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작가>를 읽고
살다 보니, 방송작가로 살다 보니 이런 일이 일어났다. 1명의 저자와 책에 등장하는 16명 인물의 대부분이 아는 사람인 상황. <#예능작가>라는 책이다. 그러니 읽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삼시세끼, 라디오스타, 한끼줍쇼, 슈가맨, 무릎팍도사, 불후의 명곡, 아는 형님, 출발 드림팀, 맛있는 녀석들, 1박 2일, 복면가왕, 히든싱어, 개그콘서트...
느낌이 오시는가. 잘 나갔거나 잘 나가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예능 프로그램들이다. 도대체 어떤 이들이 제작을 했기에 그렇게 재미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은 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동안 예능 프로그램하면 나영석, 김태호 피디로 대표되는 프로듀서들이 주로 조명을 받았다. 그에 비해 그들과 함께 손발을 맞추고 있는 예능작가들의 면면은 베일에 싸여 있었는데, 이 책을 보면 그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
무엇인가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얘기해 줄 수 있는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 대답을 듣는 게 가장 확실하다. 이 책은 30년 차 예능작가 김진태가 16명의 현직 예능작가들을 일일이 만나 묻고 답한 인터뷰 기록이다.
예능 프로그램에 궁금함이 많은 시청자 혹은 방송밖에 있는 저자가 만들어가는 인터뷰도 의미가 있겠지만, 같은 업계에 있는 사람, 게다가 같은 방송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좀 더 깊게 들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텐데, 이 책은 그런 점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 일하다 보면 이런 상황 있잖아, 나는 이렇게 하곤 하는데 너는 어떻게 하고 있어?’
‘그 개그맨이랑 이번에 일해봤는데 이러이러한 면이 있더라, 넌 그 개그맨이랑 오래 일했는데 그런 점들은 어떻게 생각해?’ 같은 질문이 가능한 것이다.
필자 역시 같은 업계에 있는 ‘내부자들’이라 그런지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들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한편으로는 반성도 했다. 난 그들에 대해 알고만 있었지 제대로 아는 게 아니었다.
물론, 예능 업계에 들어와 있지 않고 단지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시청자인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도 이 책의 미덕은 차고도 넘친다. 어떻게 방송작가가 되었는지부터 시작해서 그런 프로그램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 제작과정은 어떠했는지, 무엇이 힘들고 스트레스는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시시콜콜하게 표현되어 있다. 무엇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잘 나가는 예능인들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들도 나온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실 거다. <삼시세끼>의 텃밭에 심고 밥해 먹는 건 연기자들이 알아서 하는 건지 제작진이 정해놓는 건지. 하루에 세 번 끼니를 준비할 텐데 도대체 매일 가는 건지 며칠을 몰아서 한 번에 촬영하는 건지. <한끼 줍쇼>에서 이경규와 강호동이 ‘딩동’ 하고 남의 집 벨을 누르는 것은 100% 리얼인지 조금이라도 약속을 한 연출인지. <라디오 스타>의 메인 작가와 인간적으로는 친하지만 끝끝내 안 나오며 버티는 배우는 누군지 등이 수다를 통해 펼쳐진다. 마치 어떤 술집에서 친구와 한잔 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예능작가들인 것 같은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에 정신줄 놓으며 쫑긋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예능 프로그램의 미래에 대한 이들의 치열한 고민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방송 지형은 어떻게 변화할지, 글로벌 예능 시장에서 한국의 예능은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이들의 생각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보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은 읽어보실 것을 권한다. 예능 프로그램에 궁금함이 많은 분들이라면 두 번 보시고, 예능작가가 되고 싶은 분들이라면 세 번 보시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이 책의 저자와 인터뷰한 16명 다음 순위에 있는 18번 째 예능작가로서 드리는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