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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작가 Feb 22. 2021

국내 최초 맛집 버라이어티

MBC <찾아라! 맛있는 TV> 제작기

2000년과 2001년 중반 정도까지는 SBS <기쁜 우리 토요일>이 종료할 때까지 했고, 다시 MBC로 와 <코미디하우스>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코미디를 만드는 일은 참으로 힘들다. 더군다나 인물만 반듯해서 남을 웃기는 재주가 부족했던 나에게 코미디 프로그램의 작가 일은 무척이나 힘든 나날을 보내게 했다. 저 개그맨은 왜 저렇게 웃기는 건지. 저 후배 작가는 왜 그리도 웃기는 대본을 잘 쓰는 건지 생각했다. 난 웃기는 재주가 왜 이리 없단 말인가!


일찍이 <웃음>이라는 저서로 고전의 반열에 오른 베르그송 형님에게 묻곤 했다. ‘그송이 형, 웃기는 게 왜 이리 힘들어?’ 답은 오지 않고 꾸역꾸역 버티던 내 모습이 그에게도 감지가 됐다. 여운혁 피디. 어느 날 나를 불렀다.

‘형, 코미디 작가 힘들지.’

끄덕끄덕.

‘맘대로 해’

그렇게 나는 코미디 프로그램과 작별했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찾아봐야겠다며 두리번거렸던 때는 2001년 여름 무렵이었다.


21세기가 되면서 방송계에서 변화한 흐름 중 하나는 외주제작의 비율이 획기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지상파만 혼자 만들고 송출하며 돈 벌지 말고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줘. 일본도 그렇고 유럽도 그렇고 지상파는 보도만 하고 다 외주 제작사들이 만드니까 이제 우리나라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니?라고 국가에서 법으로 강제한 것이다. 교양 프로그램은 몇 %, 예능 프로그램은 몇 % 하는 식으로 외주제작의 비율을 늘려나가기 시작했고 덩달아 제작사들이 여기저기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나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들 중에 어떤 제작사가 있는지 살폈다. 나중에 SM제국을 만들 예정이신 이수만이 진행을 하는 <이야기쇼 만남>이라는 프로그램이 눈에 띄었다. 청소년들이 등장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교양보다는 예능에 가까운 내용이었는데 만듦새가 좋아 보였다. 어떤 제작사인지 궁금했다. 프로그램이 끝나기를 기다려 스크롤을 확인했다. 캔디. 캔디 프로덕션이라는 통통 튀는 이름의 제작사였다. 그래, 저기다!


개그맨들 중에 혹시 캔디프로덕션의 대표를 아는 이가 있는지 알아보니 금방 나왔다. 그것도 나랑 제일 친한 개그맨 표영호. 캔디의 대표님과 안면이 있다 했고 영호에게 대표님의 이름과 메일 주소를 얻었다. 김형수 대표. 그에게 난 메일을 보냈다. 만들어두었던 기획안과 함께.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캔디 김형수 대표님. 이러이러한 프로그램을 했고 하고 있는 김영주 작가라고 합니다. 귀사가 제작한 <이야기쇼 만남>을 재미있게 봤습니다. 제가 만들어보고 싶은 이러이러한 기획이 있으니 조만간 찾아뵙고 인사드렸으면 합니다.


며칠 후, 연락이 왔다. 한 번 놀러 오라고. 지체 없이 놀러 갔다.

‘대표님, 제가 보낸 기획안은 좀 어떻습니까?’

‘김 작가, 그건 됐고 나 이런 거 준비 중인데 이거나 같이 해볼래요?’

식당들을 소개하는 버라이어티 기획이었다. 1년 앞으로 다가온 2002 한일월드컵으로 인해 외식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텐데, 제대로 된 맛집들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아직 없으니 우리가 만들면 좋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MBC와는 기본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니 팀을 짜서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것, 지금으로 치면 파일럿으로 잘 만들기만 하면 정규 편성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것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음식이라... 나란 사람은, 음식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식사는 그저 살기 위해 한 끼 때우는 거지 이른바 미식가라는 부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집밥에 대한 그리움이라든가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의 특별함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우리 엄마는 음식에 관한 한 이렇다 할 솜씨가 없는 분이었다.(오래전 미국으로 이민 가셨기에 과감하게 적는다) 일을 하면서 외식을 자주 하면서 ‘이 음식이 이렇게 맛있는 거였나’ 하는 메뉴가 많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음식의 ‘ㅇ’ 자도 요리의 ‘ㅇ’자도 모르던 나에게 음식 관련 프로그램은 거들떠도 안 볼 성격의 것이... 전혀 아니었다. 방송작가는 무엇이든 해야 하는 것, 시간이 없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어떤 소재를 다루든 내가 관심이 있건 말건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적응력 하나는 자신 있는 나이기도 했지만, 맛집 프로그램, 음식 프로그램은 하면 할수록 재미있었다. 그렇게 작가진들이 꾸려지고 연출진들이 갖춰지면서 파일럿 녹화의 날이 다가왔고 마침내 2001년 가을, 서강대학교 안에 있는 아담한 규모의 스튜디오에서 <찾아라! 맛있는 TV>의 첫 녹화가 진행됐다.

MC는 이재용 아나운서와 정선희, 패널에 정원관, 김한석, 김지혜였다. 그날 비로소 난, 음식 콘텐츠의 마력을 느꼈다. 모니터에서 나오는 음식들의 모습에 모든 출연자가 넋 놓고 빠져들었다. 최강의 몰입도였다. 그 날 그곳에서, 이른바 먹방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맛집 버라이이티가 첫 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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