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종최 Nov 10. 2023

맛갈라의 현실밥상 1

상남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

실은 올해 새해 다짐으로 상남자가 되기로 했었다.


상남자


밥상을 차리는 남자

자신을 위해서든, 가족을 위해서든


무언가를 하려면 그것을 하는 자신만의 이유가 있어야

움직이는 사람으로 태어난 걸 아주 뒤늦게 알았다

나름대로의 논리와 명분이 있어야 한다.


상남자가 되려는 이유를 나름 정리해 본다.


운 좋게 몇 권의 책을 통해,

그 책들을 만난 이후로 내 삶이 조금씩 달라져갔다는 걸

느끼며 살아왔다.


1.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 헬렌 니어링

    (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


스콧 니어링의 아내, 하긴 두 사람은 법적으로 결혼한

적은 없으니 아내라고 부르기엔 적합하지 않다

아무튼 스콧과 함께 살았던 헬렌 니어링이 스콧의 삶을

중심으로 두 사람이 살아온 얘기를 적었다.


헬렌은 한때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했던 크리슈나무르티의 연인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직접 집을 짓고, 직접 농사지어 음식을 해 먹고.. 스콧은 죽기 직전 곡기를 끊음으로써 자신의 삶을 마무리한다.


사람의 삶이 저렇게 숭고할 수도 있구나!

어떻게 살아야 하고, 마지막은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충격이었고, 전율이 일었고, 제법 오랜 기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2. 양명학 공부, 전습록 풀이 / 현재 김흥호


현재 김흥호 선생은 다석 유영모 선생 제자 중 한 분이다.

다석 선생의 제자 중에는 유명하신 함석헌 선생이 계신다.

다석 선생과 현재 선생은 유학, 불교, 도교, 즉 유불선을

분리해서 보지 않고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실제로 실천하신 분들이다.


현재 선생께서는 쓰신 양명학 공부, 벽암록 등등

이젠 제목조차 희미한 책들을 통해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함께 해야 한다는 것,

스승을 만나야 한다는 것,

그리고 '도'라는 것은 마음은 비우는 것이 아니라

입장을 정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 책을 읽을 땐 한참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때였다.

그리고 '도'를 닦는다고, 마음 비운다고 참선에, 요가에,

벙어리 흉내에, 고무신에, 개량한복에, 황제내경에...

별에 별짓을 다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도'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입장을 정하는 것이라 하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참선, 요가, 벙어리 흉내 등등은 바로 접었다.


그런데 입장을 정하려면 뭘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제대로 아는 것이 없으니 입장을 정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지행합일, 스승이 중요하다는 것,

입장을 정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감感만 익힌 시기였다.


3. 율려란 무엇인가 / 김지하


자신 앞가림도 못하는 인간이 사회변혁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찾고 있었다.


선배, 동기들은 데모를 했지만, 나는 데모가 무서웠다

서로 돌 던지고, 도망가고, 잡혀가고... 하는 모습들을 보며 정말 겁이 났다.


좀 더 평화롭고, 재미있고, 유쾌한 방법을 없을까를

찾고 있을 때 만난 책이 김지하 선생의

'율려란 무엇인가'이다.


김지하 선생은

"율려는 치유다

 병든 사회와 문명을 치유하려면 인간 내면에 있는

 춤성과 음악성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때 현대적으로 변형된 국악, 명상음악, 신비한 소리들을 찾아 듣곤 했다.


최근 뵙게 된 악당이반 김영일 대표님의 말씀이

쏙쏙 들어오는 것도 '율려란 무엇인가'와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4. The element, how finding your passion

    changes everything / Ken Robinson


고시공부 대신 저런 책이나 읽던 인간이

2002년에 7급 공무원이 되었다.


아는 선배가 1년을 버티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했다

중간중간 그만둘 거라고 몸서리를 쳤지만 아직도

공무원 하면서 먹고살고 있다.

정말 지긋지긋해서 떼려 치우고 싶을 때 마침

국비유학 기회가 생겼다.

스웨덴을 택했고, '지속가능한 발전'에 관한 공부를 했다.


스웨덴에서는 1년 10개월 동안 머리카락을 두 번만 잘랐다.


고교 시절 로망이었던, 장발을 했고 머리를 묶고 다녔다

맘껏 걸었고, 맘껏 노래했다.


유학 준비하면서 자주 들었던 테드(TED)에서

켄 로빈슨 박사의 얘기를 들었고, 스웨덴에서 그의 책을 샀다. 걸어 다니며 읽었다.


뭔가 보이는 듯했다.

현재 김흥호 선생께서는 입장을 정하라고 하셨고,

스승을 만나라고 하셨는데,


켄 로빈슨 선생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element)을 찾으라고 했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tribes)을 만나라고 했다


현재 김흥호 선생께서는 입장을 정하라고 하셨고,

스승을 만나라고 하셨는데...


아... 뭔가 실마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그럼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 막혔다.


귀국해서 맡은 업무가 마을기업이었다.

이 일은 좀 재미가 있었다.

뭔가 해답이 보였다.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마냥 신기하고 좋았다.

잘 되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런 일을 하면 즐겁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5. 도덕경 / 최진석


그전에는 도덕경을 몇 장 넘기다 말다 했는데

최진석 교수의 도덕경은 끝까지 다 읽었고

제법 여러 번 읽었다.


제일 마음에 다가온 말은 '거피취차(去彼取此)'였다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라'


저 멀리 있는 추상의 세계보다는

여기 가까이 있는 현실의 문제에 집중하라!


오랜 시간 추상적 생각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던 나를 구체적인 현실 세계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말이었다.


그럼 어떻게 구체적인 현실과 닿을 수 있을까...

이 책에 빠져 있을 때 사회혁신 네트워크를 만들라는

김경수 지사의 주문이 있었다.


이제 지역의 문제는 공무원의 힘만으론 해결할 수 없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지역주민 주도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것을 '사회혁신'이라 불렀다.


그래서 경남혁신도시 지역상생 네트워크,

'함지네(함께 만드는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지역주민분들과 만나 얘기하고, 그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었고, 실제 해보기도 했다.

(장애인과 함께 하는 비사치기, 남강청소 등)

그러면서 참 많이 배웠다.

아... 주민분들의 얘기를 들어서 정책을 만들어야겠구나...

우리 시민들의 집단지성의 힘이 이렇게 강하구나...

정말 지혜롭고 현명하신 분들이 많구나...

 

탁상행정에서 현장행정으로 조금씩 옮겨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행정가로서의 구체적 세계는 시민분들의 얘기를 듣고,

원하시는 것들을 알아가면서 발견되는 것이구나... 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스승이란 만나서 얘기하고, 함께 무언가를

하다 보면 대부분 그때마다 스승이 계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젠 보고서를 시민분들의 얘기를 듣지 않고서는 만들 수가 없게 되었다.

위에서 빨리 만들라고 시키지만, 나는 이미 시민분들의

얘기를 듣지 않고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위에서 보면 게긴다고 생각하기 딱 좋다.


6. 발터 벤야민의 공부법,

    사소한 것들에 대한 사유/ 권용선 지음


발터 벤야민은 새로운 것보다는

'낡은 것'에 집착했다고 한다.


쓸모없는 것에서 쓸모를 발견하고,

너무나 평범하고 사소해 보이기 때문에

세련된 지식의 영역에서는 배제되었던 어떤 것들을

말하거나 실천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꼈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아주 그럴듯해보는 거대한 기획(grand scheme)에서 벗어나 낡고 오래된 집들,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과 얘기에 관심을 더 갖게 되는 계기가 된 듯하다.


7. 파타고니아 / 이본 쉬나드


마을기업, 공동체 활동 등의 지속가능성에 의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지원 없이 지속가능하려면

적절한 사업모델이 있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예전에는 CSR로 불렸는데,

요즘은 ESG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기후위기 속에서 지속가능한 사업모델...

아직까진 '파타고니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8. 외로운 사람끼른 배추적을 먹었다 / 김서령


돌아가신 김서령 작가의 글도 너무 좋았지만

음식을 직접 해먹어보는 계기가 된 책이다.


9. 사유 식탁 / 알랭 드 보통


식재료와 요리가 어떤 생각과 감정을 일깨우고,

어떻게 문제에 직면할 태도를 갖추도록 돕는지를

레몬, 라임, 아보카도, 버섯, 마늘, 달걀 등

16개의 핵심재료와 132개의 레시피를 통해 보여준다.


이젠 '상남자가 되고자 하는 결론을 말할 때가 된 듯하다.


기후위기 속에서 음식의 소중함과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잘 알 수 있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tribes)들과

남녀노소 관계없이 소통하고,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삶에 대한 태도와 입장을 정하고,

너무도 사소하고 평범해 보여 그 가치를 인정하기가

쉽진 않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려면 꼭 필요하고,

인간이 가진 모든 감각과 영감까지 총동원할 수 있고,

가족과의 관계도 잘 풀어갈 수 있는

가장 행복하고 효과적인 유일한 방법은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밥상을 차리는 남자',

'상남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정도 논리와 명분이면,

충분히 상남자가 되어볼 만하다.


아니

간절히 상남자가 되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맛갈라의 현실밥상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