냐 하는 내용인데 이 회 차는 밴드 Y2K가 야외에서 촬영을 했다. 세 번째 코너는 드라마 타이즈 ‘러브레터’이다. 김진과 송혜교가 메인 주인공이고 매 회 게스트가 함께 해 코믹 러브스토리를 만들었다.
<기토>는 94년에 시작하여 20세기의 마지막을 채우고 21세기로 넘어와 봄철에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아마도, 나는 패전처리 투수로 기용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초기 신동엽과 이영자가 전성기를 이끌고 하차한 후 그때그때 인기 끌던 아이돌들이 꾸역꾸역 꾸려왔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얘기는 20세기의 버라이어티 시대가 저물고 21세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스타일의 예능으로 변화 혹은 진화해간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저, SBS의 한 예능 프로그램을 두 세기에 걸쳐 참여했던 작가였노라, 합리화할 수 있음에 만족한다.
이제, <아무튼, 방송작가>는 20세기를 거의 마무리하고(생각나는 게 있을 때마다 소환할 수 있다) 21세기의 이야기로 꾸려갈까 한다. 기대하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