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찾아라! 맛있는 TV> 제작기 어쩌다 보니 2부
1990년 대에 관해서 기록해야 할 것들은 아직 많이 있지만, 일단 진도 나가자는 의미로 2000년대로 가본다. 2000년에 했던 이런저런 프로그램들도 있지만, 나에게 21세기의 시작은 먹방이었다.
2001년 여름에 하고 있던 프로그램은 MBC <코미디하우스>였다. ‘허무개그’라는 코너가 반짝 눈에 띄었을 뿐 화제가 크게 되던 코미디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포복절도는 고사하고 미소 정도 짓게 했다고나 할까.
당시의 코미디는 20세기 마지막 가을에 파일럿으로 나타난 <개그콘서트 - 토요일 밤의 열기>라는 공개 코미디가 화려하게 부활하여 <개그콘서트>로 제목을 바꾸고 대박 행진을 기록하고 있었다. 1980년대의 코미디를 지배했던 KBS의 코미디가 21세기에 들어와 다시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비해 MBC의 버라이어티는 잘 나갔던 방면 코미디는 맥을 쓰지 못했다. 원래 안 되면 고치고 또 안 되면 바꾸면서 서서히 몰락한다. 그러한 코미디 프로의 작가로 산다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개그맨을 웃겨야 하는 코미디 작가로서 역량이 딸렸다. 명색이 코미디 작가면 비주얼부터가 뭔가 ‘풋!’ 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어야 하는데(차마 실명을 밝히지 못하는데 그런 비주얼의 코미디 작가들이 적지 않다. 풋!) 나는 타고난 게 꽃미남과였다. 결국 나의 힘듦을 눈치챈 메인 피디가 나를 놓아주었고, 다른 곳을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연이 닿은 곳이 캔디라는 이름의 한 제작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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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쓰는데, ‘이 얘기 뭔가 되게 익숙한데? 혹시 이미 쓴 건가? 설마? 아냐 그래도 혹시..?’ 하고 지난 글의 목록을 봤다. 헉!!!! 이럴 수가! 이미 쓴 내용이었다. 내가 얼마나 <찾아라! 맛있는 TV>에 할 말이 많았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쓴 건 삭제하고 다른 얘기를 해야 하나 했지만, 그냥 두기로 했다. 인생은 생방송이다. 이 자체도 그냥 알려드리면서 맛있는 TV에 관한 얘기를 계속하기로 했다. 지난번 쓴 건 맛있는 TV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였으니 그 후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면 될 터이다.
맛TV는 약 16년 동안 방영이 된, 장수 프로그램이다. 나는 그중 전반기 정도라 할 수 있는 6년가량을 했다. 몇 회를 했는지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248회 했다. 무려 248번이나 맛있는 음식들을 차렸다는 얘기다. 당연히 수많은 식당 사장님, 주방장, 셰프가 출연했다. 내 기억으로 초초초기인 20회 못 되어 백종원 씨도 스튜디오에 출연했다. <본가>의 대표 메뉴인 ‘우삼겹’을 현장에서 구우며 MC들과 함께 했다. 그때 잘 알아둘 걸, 이라는 후회를 하곤 했지만 뭐 어쩌랴. 내가 괜찮은 음식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틈틈이 끄적이고 있다.
지금은 방송에서 음식을 보여줄 때 빙그르르 돌아가는 장면들 너무도 자연스럽지만, 맛TV가 처음으로 시도했다. 케이크 만들 때 사용하는 돌림판을 이용했다. 뒤쪽에 검은 천을 걸어두고 그 앞에 음식을 세팅한 후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들어 올리며 촬영하는 기법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음식을 보여주는 호흡이 무척 빨랐는데 이런 톤앤매너도 맛TV가 처음 시도했다.
물론 고백하자면, 음식을 어떻게 하면 먹음직스럽게 보여줄 것인가에 관한 테크닉은 일본의 음식 프로그램에서 많이 배웠다. 2000년대만 해도 일본의 예능은 우리가 배우고 따라가야 할 것들이 많았다. 특히 과다할 정도의 자막 사용은 절반은 잘 배웠고 절반은 잘못 배웠다는 생각이다.
맛TV의 성과 중 첫 번째로 들 수 있는 건, 대한민국 방송에서 본격적으로 먹방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2001년 가을 무렵, 50분을 오로지 식당으로 콘텐츠를 채운 건 맛TV가 처음이다. 물론 그때도 음식을 소개하거나 식당을 보여주는 방송 프로그램이 없지는 않았다. <오늘의 요리>, <맛 따라 길 따라> 같은 요리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의 역사는 오래됐다.
SBS에 <그곳에 가면>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몇 개의 코너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식당의 사장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다만 분량이 10분에서 15분 정도였고 무엇보다 그 프로그램은 식당을 소개한다기보다는 휴먼 터치였다.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하는 사장님들의 고된 노동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적인 감동에 초점을 맞췄다.
당시에는 방송에서 식당을 맛집이라 부르면서 그 집의 메뉴를 소개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건 광고와도 관련이 된 문제인데, 일본의 방송에서는 식당을 소개하면 그 집이 어디에 있는지 주소와 약도까지 나왔다. 반면 우리나라는 그렇게 하면 큰 일 났다. 방송법에 걸린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식당을 소개한다 해도 간판은 절대 나가면 안 된다. 방송이 나간 후 해당 프로그램의 홈페이지에 방송 정보 항목란에 상호와 연락처, 주소를 표시하는 정도다. 이는 방송 콘텐츠로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해준 것에 대한 감사 표시이고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기에 제공하는 정보다. 물론 식당에서는 방송을 통해 홍보를 한다는 목적이 있다. 홍보를 위한 식당의 목표와 맛있는 그림을 위한 방송의 목적이 맞아떨어질 때 최상의 조합이 나오는 것이다.
맛TV를 소재로 강의를 할 때 꼭 거론하는 사람이 있다. 원성진 작가. 2001년 가을 첫 회를 기획하고 파일럿 녹화를 준비했던 작가팀의 막내였다. 그랬던 그녀는 1년, 2년, 3년을 열심히 하며 서브 작가가 되었고 점점 하나씩 성장하더니 결국 메인 작가가 되어 무려 16년이라는 긴 세월을 맛TV와 함께 한다. 프로그램이 폐지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20년이고 30년이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6년만 하고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겨 다른 우물들을 여기저기 파는 동안, 그녀는 음식이라는 한 우물을 우직하게 파서, 내가 아는 한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음식 전문 방송작가다. 혹여 음식 프로그램에 관한 기막힌 아이디어는 있는데 더 이상 활로를 찾지 못하는 자 있다면 원 작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고 확신한다. 나 역시 그럴 생각이다.
맛TV라는 먹방을 신호탄으로, 아시다시피 음식은 하나의 장르가 되어 계속 진화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물론 글로벌 방송시장에서 음식은 막강한 콘텐츠다. 프랑스인가 이탈리아인가에는 음식 프로그램만 만드는 제작사도 있다. 우리나라도 그런 제작사가 나올 때가 되었다. 음식 예능이든, 다큐멘터리든, 신박한 음식 프로그램이 나올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