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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Apr 08. 2023

인정해야 하는 시간



"연락할 친인척이 없으세요?"

혼자  울다가 지쳐서 잠시 멈춘 나를 향해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에서 지켜보던 형사였다.

그렇다. 나는 지금부터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남편이 다시는 손이 닿을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다고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여동생이었다. 어린 나였다면 엄마를 찾았겠지만 이제는 엄마를 황에서 어찌 보호해야 하지를 고민해야 하는 중년의 나이가 되어있는 것이다.


"우리 집에 빨리 와 줄 수 있어?"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언니, 무슨 일 있어? 자세하게 말해봐."

몇 시간은 걸리는 우리 집에 당장 올 수 있냐는 뜬금없는 소리에 동생은 무슨 소리인지 다시 물었다. 동생은 무엇인지 모를 불안 고 최대한 차분을 유지하면서 내게 다시 물었다.

"형부가 형부가....."

자세하게 어떤 말을 어떤 단어로 설명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쳤어?  사고 났어?"

나는 '죽었다.'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계속 같은 말한 되풀이 했다.  자신이  남편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달았다. 나한테 닥친 현실을 피할 수  아는 순간 나는 통곡하고 말았다.

"언니 내가 지금 갈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돼. 막내가 먼저 도착할 거야. 정신 차려."


형사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평소보다 더 캄캄하고 어두운 길을 달려 아무도 없는 장례식 사무실에 혼자 앉았다. 누구 연락할 사람 없냐는 질문에 멀리서 동생들이 오고 있다고 대답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들이 수없이 많았고 잘 헤쳐 나가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나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그곳에 앉아 있었다.


난감해하는 직원을 보다가 전화기를 들어서 전화를 했다. 직장의 이사장 이스님과 30년 전 학부모로 만나서 가족 이상으로 의지하고 지낸  건이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단숨에 달려온 스님과 건이 부모님은 나만큼이나 믿기지 않은 다는 표정으로 나를 안아 주셨다.

"이게 무슨 일이야."

건이 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나는 부둥켜안고 우는 일 밖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늘 함께 할 줄 알았던 마음은 나나 그분들이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연락할 사람이 없었어요. 고맙습니다."

"뭔 소리야. 물 마셔요."

바짝 마른 내 입에 물한 잔을 적셔 주시며 내 손을 놓지  않던 그 마음은 가족 이상의 온정으로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그날의 그 온기는 평생 나와 함께 할 것이다.


직원이 들어와서 장례절차에 대해서 하는 말은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스님과 건이 부모님이 설명을 들어주시고 급한 것을 처리해 주셨다. 나머지는 동생들이 오면 결정하겠다는 말을 하고 내 정신을 잡느라 눈알이 빠지고 머리가 쪼개지는 아픔을 느다. 나와 남편은 한 집안의 장남과 장녀로 성장했다. 동생들을 챙기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오는 동안 오늘처럼 동생들을 기다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막내 동생이 도착하고 나는 경찰서에  가야 했다. 상세하게 상황을 물어보는 형사 앞에서 나는 죄인처럼 앉아서 대답을 했다. 병사나 사고사가 아니라서 거쳐야 하는 절차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최근 가장 힘들었던 일이 있었나요?" 

질문을 받을수록 남편의 죽음이 내 탓처럼 화살이 되어 날와서 나를 찌르고 있다.

'옆에 딱 붙어 있었어야 했나? 내가 뭐 잘못했나? 재판이고 뭐고 하지 말고 다 주고 맘 편하게 살자고 했어야 하나? 아니 결혼부터도 하지 말았어야 했나?' 내 선택에 대한 모든 것을 부정하면서 내  영혼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남편의 마음을 다는 아니라도 가장 많이 안다고 믿었던 나였기에 남편의 선택 앞에서  내  믿음과 신뢰는 방황을 시작했다. 그리고 자책했다가 원망으로 돌아섰다. '내가 정말 남편을 랐던 것인가? 이 정도로 병들어가는 남편의 마음을 알기에 나는 그의 삶에 숙하게 들어가지 했나. 나와 가족이 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의미인가? 그래서 이렇게 버려진 것인가? 갑인 줄 알고 살았는데 나는 철저하게 을이었고,  내 사랑은 짝사랑으로 끝이 나는 것인가?' 억울함과 함께 30년 함께한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남편은 늘  내게 새로운 숙제를 던져 주고 그것을 해결하는 나를 보면서 만족해했었다.

"나 때문에 모르던걸 또 배웠지?  내가 글쓰기 소재 준거야."

하지만 잔인하게도 배우고 싶지 않은 것까지 배우게 하고 상상조차 하기 싫은 글감을 던져주고 떠났다. 그렇게 사랑했던 아이들과 본인이 해결하지 한 무거운 숙제까지 그대로 내 몫으로 남기고 가버렸다. 그동안 남편이 던져준 숙제를 잘 풀었던 것처럼 이 숙제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나는 두려움에 내 몸의 모든 기능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돌아와 보니  엄마를 뺀 나의 형제와 남편의 단 한 명의 형제인 시동생이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숙사에 있는 아들과 공연장에 간 아이들은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

'나는 아이들과 어찌 눈을 맞추고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이렇게 남편은  우리 가족과 하루만큼 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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