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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작가 May 20. 2021

방송작가를 하며 처음으로 책을 쓰다

방송작가로 저자 되기의 어려움

MBC <찾아라! 맛있는TV>를 248회까지 했다. 2001년부터 2007년 즈음이다. 생각나는 일은 무수히 많지만, 내가 처음으로 책을 쓰게 된 과정을 떠올려보기로 한다.


방송작가를 하다 보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책이 쓰고 싶어 진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방송 일은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어나고 결정되는 일들이 참 많다. 처음 그린 큐시트 내용 고대로 일주일 후에 방영이 된 프로그램, 단연코 단 한 번도 없다. 그만큼 변수가 많다는 거다.


가장 죽을 맛은 준비해놓은 방송이 ‘죽는’ 거다. 여러 이유로 방송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갑자기 집중호우 등으로 속보가 편성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규모가 큰 행사가 시작되어도 그렇다. 그래서 많은 방송작가들은 국가적 혹은 글로벌한 행사를 무지 싫어한다.


맛티브이를 하면서 꽤 오랜 기간 동안 메이저리거 박찬호의 등판 일정을 체크한 적 있었다.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에서 뛰며 지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힘이 되어준 자랑스러운 투수 박찬호가 내게는 원망의 대상이었다. 맛티브이는 매주 토요일 오전에 방영됐는데, 박찬호가 선발로 나서면 MBC에서는 메이저리그를 편성했다. 맛티브이는 사망한다. 장렬하게 전사한다. 그렇게 되면 나의 한 회분 작가료는 지급되지 않는다. 힘겹게 한 주 방송을 준비했는데 박찬호가 공을 던지는 바람에 2주 후에 받게 되는 거니 나의 피 같은 수입은 절반으로 쪼그라드는 셈이다. 그러니 어찌 방송할 맛이 났겠는가. 언젠가 박찬호가 다치는 바람에 부상자 명단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난 만세를 불렀다.


비슷한 구조로, 방송 일은 의사결정 단계가 적지 않다. 내가 생각하고 나 혼자 결정하고 책임지는 시스템이 아니다. 내가 생각을 떠올린다 해도 작가팀이 회의하고 연출팀도 회의하고 팀장이 오케이 해야 한다. 팀장이 오케이 해도 부장이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 지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호시탐탐 나 혼자 생각하고 진행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자주 생각했고 대표적인 일이 책 쓰기였던 것이다. 책 작업은 기껏해야 나와 편집자만 소통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방송을 한다는 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정보를 알게 된다는 것인데,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책을 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절로 생긴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을 건 책 한 권 내보고 싶지 않은 이들은 적지 않을 터, 방송작가라면 열이면 열 그렇지 않겠는가. 이러한 다양한 이유들은 나에게 기회만 되면 책을 쓰라고 재촉했는데, 2005년 어느 날 전화를 받았다.


“찾아라 맛있는티브이 김영주 작가님 맞으세요?”

“네 그런데요.”

“넥서스라는 출판산데요, 맛집에 관한 책 한 번 내보시지 않겠어요?”

“네? 책이요?”


큰 고민 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난 단지 맛집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작가일 뿐 음식 전문가도 아니지만, 단지 처음으로 책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점만 생각했다. 무엇이든 일단 테이프를 끊어야 한다는 마음에 덜컥 받아들였다.


그리고, 2005 10 <어디 싸고 맛있는  없을까?>라는 책이 나왔다.



그런데, 책 표지에 작게 쓴 ‘MBC 찾아라 맛있는TV 작가가 공개하는 소문난 맛집’이라는 부제가 문제가 됐다. 프로그램의 타이틀을 허락받지 않고 썼다는 것이다. 난 MBC로 들어가서 무슨 콘텐츠 사업국 같은 곳의 담당자와 얘기를 했고, 결론은 인세 반띵이었다. 얼마 되지 않은 인세를 반으로 나눈 건 배 아팠지만 동시에 큰 교훈을 얻었다. 앞으로는 방송 프로그램을 걸고 다시는 책 내지 않으리라.


지금은 비록 절판이 된 책이지만, 나에게 저자라는 타이틀의 첫 테이프를 끊게 했다는 점에서 고마운 존재다. 그 후로도 난 계속 저자의 세계에서 도전했고 도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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