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민 Aug 14. 2020

1989년 5월 30일 화요일 맑음

새옷 전쟁

나는 커서 절대로  우리 엄마 같은 엄마는 되지 않을 거다.

내일은 그토록 기다리던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다.

수학여행을 가는데 꼭 필요한 건 바로바로 새 옷이다.

며칠 전부터 내 머릿속에는 수학여행 때 무슨 옷을 입고 갈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벌써 맘에 드는 반팔 티를 하나 봐 두었고 난 엄마가 그 옷을 꼭 사주실 거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에 내가 파마를 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파마를 안 하는 대신 나중에 옷이나 신발 같은 것을 사주신 다고 약속을 했었다. 그래서 오늘 엄마한테 내가 봐 둔 반팔티를 사달라고 했더니 글쎄 안된다고 하시는 것이다. 요즘 내가 옷을 너무 많이 샀다면서 말이다. 저번에 엄마가 파마를 못 하게  하셨을 때는 파마를 하면 학생답지 않아 보일 거라는 엄마 말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혀 이해가 안 된다. 내일은 내 일생일대의 수학여행 날인데.

내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는데.

엄마 때문에 다 망쳐 버렸다.  저녁을 먹을 때도 나는 화가 나서 엄마 쪽은 보지도 않고 식사를 했다. 엄마도 화가 나셨는지 나한테는 말도 걸지 않으셨다. 나는 최후의 방책으로 엄마에게 내가 저녁 설거지를 하면 옷을 사주실 거냐고 물어봤지만 엄마는 대꾸도 하지 않으셨다.

보다 못한 아빠가 그러지 말고 옷 한 벌 그냥 사주라고 하셨는데도 엄마는  "한번 안된다고 했으면 안 되는 거지 왜 이렇게 계속 조르냐"며 화를 내셨다. 아니 내가 요즘 옷을 많이 샀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수학여행처럼 특별한 날에 반팔티 하나 사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이렇게 딸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는 엄마가 세상에 또 있을까?

내일은 즐거운 수학여행날인데 눈 딱 감고 옷 한 벌 사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꼭 이렇게 딸 마음에 상처를 줘야 할까.

난 내가 커서 엄마가 된다면  내 딸에겐 절대로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엄마가 나한테 한 짓을 절대로 안 잊을 거다. 엄마가 너무 밉다.

매거진의 이전글 1989년 5월 7일 일요일 맑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