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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Apr 16. 2023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묻힐까요.



입관식이 끝나자 제사상이 차려졌다. 이제는 정말 망자로 인정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남편이 좋아하는 나물반찬이 올라왔다. 하지만 꽃장식도 향냄새도 모두 남편이 싫어하는 것들이다. 현실이라면 사람들이 찾아와서 형식을 갖춰서 예의를  표시하는 것을 어색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진 속에서 반갑다는 듯이 웃고 있다.


나에게는 넘어야 하는 산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시부모님과 친정엄마께 남편의 사고를 알리는 일이었다. 부모님들의 건강과 충격을 생각해서 계속 미루고 있었지만 아무리 숨겨도 알게 될 것이 뻔했다. 자식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지 못하게 한다면 그 또한 두고두고 아픔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시동생은 시부모님을 모시러 떠났고 막내 동생은 친정엄마를 모시러 떠났다. 


50을 넘게 키운 자식의 부고를 어찌 전해야 할지 끝까지 결정을 못하고 시부모님을 모시러 떠난 시동생의  혼란스러운 상황도 눈에 선했다.

큰 사고가 났다고 말을 하고 부모님을 일단 안심시키고 출발했지만 뱃속에 내 자식으로 자리 잡고 탯줄로 연결된 그 순간부터 엄마는 자식의  아픔을 고스란히 느낀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괜찮은 거 맞아?  얼마나 다친 거야."

엄마로서 느끼는 불안함이 현실이 아닐 것이라 믿으면서 기도를 하셨을 것이다. 자식이  탯줄을 끊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진통을 감내했듯이 어쩌면 오늘 또다시 그 진통보다 몇 백배 몇 천배 아플 고통의 시간을 앞에 두고 기도와 질문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모님 모시고 장례식장까지 오는 길 시동생에게  '억겁 그 이상의 시간이었고 지옥을 맛보는 고통의 시간이었다'라고 울면서 말했다.


멀리서 시부모님의 소리가 들렸다.

"아니 여기를 왜와. 병원으로 가야지."

장례식장 입구를 들어서지 못하고 주저앉아서 통곡하시는 모습에 다시 한번 꿈이라면 빨리 어나기를 기도했다. 아끼고 아끼던 아들, 자랑스럽고 소중했던 착한 아들의 영정사진 앞에서 노부부는 창자가 끊어져 녹아내리는 아픔 쏟아도 쏟아도 넘쳐나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계셨다.

"보고 싶어도 바쁠까 봐 전화도 못 했는데..."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자식들 방해될까 봐 마음 편하게 전화도 못하고 그리워하다가 뒤늦게 부모가 돌아가시면 자식이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부모와 자식의 입장이 바뀐 기가 막힌 상황을 우리는 받아들이고 있어야 했다.

"아이고 저거 아까워서 어째. 아까워서 어째. 아~"

가슴이 쪼개져라 치시면서 답답함을 어찌하실지 모르는 시어머님의 몸부림을 시아버님은 눈물을 닦으면서 묵묵하게  받아주고 계셨다.


시간이 지나고 친정엄마가 도착했다. 은 몸을 마저 일으키지도 못하고 기어 오다시피 남편의 영정사진과 검은 상복을 입고 서 있는 내 앞까지 오셨다. 엄마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게 뭔 일여. 자식들 어쩌라고 이게 뭔 일여.

내 딸은 어찌 살라고... 착한 사위가..."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죽은 사위보다 당신의 딸이 받았을 충격과 슬픔을 고스란히 담은 첫마디였다. 바닥에 쓰러진 엄마를 오히려  내가 위로해야 했다.

"엄마 정신 차려. 산 사람은 다 살아. 정신 차려."

지금 딸이 느끼는 공포와 아픔을 엄마는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엄마에게 남편은 장모 앞에서도 비스듬히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천진난만한 질문을  던져서 웃게 하는 막내아들 같은 큰사위였다. 친정 집에만 가면 무장 해제 된 사람처럼 잠이 잘 온다고 숙면을 하고 급하게 차려낸 된장찌개에 푸성귀 반찬도 맛있게 먹어주면서 칭찬일색이던 사위였다. 가끔 친정 근처에 강의가 있으면 엄마가 가고 없는 빈집이라도  들러서  다녀간다는 메모와 용돈도 놓고 가는 딸보다 다정했고 행복하게 산다고 믿었던 사위가 홀연히 떠난 것이다.


얼마 전 친정에 갔을 때 남편 골이 소리에도  우리 아이들이 '하하 호호'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가 흐뭇하게 말했었다.

"너네는 별거 아닌 것  갖고도 즐겁고 행복하구나."

그 행복했던 모습을 이제 볼 수 없고 당신 딸이 헤쳐나갈 미래가 안타까워서  엄마 또한 애간장이 끊어지통으로 쓰러져 있는 것이다.


한 참 동안을 시어머니와 친정엄마가 부둥켜안고  아들과 사위의 죽음을 인정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내 자식들을 바라보았다.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자식을 어찌  묻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니 오늘이 우리 딸 생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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