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치원에 특색 수업으로 꽤 오랫동안 생태 관련 수업을 진행했다. 화학, 물리 점수는 30점 이상을 맞기가 어려워서 담당선생님들께 팔뚝을 꼬집히는 모욕을 당했지만 시골출신답게 생물 점수는 만점을 받지 못했다고 생물선생님께 혼이 나는 학생이었다. 문과였지만 생물을 좋아한 이유는 간단했다. 삶의 공간 자체가 나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고 그 속에서 궁금한 것을 해소하는 과목이 생물이었던 것이다.
유치원 교사가 되고 나서도 나는 기본 교육과정 외에 특색수업으로 진행하는 것은 생태와 관련된 것들을 진행했다.
"내가 공부를 좀 더 많이, 일찍 했다면 생태수업의 대표적인 교수는 내가 됐을걸?"
"맞아요."
유치원 마당을 가득 채운 놀이터 텃밭의 채소와 꽃들을 만져주면서 농담을 하면 교사들도 맞장구를 쳐준다.
"선생님들도 각자가 좋아하고 흥미로운 것들을 아이들과 특색수업으로 진행하면 행복해요."
교사들에게 반복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올 해도 어김없이 아이들과 감자를 심었고 다양한 채소와 과실 모종을 심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매년 하기로 한 아이들과의 수업을 개인사정으로 취소할 수가 없었다. 씨앗을 심고 어린싹을 심는 아이들의 손은 매우 정성스럽고 사랑스럽다.
아이들은 매일 물을 주고 놀이터에 나갈 때마다 사랑한다고 말을 해준다. 그 덕분에 모종들은 병도 없이 쑥쑥 잘 자란다. 그런데 가끔 해충의 공격 없이도 아이들을 눈물바다로 만드는 일이 생긴다.
유치원 놀이터를 영아전담 어린이집 동생들도 함께 사용을 하는데 화분에서 감자싹이 나오거나 어린 모종을 심어 놓으면 '아장아장' 걸어와서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살며시 싹을 뽑아버리는 일이 종종 생긴다.
"오우~안돼~ 형님들이 심은 거야."
교사들이 깜짝 놀라서 뽑힌 싹을 바로 화분에 꽂아 주고 재빠르게 아이를 안고 어린이집으로 돌아간다. 그 상황을 사무실에서 지켜보면 아이들의 행동도 교사의 당황한 몸짓도 화가 나기보다 미소를 짓게 하는 장면이 된다. 내가 빨리 발견을 하면 새로운 모종을 사다가 추가로 심거나 다른 싹을 옮겨주면 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발견하지 못하면 며칠 안에 시들시들 말라서 죽는다. 그 사이에 다른 아이들 화분에 모종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 된다.
이런 황당한 경험을 몇 번 하고 나서 똘똘한 우리 아이들이 낸 아이디어는 출입금지 라인을 만드는 것이었다. 싹을 심고 나면 아이들이 '동생들아, 여기 있는 싹을 뽑으면 아파요.'라는 안내문과 글씨를 모르는 동생들을 위해서 금지표시 마크와 모종이 울고 있는 그림도 그려서 코팅을 한다. 그다음은 화분 주변에 줄을 매고 그곳에 이 안내문을 매달아 놓는다. 나는 나대로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서 5개 정도 예비화분을 만들어 놓는다. 아차 하면 이름표를 떼서 내가 심은 화분으로 옮겨 달아 준다. 좌절도 가르쳐야 한다고 하지만 본인의 잘못이 아닌 타인의 잘못으로 아이가 좌절하거나 포기하게 만드는 것을아직은 배우게 하고 싶지 않다. 아이의 삶에 긍정적인 배움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자를 캐고 나면 감자의 크기와 숫자는 유아들마다 다르다. 모두가 똑같이 크고 많으면 좋겠지만 이 부분은 인위적으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 왜 친구 것과 내 것이 다른 지에 대해서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나면 숫자가 적을 수도 있고 크기가 작아도 소중하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이건 너무 작아서 요리하기 힘들 것 같은데 버리고 가지."
아이들 마음을 살짝 떠보는 질문을 짓궂게 던져보지만
"버리고 가면 감자가 슬퍼요. 우리 엄마는 요리를 잘해요."
아이 마음이 너무 이뻐서 힘들어도 매년 텃밭 수업을 진행한다.
아이들이 키운 소중한 감자를 받은 부모님들은 한 알도 버리지 않고 감자밥부터 조림, 국, 볶음, 샌드위치등 맛도 좋고 보기도 좋은 요리로 변신한 감자를 카메라에 담아서 유치원에 전달해 준다. 캐는 날보다 요리를 하고 난 다음날이 아이들은 할 말이 더 많아진다.
태풍피해를 막기 위해 감자를 캔 화분들을 옮기다 보니 화분 안에 강아지풀이 가득했다. 화분을 한 참 들여다보면서 고민에 빠졌다. '곧 김장 무 씨를 심어야 하는데...'
날씨도 덥고 모든 게 힘들지만 나는 자연과 함께하는 아이들의 행복한 교육을 포기할 수가 없다.
다음 주에는 화분에 풀을 뽑고 퇴비를 뿌려야 한다.
무 씨를 구입하러 농자재 가게에도 들릴 것이다.
11월, 서리가 내리기 전에 아이들이 제일 즐거워하는 무 뽑고 우거지 만드는 날을 상상해 본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이들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