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돈가스 제8화
신동준은 소스를 만들기 위해 10개의 재료를 놓고 10가지 케이스의 조리법을 만들어 본다.
1번에서 10번까지의 조리법을 시도한다.
이 과정에만 약 5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고독하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홀로 태어나서 홀로 죽어야 하는 고독한 존재인 것을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가 느끼는 고독은 창조와 자기 성찰의 산실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의 삶은 손님과의 관계 속에서도 영위된다.
친밀한 손님과의 관계 속에서 느끼는 우정과 사랑은 결국엔 맛이라는 단 한 가지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 맛이 새롭고 기가 막히게 되면 그와 손님은 든든하게 연결이 되는 것이다.
<동갓>의 돈가스가 기존의 일반적인 돈가스가 아닌 ‘동갓’ 일 수 있게 한 소스인 식이섬유 소스는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드는 것인지 지켜보자는 생각으로, 날을 잡아 나도 같이 밤을 지새우고 싶다고 하니, 그가 말했다.
“김 작가님, 여기서 같이 밤을 새우는 건 전혀 말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동무라도 있으니 환영할 일이지요. 다만, 제가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혹시 해서 미리 말씀드리는데 식이섬유 소스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말은 절대 하시면 안 됩니다. 절대 보여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아 예, 전 뭐 홀에서 인터넷이나 하고 있죠.”
“그럴 거면 그냥 댁에 들어가시지 그러세요.”
“아뇨, 사장님 이야기로 책을 쓰려면 손님이 없을 때 분위기도 최대한 느껴봐야 하거든요.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일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작가님 신경 안 쓰겠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어찌 됐든 한 공안 안에 있어야 도대체 식이섬유 소스라는 것을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게 진짜 속마음이었다.
밤 10시가 되자 모든 영업이 끝났다.
신동준은 대강의 정리를 마치자 11시가 가까워 왔고, 보통은 시장을 다녀왔지만, 마침 다음 날의 예약이 많지 않아 시장에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11시 15분.
드디어 신동준은 뭔가 비장한 표정을 하고 주방 안을 분주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 그럼 전 소스 만드는 작업에 들어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절대 들여다보시면 안 됩니다.”
나는 결국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단지 귀를 쫑긋 세우고 알아낸 분위기만 전해드린다면, 뭔가를 써는 칼질하는 소리가 일정한 속도의 주기로 대 여섯 번 정도 반복이 있었다.
아마도 채소나 과일들을 잘게 만드는 작업 이리라.
그 후엔 믹서기 소리가 1, 2분 정도 들려왔다.
잠시 후엔 무엇인가를 쥐어짜는 듯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분명히 “끙! 끙!” 하는 강렬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도저히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정 정도의 침묵과 리드미컬한 소리들이 꽤 오랜 시간 교차하고 있었다.
도대체 식이섬유 소스는 돈가스를 어떻게 바꾸는 걸까.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돈가스 소스를 곧 생생하게 본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주방 안에서 신동준이 고개를 내밀었다.
“작가님, 특별히 완성된 모습은 보여드리겠습니다.”
냅다리 일어나 주방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의 손엔 락앤락 안에 들어가 있는 식이섬유 소스가 있었다.
초록색을 띤 맛의 결정체.
“이게, 동갓의 식이섬유 소스군요.”
“이제 여기 냉장고에서 하루 정도 숙성을 시키면 됩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식이섬유 소스를 보면서 필자는 언젠가는 반드시 비밀을 알아내고 말 거라는 다짐을 했다.
# 소스를 뿌려 먹어? 찍어 먹어? 정답은 가운데!
이제 기존의 브라운소스가 아닌 식이섬유 소스를 만들어낸 신동준에게 주어진 다음 과제는 돈육과 소스와의 조화를 어떻게 하면 환상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는가 였다.
그는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돈가스와는 다른 돈가스를 만들어야 한다.
과연 그것은 무엇인가.
어디에서 새로운 돈가스를 만날 수 있는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자줏빛 깊게 멍울진 심연에서 터져 나오는 가장 이상적인 음식을 만들어 손님들의 가슴을 들뜨게 해야만 살 수 있다.
새로운 돈가스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는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게 되는, 무척이나 절박한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1992년 어느 날, 신동준은 스승님과 한 갈빗집에서 생갈비를 먹고 있었다.
“자네는 어떤 요리사가 음식을 잘 만든다고 생각하나?”
“그거야 맛있게.. 풍부하게.. 재료가 지니고 있는 고유의 맛을 잘 살리는 요리사 아니겠습니까?”
스승은 갈비를 찍어 먹던 소금가루를 손으로 찍더니 들어 올렸다.
“자네, 여기에 뭐 뭐가 들어갔는지 알 수 있겠는가?”
신동준은 이제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긴 지라 손가락으로 소금을 찍어 맛을 본다.
“당연히 소금이 기본이고요.. 메밀, 후추, 통깨...”
신동준은 다시 한번 찍어 맛을 본다. 음미한다.
“마늘도 있는 거 같고요, 생강 냄새가 아주 옅게 느껴집니다. 어떻습니까?”
스승은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다.
“아주 잘했네. 근데,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네? 그거 말고 또 있다고요?”
신동준은 다시 한번 찍어 먹고, 또 먹어봐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뭐가 더 있는 겁니까, 선생님?”
“다시마가가 들어갔네.”
“네? 다시마요?”
신동준은 다시 맛을 보았지만 그 맛은 도저히 잡히질 않는 것이었다.
“요리를 잘한다는 건 무엇이 들어갔는지 손님이 모르게 하는 걸세. 그래야 재미있지 않겠는가.”
그 날을 떠올리며 신동준은 생각했다.
모르게 한다...
현재의 돈가스 소스는 밖에서 뿌리거나, 따로 찍어먹게 하고 있다.
제3의 방법은 없는 것인가.
아예 넣어버려...?
그래!
이것이 바로, 기존의 돈가스와는 전혀 다른, 돈육 안에 소스가 들어가 돈육과 함께 튀겨진 새로운 돈가스가 탄생하려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