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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유치원 졸업식

by 앞니맘


38쪽의 편지를 쓰고 나니 새벽이다. 3년 전에 마스크를 쓰고 3월이 아닌 5월에 입학을 했던 38명의 아이들이 코로나 3년을 보내고 졸업식을 맞이했다. 3년 만에 유치원 졸업식에 부모님들을 초대했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하는 졸업식이 나도 교사들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졸업식에 초대받은 학부모님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졸업 준비의 시작은 한 달 전에 초등학교를 주제로 한 수업으로 시작되었다. 초등학교에 대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두려움을 해결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선배들을 초대해서 초등학교이야기도 들어보고 교실의 자리도 옹기종기 앉은 동그란 원형 테이블 구조에서 초등학교 교실처럼 배치하고 생활해 보는 활동도 했다. 코로나 전에는 초등학교를 방문해서 1학년 교실에서 선생님께 설명을 듣는 초등학교 견학 시간을 가졌지만 코로나 이후 견학 방문을 할 수가 없었다. 대신 초등학교 선생님을 초대해서 학교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영상을 통해서 학교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놀이영역 한편에는 초등학교 교과서를 가져다 놓았다. 알림장 쓰는 연습도 해보았다. 운동장에서는 어떤 시간에 어떤 놀이를 하고 급식에 대한 궁금증도 풀어나가면서 두려움은 줄이고 설렘과 기대는 높이려는 노력에 최선을 다했다.


이제 초등학교 갈 준비는 끝이 났다. 다음은 유치원을 떠날 준비를 하면 된다. 유치원의 어른들에게 감사의 그림편지를 쓰고 노래와 마음을 담은 영상도 찍었다. 초대받은 가족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도 준비했다. 아이들은 유치원을 떠나는 날을 행복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반면 초등학교와 졸업프로젝트 수업을 마무리하고 졸업식 음악공연을 함께 준비하느라 교사들의 퇴근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재단 후원회에서 보내주는 선물을 정리하고 아이들에게 보내는 상장편지도 진심을 다해서 써 내려갔다. 이름만 바꿔가며 복사해서 붙여 쓰는 편지 말고 아이들을 관찰하고 함께했던 시간을 토대로 한 편지를 쓰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학부모님께 상장편지를 썼다. 나머지 선생님들은 실내 장식과 포토존을 만들고 아이들의 '미래의 나의 꿈'에 대한 수업 영상을 편집했다.


나는 졸업생들의 축하인사를 모으는 것을 맡았다. '짧고 재미있게 찍어줘. 30초 미만으로 찍어야 함. 길면 통편집될 수 있음.' 1회부터 32회까지 졸업생들에게 축하 영상을 부탁했다. 나의 문자를 받고 '부끄러워서 못해요.'라고 답장을 해놓고 막상 날짜가 되자 영상을 찍어서 보내줬다.

1회 엄마와 29회, 31회를 졸업한 남매의 역할놀이 축하 영상을 시작으로

2회와 5회 졸업생 부부의 모습

태권도 사범이 된 쌍둥이 자매의 인사

그리고 고3 우리 아들과 친구들의 재미있는 영상들이 업로드되었다.


저녁이 되고 졸업식장에 추가로 설치한 조명을 밝혀졌다. 졸업식전 행사로 1년 동안 배운 음악공연을 시작했다. 악기를 하나씩 들고 입구에 서있던 아이들이 강당 안을 흘끔 바라보면서 소곤소곤 속삭였다

"친구야, 사람들 엄청 많아. 아~ 떨려"

"나도 떨려?"

떨린다고 했던 아이들의 공연은 큰 박수와 함께 짧고 굵게 끝이 났다.


나도 마스크를 벗고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너무 뵙고 싶었습니다. 3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졸업을 하고 나서 마트에서라도 만났을 때 마스크를 벗고 만나면 서로 모르고 지나 치게 될까 봐 저라도 마스크를 벗고 인사드리겠습니다."

3년 만에 마스크를 벗고 그동안 믿고 맡겨준 학부모님들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졸업 인사를 할 수 있었서 기뻤다.


잠시 후 강당을 가득 매운 부모님들 사이로 아이들이 한 명씩 입장을 시작했다. 마스크를 벗은 모습이 너무나 새롭고 예쁜 아이들을 보는 순간 콧등이 시렸다. '저런 얼굴이었구나.' 어렸지만 그 누구보다 어떤 학생보다 약속을 잘 지켰던 우리 아이들의 가려졌던 얼굴을 오늘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감동이었다. 아이들의 작은 손에는 한 송이의 꽃을 들고 있었다. 불교유치원에서의 마지막 날에 부처님 앞에 꽃을 올리면서 인사를 하는 헌화의 시간을 갖는다. 나는 그 꽃을 들고 입장하는 아이들을 대신해 영상으로 만들어진 아이들 각자의 꿈을 부모님들 앞에 설명하고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함께 보내는 역할을 했다. 다양한 꿈들이 있고 그 꿈을 꾸게 된 이유도 재미있다. 소방관, 경찰관, 간호사등 사람들에게 봉사를 하는 직업과 발명가, 과학자, 선생님도 여전히 인기가 좋다. 축구선수, 아이돌, 유튜브크리에이터, 셰프등 멋짐과 돈을 추구하는 아이들도 있다. 엄마와 아빠가 되겠다는 아이와 우리 유치원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은 올해도 있었다.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의 꿈은 '꿈이 없다'라고 밝힌 진우였다.

"저는 꿈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진우의 미래가 정말 궁금해집니다. 우리 다 같이 진우의 멋진 성장을 지켜보면서 응원해 주십시오."


수능을 끝내고 대학생이 된 선배들이 졸업식을 함께하고 대학교 입학과 초등학교 입학을 서로 축하해 주었다. 엄마아빠, 삼촌, 언니, 누나들로 성장한 졸업생들의 축하 영상은 웃음과 감동이 있었고 부끄러워서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고 웃기만 하는 동생들의 축하 영상을 따라서 졸업생들도 웃음바다가 되는 예상하지 못한 재미있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마스크 벗은 모습이 너무나 예쁘구나. 건강하고 재미있게 초등학교 생활 잘할 수 있지? 부모님들, 아직 우리 아이들 위해서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지금처럼? 아니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하세요.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행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여기 계신 부모님, 교사들과 우리 아이들에게 감사와 축하의 박수를 서로 나누면서 졸업식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부모님을 향해 돌아서서 노래를 불렀다. 사랑하고 고맙다는 말을 노래로 전하는 모습에 즐겁고 유쾌한 졸업식을 원장이 눈물 짜는 졸업식으로 만들 뻔했다. 우리는 그렇게 잘 헤어졌다.

32년 전에 처음 맡았던 아이들과 헤어지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졸업을 하고 공장으로 떠나야 하는 우리 엄마 세대의 졸업식도 아니었는데 왜 그리 울었을까? 무슨 감정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정들었던 아이들과의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과 초임을 잘 버텨준 나에 대한 연민이 컸을 것이다. 이제는 즐거운 헤어짐을 준비한다.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으로의 시작이다
3월 2일 새로운 만남이 나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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