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입시가 끝이 났다. 아들의 대학 합격증은 감동보다 나의 쉼을 허락하는 휴가증과 같다.
중3 때부터 바로 1주일 전까지 아들도 나도 긴장 속에서 살았다. 겉으로는 편안하고 좋은 성격 같은 아들이지만 사실은 은근히 까다롭고 예민한 아이다. 그런 부담을 숨기고 버텨줘서 고맙고 나 역시 견디느라 고생이 많았다.
버럭 화를 내고 싶고 남편과 한 바탕하고 싶어도 꾹 참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도 아들의 입시가 한 몫했다.
'인생 아직 시작도 아닌데 참 애쓴다.'라고 뒷짐 지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그래 수고한다. 남들 할 때 해야지.' 하면서 응원해야 했다. 어떤 때는 지나치게 객관적이고 또 다른 상황에선 말도 안 되게 주관적인 잣대를 들이대면서 엄마 노릇을 하느라 힘이 들었다.
수능점수가 나오고 잠깐 위기감으로 학교를 조절했지만 그것 또한 과정이었다. 합격자 발표가 나는 날에도 나는 아이들과 현장체험 장소에서 애들을 챙기느라 발표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지 않았다. 중간에 부재중 전화가 와 있어서 보니 톡에 가군 합격소식을 알렸고 돌아오는 관광버스 안에서 나머지 합격소식을 들었다.
"축하해 수고했다. 집에 가서 보자."
간단한 대화로 통화를 종료했다. 봉사자로 같이 갔던 큰아들이 한 마디 했다.
"엄마 리엑션이 너무 약해요. 집에 가면 좀 더 크게 해 줘요."
어쩌면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했는지도 모른다. 유치원에서는 매일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하는 리액션을 우리 아이들에게는 왜 그리 아끼는지 모르겠다. 이 번에는 격하게 표현하리라 다짐을 하고 돌아왔다.
저녁에 삼겹살을 먹으면서 축하의 주스와 맥주를 한 잔씩 했다.
"엄마는 너 수능 점수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잠을 못 잤어. 선생님이 학교 낮춰서 써도 확신할 수 없다는 말 들은 날은 네 머리털 뽑고 싶었다."
"그거다 100일 앞두고 언니랑 사귀어서 그래."
딸의 말에 한 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사실
아들이 수능 100일 앞두고 같은 작곡 공부하는 여자친구에게 고백을 하고 1일을 시작했다. 불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수능 점수가 나오고 그 연애가 등급을 낮추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아들 빼고 우리 가족은 모두 인정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수능을 망쳐서 실기에 목숨 걸고 미친 듯이 한 거예요. 수능 잘 봤으면 떨어졌을 수도 있어요."
"어, 대단한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네."
형의 말에 아들이 명언을 남겼다.
"수능을 못 봤다고 다 실패하 것은 아니니까 나에게는 실기라는 한 방의 총알이 더 있었지 빵~"
아들말이 맞다. 하나를 실패했다고 다 실패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일이 연동해서 작용한다고 볼 때 어떤 실패는 다음 행동에 성공을 위한 더 큰 에너지를 일으키기도 한다. 요즘 아이들은 참 똑똑하고 현명하다. 내가 울상으로 걱정만 하고 있을 때 아들은 저런 각오로 견뎠구나.
아이들의 성장을 보면서 이제 내가 더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3년을 지켜보면서
아들아, 축하한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