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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최 Oct 30. 2023

종최의 낭만행정

비고시가 총무라서 동문회가 잘 안 돌아간다

직장에서 당한 갑질은 낭만행정의 좋은 재료다.

내가 높은 자리에 오르면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게 된다.


나는 성균관대학교를 나왔지만 학교에 별로 애착이 없었다. 졸업장도 못 받고 겨우 졸업만 했다.

졸업가운을 돌려주고 졸업장을 받아야 했는데,

술 먹고 졸업가운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원하던 학교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학교는 물이고, 나는 기름이었다.


모의고사 점수가 290점대와 300점대 초반이어서

고3 담임 선생님은 서울대 철학과를 추천하셨다.

나는 단칼에 거절하고 서울대 외교학과에 원서를 넣었다. 당연히 떨어졌다. 재수를 해서 또 서울대 외교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또 떨어졌다.


내가 대학시험 볼 때는 '선지원 후시험'이었다.

눈치작전을 막는다고 나라에서 입시제도를 바꾸었다.

대학에 원서를 먼저 넣고, 시험은 뒤에 봤다.

시험을 먼저 보고 점수가 나오면 점수에 맞춰 대학을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지지리도 복이 없었다.


성균관대 후기에 지원을 했다. 1순위는 법학과, 2순위는 중문학과였다. 법학과는 떨어지고 중문학과에 붙었다고 연락이 왔다. 삼수할 자신이 없어 그냥 학교에 다니기로 했다.


그러니, 뭐 학교를 제대로 다녔을까!


맨날 술이야, 난 늘 술이야~~

바아브의 '술이야'를 거의 매일 몸소 실천하며 살았다.

동아리 활동도 전혀 안 했다. 또래 동기들보다는 나이 많은 형들과 어울려서 놀았다. 지금도 연락하는 대학 친구는 한 명뿐이다.


졸업을 하고 직장에 있는 동문회에도 한 번도 나가지 아니하였다. 선배들과 후배들의 백이 중요하다며 열심히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난 흥미가 없었다.


그런 내가 하나의 사건과 어떤 존재 덕분에 지금은 조금 성대에 애착을 갖게 되었다


1. 비고시가 총무라서 동문회가 잘 안 돌아간다


후배 형훈이는 ****부 성대 동문회 총무였다.

어찌하다 보니 후배인 걸 알게 되었고, 술을 한잔 하게 되었다.


그런데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어는 날 행안부 성대 동문회 모임에 나갔더니 어느 고시 출신 선배가 "비고시가 총무라 동문회가 안 돌아간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동문 모임에 안 나간다고 했다. 마음에 상처를 얼마나 받았을까!


이 일이 있고 총무가 고시 출신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지금도 고시 출신이 총무인지 모르겠다.


내 같았으면 그 선배 아마 반쯤 죽였을 거다


"이런, 개새끼"


그래서 동문회 재건에 들어갔다. 비고시들 위주로 별도의 동문회를 새로 만들고, 고시 출신들은 심사를 해서 싸가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몇 년 전에 내남도청으로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동문회는 흐지부지한 모양이다.

가끔 세종가면 몇몇 후배들과 한잔씩 하곤 한다.


이게 성대에 애착을 가지게 된 하나의 사건이다


2. 명륜당 은행나무


다른 하나는 명륜당에 있는 거대한 은행나무들 덕분이다. 나무를 참 좋아한다. 오래된 나무는 더욱 좋아한다. 며칠 전에 가보니 단풍은 절정이 아니었다.

절정일 때 다시 오리라 다짐했다.


3. 고시제도에 대한 고민


내가 그럴 권한이 있다면 고시제도에 대해 고민해 보겠다.


고시출신 분들이 책임감도 강하시고,

일도 열정적으로 하시고,

보고서도 보기 좋게 잘 만드시고,

자부심도 대단들 하시다.

(내가 이런 보고서를 쓰다니 역시 나는 대단한 놈이야...)


그런데 그 멋진 보고서가

현실과 잘 안 맞는 부분들이 제법 많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똑똑한 분들만 선별당해서 모셔졌는데...


아울러 고시 출신분들과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물론 다들 그렇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내가 그럴 권한이 있다면 일은 좀 천천히 가르치고,

인사 잘하고 말조심하는 것부터 훈련시키겠다.


겨우 성대 나와서도 저런데, 서울대라도 나왔으면!


동문 후배한테 그런 소리를 하는 작자가 직장 동료들한테는 잘하겠는가! 역시 안 좋은 소문이 들렸다.


지금은 서울대 못 간 것, 법대 못 간 걸 천행으로 여긴다.


거기 졸업다면 '낭만행정'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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