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MBC 공채 개그맨 이야기
93년에 만났는데 이제야 ‘단 둘’이 술잔을 기울였다. 개그맨 김학도다. 자그마치 28년이 걸린 거다. 이번에 같은 프로그램에서 만났기에 가능했다. KBS <굿모닝 대한민국 라이브>라는 프로그램의 작가와 출연자로서 만났다. 그도 나도 어느새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다. 낮술 하자 손 내밀었고 그도 흔쾌히 손을 잡았다. 어렸던 그 시절엔 서로가 일이 아니면 만날 일도 없었다면 지금은 그저 사람으로 만나고 싶었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그도 나도 지금까지 버티며 살고 있음에 감사한 방송인이었다. 프로그램이 끝나는 시간이 오전 10시인지라 낮술을 하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각자의 일을 잠시 처리한 후, 오후 1시 40분에 여의도 63 빌딩 건너편에 있는 한 냉면집에서 만났다. 수년 전 그 동네에 자주 드나들 적 익히 가본 적 있는 냉면집이다. 그런데 이번에 알았다. 사장님의 아들이 닥터레게의 리더였다는 걸. 김학도와는 잘 아는 사이였다. 물어보니 닥터레게가 데뷔한 건 92년. 나와 같이 시작한 방송 동기였다. 반가웠다.
삼겹살을 하러 그곳에서 만난 건데 사장님이 권하지 않아 불고기를 먹었다. 참이슬을 했다. 김학도와 나는 옛날 얘기를 시작했다.
1993년 MBC 공채 개그맨인 그와 같은 해 공채 예능작가였던 내가 함께 공유하고 기억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당시 일하던 이야기에서 시작해 서로의 결혼 이야기, 아이들 얘기를 했다. 프로 바둑기사인 그의 아내를 만난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재작년부터 포커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는 놀라운 얘기도 들었다. 포커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 2020년부터 해외를 다니며 경기를 하려 했는데 코로나 19가 막은 이야기, 유튜브 하며 지내던 중 섭외가 들어와 KBS 지상파 프로그램은 의미가 있기에 오랜만에 아침 생방송을 하게 됐다고 했다. 난 정말이지 그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김학도는 역시 개그맨이었다. 개그맨들에 이야기하면 왜 재미있는지 아시는가? 이야기에 나오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스토리를 실감 나게 재연한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인간 복사기 김학도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인물들의 오디오를 거의 완벽하게 재연하는 이야기는 재미없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각 소주 1병 한 후에 그의 제안으로 옆에 있는 시범상가의 한 치킨 집으로 옮겼다. 그때 시간 2시 50분이었다. 치킨 집으로 향하는 길에 김학도는 술을 자주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했다. 3달에 한 번 정도 한다고 했다. 그 얘기에 감동했다. 아직 3개월이 채 안 됐는데 나의 술 제안에 흔쾌히 응한 것이다.
내가 가고자 했던 치킨집은 보이지 않았고 그 시간에 문을 연 한 치킨집에 자리 잡았다. 프라이드와 생맥주를 시작했고 잠시 중단됐던 그 시절 이야기 2부가 시작됐다.
아무래도 김학도와 내가 공유하는 유일한 이야기인 93년 MBC에 들어온 개그맨 동기들 얘기였다. 특히 군기반장이었던 홍기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서경석과 이윤석에 대한 에피소드도 나왔고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축구를 같이 한다는 나경훈의 이야기도 반가왔다. 결정적으로 그와 콤비로 시험을 쳤던(이 얘기도 난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박명수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내친김에, 박명수에게 전화를 했다. 그도 오랜만에 한다 했다.
박명수 : (무게 잡는) 여보세요.
김학도 : 나야. 뭐해.
박명수 : (무게) 전화받지.
김학도 : 너 영주 형 알지?
박명수 : 누구?
김학도 : 왜 작가 형 영주 형
박명수 : 아 키 작은 형?
나 : 야 명수야!
이렇게 시작된 통화는 미리 연락했으면 갔을 텐데, 라는 그의 힐난으로 끝났다. 추억의 토크는 계속됐고, 그나마 내가 아직도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인
표영호에게 전화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김학도 : 영호 형
표영호 : 그래 학도야
김학도 : 지금 영주 형이랑 같이 있어
표영호 : 어딘데?
김학도 : 63 빌딩
표영호 : 그래? 나 마포가 사무실이잖아. 넘어와.
그렇게 해서 김학도와 나는 마포대교를 건너 3차를 했다. 그때 시간이 3시 30분이었다.
표영호는 굿마이크라는 강연 콘텐츠 전문회사의 대표다. 그의 사무실에는 마포문화예술협의회인가의 담당 공무원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표영호가 협의회장이었다.
김학도와 표영호는 수년 만에 보는 자리였고 나는 2년 정도 되었다. 코로나 19로 적지 않은 강연 수입은 끊겼지만, 그는 열정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가 한 선풍기를 보여줬다. 처음엔 그게 선풍기인 줄 몰랐다. 아주 작은 동그란 제품이었는데 그걸 펼치니 선풍기였다. 그는 그 선풍기를 유통하려 한다 했다. 제조업 분야에 발을 들여놓으며 사업의 경험을 넓히려 한다 했다. 그는 대학원도 다니고 있었다. 비즈니스맨의 풍모가 보였다.
4시쯤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우리 셋은 외부로 나가지 않고 캔맥주를 사 와 그의 방에서 한잔 두 잔 하며 폭풍 토크를 했다. 특히 표영호와 나는 사회 전반에 대한 얘기를 하며 날카로운 격정 토론도 했다. 적지 않은 이슈에서 의견을 달리했지만 너무도 재미있었다. 서울시장 선거, 윤석열, 부동산에서 세월호까지 그렇게 세 사람의 이야기는 불붙었다.
밤 10시. 우리는 술집도 아니었지만 괜히 정확하게 자리에서 일어났고 4인 이하의 사모임을 마치고 훗날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했다.
늦었지만, 김학도에 대해 계속 알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