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 공원에 갔었다. 번지드롭을 타기 위해 1시간 이상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런 기다림도 스릴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구경꾼으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내가 놀이공원을 즐기는 방법이다. 지치거나 짜증스럽기보다 스릴의 맛을 보겠다는 의지로 그 기다림을 즐기고 있었다. 드디어 탑승 시간, 안전벨트를 매고 옷매무새를 정리하면서 사람들의 표정은 설렘과 두려움으로 뒤섞여있었다. 두려움은 있었지만 추락할 것을 알고 번지드롭에 올라탄 사람들은 경험자와 무경험자 모두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공포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현실의 삶 속에서도 다가올 두려움의 순간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저런 표정으로 맞이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었다. 소설 속 '부잣집 막내아들'이라면 몰라도 아무리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예고 없이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두려움을 즐기기는 힘들 것이다.
바람이 많이 불던 3월의 어는 날 지혜롭지도 현명하지도 않은 나는 상상하지 못한 두려움과 추락을 맞이해야 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남편은 1층으로 내려오면서 늘 같은 모습으로 인사를 했다.
"잘 잤어?"
배가 아프다고 새벽에 화장실을 다녀온 남편을 보고 내가 물었다.
"자기, 속은 괜찮아?"
"어. 괜찮아."
"술이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만 손해야."
재판을 하고 오는 날은 며칠 동안 술을 더 많이 마셨다. 술이 들어가야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잔소리를 멈출 수는 없었다.
소파에 앉아서 털레비젼을 틀면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어디가?"
"아빠 또 까먹었네."
딸이 소파에 앉은 아빠를 보면서 대꾸했다.
"아~ 콘서트 가지."
준비를 끝내고 나오는 나와 아이들에게 남편은 평소와 같이 짧고 굵게 말했다.
"잘 다녀와."
이것이 아이들과 아빠의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나는 머리를 자르는 동안, '잘 도착했다.'는 톡을 보냈고 남편은 '어. 조심히 와~'라고 답을 했다.
아이들을 지하철 역에 내려주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낮잠을 잔다고 생각하고 돌아오면서 톡을 남겼다.
"애들도 없는데 삼겹살에 맥주 한 잔 할까?"
대답이 없었다. 마트에 도착해서 시장을 다 볼 때까지도 내가 남편에게 보낸 톡에 숫자가 사라지지 않았다. '갑자기 약속이 잡혀서 나갔나?' 하는 수 없이 혼자 슈퍼에 들러서 삼겹살과 맥주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에게 돌아온 나에게 남편은 철벽 같은 성을 쌓아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나를 격리시켜 버렸다. 남편은 나와 삼겹살에 맥주 한잔을 오붓하게 할 수 없는 나라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장난치지 말라고 처음으로 남편의 뺨을 때리면서 외쳐 보다가 내 뺨을 수십대 갈겨 봤지만 우리 둘 다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원하지 않은 번지드롭에 승차해서 안전벨트도 카운트 타운도 없이 추락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비명을 지르는 순간이었다.
이 두려움과 아픔이 찰나에 끝나는 놀이 기구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