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봄이야 냉이가 꽃이 핀 것도 있더라고. 시간 진짜 빠르네. 낮에 보니까 곧 산수유도 피겠어."
"산수유?"
남편이 식탁을 닦으면서 내 등뒤에서 혼잣말처럼 얘기했다. 산수유가 무슨 꽃인지 머릿속에서 검색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닥다닥 붙은 노란 꽃"
"아하, 저기께 피는 건가?"
캄캄해져서 보이지 않는 창밖을 가리켰다. 집 뒤에 산속에 있는 산수유나무를 가리키는 것이다.
"오우, 주입식 교육이 승리했어. 이제 그걸 다 알다니 ㅋㅋㅋ."
"벚꽃은 언제 피나."
"아직 기다려야지. 목련 개나리 그런 거 먼저 피고 나면 피는 거잖아."
나는 설거지를 하고 남편은 식탁을 정리하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금요일인데 맥주 한 잔 할 거야?"
거실에 술상을 차리면서 남편이 물었다.
"나는 안주만 먹을 거야."
저녁식사가 끝나면 남편이 늘 차리는 술상에 나는 오늘도 똑같이 초대가 되어서 앉았다.
"왜 안 마셔 어디 안 좋아?"
"내일 애들 공연 보러 가는 날이라서 일찍 나가서 머리 자르고 지하철까지 데려다주고 오려고."
"공연이 내일이구나."
큰애가 막내 생일 선물로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 예약을 해 놓았는데 그날이 바로 내일이다.
"둘만 보내도 되는 거야?"
"오빠가 아빠 만한데 뭘 걱정해."
나는 소파에 앉아서 얇은 담요를 덮으면서 말했다.
"재판은 또 다음 달 언제야?"
"27일. 생각하기도 싫다."
남편은 송곳처럼 변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글라스에 소주를 따라서 들이켰다.
"판사가 바뀌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야."
"서류부터 다시 제출해야 하는 거야?"
"서류는 그동안 가져다줄 거 다 줬으니까 추가서류 아니면 없겠지. 그런데 모르지. 뭐 또 말도 안 되는 거 증명하라고 하면 또 내야지. 변호사가 전체적인 거 정리해서 ppt로 설명한데."
"서류는 우리만 제출하나 봐. 그 새끼들은 내라고 한 것도 안 내고 있다면서."
햇수로 5년 전에 시작한 재판은 아직도 제자리를 맴도는 기분이었다. 소송, 재판 이런 거 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적법하게 산다고 살았는데 고소를 당하고 보니 적법하게 사는 것과 소송은 다른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재판에서 가장 답답한 것은 일반인의 상식이나 드라마처럼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성폭력 사건에서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증명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돈을 줬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이체증이나 계산서 같은 걸 제출하면 끝인데 서류 제출은 안 하고 재판을 끌기만 하면서 못 받은 사람이 못 받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써간 진술서는 잘 제출했어? 판사가 잘 읽어 보기는 하나?"
"아이씨 몰라. 사람이 죽어야 알아주려나."
"됐거든. 그런 말 마지마. 뭔 헛소리야."
남편의 헛소리에 나는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 않았다. 재판에 관한 얘기는 궁금하지 않은 척 묻지 않아도, 궁금해서 물어도 항상 이렇게 침묵 또는 분노로 대화가 마무리된 것이 몇 년째 반복 중이다.
"오징어도 너무 비싸서 1년에 한 번만 먹어야겠어."
"이제 바다 오염 때문에 그것도 못 먹게 될걸."
남편은 다시 술을 한 잔 따르고 나도 맥주를 한 잔 따랐다. 남편이 내 맥주잔에 손가락을 걸친다. 늘 하는 남편의 주도다.
"텃밭에 퇴비 비닐 정리 했던데."
"티 났어?"
"티가 팍팍 났어. 들어오는 길이 깔끔해져서 바로 알아봤지. 수고했어. 근데 그거 내가 자기 없을 때 다 정리해서 담은 거야. 알지?"
"알았어. 알았어."
나도 했다는 걸 짚고 넘어가는 나에게 억지로 잔을 부딪혔다. 이렇게 우리는 재판에서 멀어지려고 애썼다.
더글로리를 언제 볼까 고민하는 나에게 피곤하지 않을 때 보라는 말도 하고 욕이 반이상인데 그런 영화 싫어하면서 볼만하냐는 질문도 했다.
"직접 복수하잖아. 다른 사람한테 의지하고 판결받을 필요 없이 그냥 다 싹."
내 말에 남편은 쓴웃음을 지었다.
남편은 법정드라마를 싫어했다. 내가 정규방송을 보겠다는 의지가 강하면 자리를 피하던지 이어폰을 끼고 다른 방송을 들었다. 나도 같이 변해가고 있는 중이고 최근 같이 본 드라마는 모범택시다.
"나도 저기다 전화해서 의뢰하고 싶다."
나도 남편도 초점을 잃어버린 분노가 쌓여서 정의로운 방법보다는 내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방법에 더 마음이 가고 있었다.
"피곤한데 조금만 보고자. 나 먼저 올라갈게."
우리가 함께한 공간에서의 일상의 대화가 24년 나와 남편이 만든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