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어린 시절의 나는 부끄럼이 많고 말수가 적은 그런 아이였다.
지금의 내 모습을 아는 사람은 내가 그랬었다고 하면 아마 아무도 믿지 않을걸.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랬던 나의 어린 시절이 현재의 나를 만들어 왔구나 싶다.
나중에 잠깐 심리상담학 공부를 하면서 깨닫게 된 나의 모습이기도 했고.
특히나 어린 시절에 갖고 있던 트라우마로 인해 현재의 내가 작아지거나 화를 내는 이유를 알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런 반응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어린 시절, 안 그래도 예민하고 수줍음 많은 나는 위로 연년생인 언니와 일명 '범띠 가시나'인 여동생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남기 위해서 '착한 딸'을 선택했던 것 같다.
게다가 기특하게도 공부로 이기자! 는 생각을 했으므로 단연 성적 우수의 착한 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1980년대 초반)만 해도 다들 먹고 사느라 바빠서 아이들 보다는 돈 버는데 집중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왜 그러셨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모두들 그랬으므로.
부모님은 밑의 두 아이들만 데리고 아마도 집에서 버스로 1시간은 족히 넘는 거리의 동네에서 음료대리점과 갈빗집을 운영하셨었다.
위의 큰 딸 셋(그래봤자 내가 4학년)은 시골에서 올라온 할머니가 봐주셨고.
우리 할매가 어찌나 짠지,, 밥을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맞게 지었었다.
한 번은 어린 마음에 - 그것도 부끄럼이 많은 - 밥이 더 먹고 싶어서 할머니한테 어렵게 입을 뗐는데,,
매몰차게 '밥 없어!!'하시는 호령에 가슴이 쿵~ 눈물이 찔끔 났었다.
그 이후로 밥 더 달라는 말은 하지도 못했고 이때의 트라우마(!)로 내가 밥은 넉넉하게 짓는 큰 손이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
밥이 모자란다 싶으면 그렇게 불안하고 화도 나고(이유는 내가 더 먹을 밥이 없을까 봐ㅎ).
지금도 우리 식구들 중에서 내가 밥을 제일 많이 먹는다는 건 안 비밀~
한 40년이 흐른 어느 날,
막내 여동생과 엄마와 함께 종로엘 간 적이 있다.
아마도 뭔가 쇼핑을 하러 갔다가 너무 힘들어서 카페에 앉아 차를 한 잔 마셨는데..
산울림의 <청춘>이라는 음악이 나오는 거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그걸 듣다가 40여 년이 흐른 그 자리에서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 4학년 때 주말 동안 엄마, 아빠에게 갔다가 일요일 오후 3~4시에 버스를 타고 1시간여를 달려 집에 도착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 말이다.
어린 마음에 매주 헤어지는 그 시간이 너무도 힘들었었다고.
어느 날 엄마가 데려다준 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도착하여 부랴부랴 올라타고는 창 밖을 보니 우리 엄마가 눈물을 닦으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을 보았다고.
그때 버스에서 흘러나온 노래가 바로 그 <청춘>이었다고.
그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도, 나도, 막내 여동생도 함께 눈물을 흘렸었다.
그런데 그러면서 그냥 치유되었던 것 같다.
일요일 오후 3~4시쯤이 되면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이 생겼던 것도, 그리고 그 노래에 대한 생각도 모두 다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참 여러 가지 상황을 겪고 그것이 성격이나 삶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나는 태생이 예민한 데다가 이런저런 일들을 통해 더욱 예민해지고 약간의 우울감과 더불어 이겨야 한다는 강박에 말괄량이 짓도 굉장히 많이 했던 것 같다.
어쩌면 이제는 자연스럽게 나의 예민함도, 소심함도, 조용함도, 우울감도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
그리고 이제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활발함도 내려놓아야 하는 나이.
나의 약함을 보고 인정하며 그것을 통해 더 나은 나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