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뒤를 돌아보면.....

by 앞니맘




'돌싱즈'라는 예능에 빠져서 한 동안 애청자

로 지냈다. 비슷한 프로그램인 '솔로'는 이미 결혼이라는 것을 해 본 나로서는 '좋을 때다. 결혼해 봐라.' 하면서 딱히 재미가 없었다. '돌싱즈' 역시 너무나 젊고 멋진 선남선녀가 나오다 보니 그들이 이혼이라는 상처를 겪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까먹고 시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에 대한 이야기와 고민, 그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돌싱즈와 '솔로'의 차이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밝고 한 없이 긍정적일 것 같은 출연자가 자녀 이야기만 나오면 100%로 눈물을 쏟아낸다. 엄마인 나는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엄마 이야기만 하려면 눈물이 쏟아지는 것일까?




돌싱즈 속에 출연자들의 눈물을 보면서 나는 20년 전 내 품에서 숨죽여 울던 금이를 떠올린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얼굴도 예쁘고 속도 깊었던 금이는 다른 지역에 살다가 친가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사촌 오빠들이 다닌 우리 유치원에 아빠와 고모의 손을 잡고 온 날을 기억한다.

"여기가 오빠가 다닌 유치원이에요? 제가 다닌 유치원보다 놀이터가 커요. 그런데 여기는 백화점이 없어요." 조잘조잘 얘기도 잘하고 잘 적응했다.

"선생님 부탁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금이 엄마랑 이혼 소송 중입니다."

"금이한테 들었어요."

"혹시 유치원에 만나러 오면 못 만나게 해 주세요."

"서로 합의가 되신 건가요?"

"합의 무시하고 갑자기 와서 데리고 갈 수도 있어서요."

"알겠습니다."

"혹시 그런 일 있으면 전화 주세요."


금이 아빠 말대로 얼마 뒤에 유치원에 외할머니와 엄마가 찾아왔다.


"선생님 금이 엄마예요. 금이 좀 만나게 해 주세요."

"아버님이 만나지 말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냥 얼굴만 보고 갈 거예요."

"제가 아는 금이 보호자는 아버님이라서 기관에서는 어쩔 수가 없어요. 죄송합니다."

흐느껴 울던 금이 엄마가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그럼 금이한테 엄마가 왔는데 만나겠냐고 한 번만 물어봐 주세요."

나는 잠시 금이 입장에서 고민했다. 어른들에 결정이 아니라 아이에게도 선택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럼 기다리세요. 단 절대 함부로 행동하지 마세요. 금이 입장에서 생각하셔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나는 교실 가서 금이를 불렀다.

"금이야, 엄마랑 할머니가 오셨어."

"왜요."

"금이 보고 싶어서 오셨데."

"........"

"아빠한테 얘기 안 할 거야. 그러니까 만나도 괜찮아."

금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금이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엄마를 보는 순간 밝게 웃으며 엄마 품에 안겼다. 자동차 안에서 금이와 엄마는 한 참 동안 이야기를 했다. 나는 혹시나 금이를 데리고 차가 떠날까 봐 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한참 후에 차에서 내린 금이는 엄마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내 쪽으로 와서 나에 손을 잡았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우리 금이 잘 부탁드려요."

"걱정 마세요."

"엄마 안녕."인사를 끝낸 금이는 엄마가 떠나기도 전에 내 손을 잡아끌고 유치원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가 "금이야."하고 부르는 소리에도 금이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2층 계단을 올라와서 교실 입구에 도착했을 때 금이는 내 품에 안겨서 소리 없이 울었다. 나도 울었다.

한 참 후에 내 품에서 떨어지며 말했다.

"뒤를 돌아보면 엄마한테 가고 싶을까 봐 못 들은 척했어요."

"그랬구나."

"나중에 엄마가 데리러 온데요."

"엄마하고 가고 싶었어?"

"아니요. 나중에 같이 만나기로 아빠랑 약속했어요. 선생님 오늘 고맙습니다."

일곱 살에 어른이 되어버린 듯한 금이를 위해서 말없이 토닥토닥 한참을 안아 주었다.

하원 시간에 나에게 달려와서 금이가 속삭였다.

"오늘 엄마 만난 건 진짜 비밀이에요."

"걱정 마." 손가락 걸고 복사하고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나는 어른으로서 선생으로서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금이가 엄마랑 아빠 다 사랑하는 것처럼 엄마 아빠도 마찬가지야."

"알아요." 쿨하게 대답하고 버스를 탔다.


예쁘고 밝게 자란 금이는 사춘기도 잘 보내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을 했다. 업 후에 본인의 목표와 계획대로 취업도 했다. 금이 소식을 들을 때마다 기뻤고 감사했다.


결혼과 이혼 사이에는 자녀가 있다.

"애들만 아니었으면 100번은 이혼했어." 우리 엄마도 옆집 아줌마도 남편에게 화가 나면 입버릇처럼 뱉었던 말이다. 그만큼 이혼이라는 과정을 결정할 때 자녀는 가장 큰 이유가 되기도 하고 핑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자녀가 있는 가정은 훨씬 어려운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이 태어난다. 혼 또한 아이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엄마나 아빠 부제한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참, 뭐 같은 경우`일 것이다.


자녀를 위해서 무조건 참고 살라는 말은 이제 꼰대도 하지 않는 말이다. 다만 이혼이라는 과정서 본인들의 감정에만 집중하는 동안 자녀들이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자녀를 배려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것은 어른으로서 부모가 해줘야 하는 마지막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한다.


"금이야, 엄마랑 아빠랑 헤어지는 건 네 잘못이 아니야. 엄마 아빠가 너를 엄청 사랑하는 건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 걱정하지 마. 괜찮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