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에 관한 이야기(1)

by 앞니맘


설날을 앞두고 세뱃돈 준비를 하면서 딸의 지갑을 들고 은행에 간 일이 생각났다.



나는 아침 일찍 딸의 지갑을 들고 은행 창구에 앉았다. 갑자기 들고 나오느라 돈을 정리하지 못하고 통째로 들고 나왔다.


"어떤 상품에 가입하실지 생각해 오셨나요?"

"딸아이 이름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투자해도 좋은 걸로 추천해 주세요."

"일찍 하셨으면 수익을 많이 내셨을 텐데 요즘은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그러게요 마라탕으로 탕진하기 전에 투자를 했어야 하는데요."

"네? 마라탕이요?"

직원분은 나를 보고 궁금하다는 듯 물어보았다. 나는 대답 대신 웃음으로 답을 하고 딸의 지갑을 털어서 10원까지 입금을 하고 은행을 나왔다.


딸은 어릴 때부터 현금 부자였다. 늦둥이 막내딸라서 어딜 가도 인기가 좋았고 붙임성까지 좋아서 용돈을 자주 받았다. 딸이 용돈을 모으게 된 이유는 듀얼 핸드폰을 사기 위해서였다.

"엄마 V50(비피쁘띠) 사줘."

"그게 뭔데?"

"핸보폰이야."

발음도 부정확한 딸이 원하는 핸드폰을 정해놓고 나를 조르는데 나는 그 제품 자체도 모르고 있었다.

"유치원생이 무슨 핸드폰이야. 오빠들은 중학교 때 사줬어.도 기다려야 해."

"중학교 때까지 못 기다려."

"엄마는 돈이 없어."

"돈 있으면 내 맘대로 사도 되나?"

"그래라."

돈이 없다는 말이 제일 쉬워서 한 말인데 내 실수였다. 딸은 어려도 너무 어렸지만 핸드폰에 진심이었다. 그날부터 핑크색 지갑에 용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다르게 장난감도 안 사고 과자도 자기 돈으로는 사지 않았다. 추석과 설을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월하게 용돈 50만 원을 모으고 나를 조르기 시작했다.


"엄마 빨리 핸드폰 사러 가자. 내가 알아보니까 이 돈이면 충분해."

더 이상 무조건 안된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핸드폰을 사게 하고 싶지 않던 나는 가격을 대략 검색해서 알아보고 살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딸과 하이마트로 갔다. 부정확한 발음으로 원하는 핸드폰을 말하는 딸에게 직원이 이것저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딸이 한 곳을 가리다.

"저기 있다."

진열대 위에 핸드폰을 가리켰다. 스크린이 두 개가 겹치는 핸드폰이었다. 딸이 알고 온 금액은 핸드폰 한쪽화면 값정도다. 직원은 딸에게 전체를 다 사려면 지금 만큼 더 모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는 속으로 안도하면서 딸에게 말했다.

"오늘은 못 사겠다. 더 모아서 오자."

떼를 쓰면서 울까 봐 걱정했는데 한 참을 말없이 진열대 앞에 서 있더니 결심이라도 한 듯이 말했다.

"이 핸드폰은 너무 무거워서 안 사."

용돈을 모으기만 하는 딸에게 작은 아들이 해준 말이었다. 딸과 나는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용돈 힘들게 모았는데 핸드폰 못 사서 속상하지?"

괜찮다고 말할 줄 알고 던진 한 마디에 딸은 고개를 끄덕이며 울고 있었다. 순간 '다시 들어가서 사줄까?' 큰 일 날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꾹 참고

"어부바해 줄까?"

딸을 업고 춤을 추듯이 뛰었다. 딸은 금세 눈물을 멈추고 까르르 웃었다.

"근데 엄마 우리 대게 사러 슈퍼 가자. 이제 돈 필요 없으니까 맛있는 거 사 먹을 거야."

그날 저녁 우리 가족은 약 30만 원 가까운 대게를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게 가격이 그렇게 비싼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것까지 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 세운 목표가 좌절되는 순간을 지켜본 엄마가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배려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더 모아서 핸드폰을 사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한 턱 쏘는 거야. 다음에는 페미리 레스토랑 가자. 돈 남았어."

유튜브 먹방을 보면서 쌓아 놓은 정보를 대 방출하면서 앞으로의 소비 계획을 쫑알쫑알 떠들었다.

"너, 용돈 이렇게 다 쓰면 핸드폰은 포기한 거야?"

"어차피 중학생 되면 엄마가 사준데. 나는 엄마걸로 게임하고 용돈으로 맛있는 거 먹고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 갈 거야."

"이 번에는 여행갈돈 모을 거야?"

아들과 딸의 대화를 듣다가 방학 동안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 갔다 온 친구얘기를 하면서 자기도 여행 가고 싶다고 나를 졸랐던 말이 기억이 났다. 그때도 대수롭지 않게 돈이 없다고 말했었다. 나는 핸드폰 사건과 같은 일이 일어나서 아이에게 좌절을 주고 싶지 않았다.

"여행은 돈만 문제가 아니고 엄마랑 아빠가 쉴 수 있어야 해. 하지만 꼭 같이 가자."

"그러면 친구가 여행 갔던 보라카이 갈 거야."

딸은 신이 나서 대답하고 작은 아들과 보라카이를 찾아보고 여행 경비가 얼마 정도 드는지 물어보았다.


그 뒤로 딸은 보라카이 갈 정도의 용돈을 모았지만 코로나와 오빠들의 입시가 막았고 엄마와 아빠의 바쁨으로 제주도에 잠깐 다녀오고 아직도 보라카이를 가지 못 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용돈이 세기 시작한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