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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왕의 DNA를 가진 딸인데

by 앞니맘


'내 아이는 왕의 DNA를 가진 아이다.' 교육부 사무관 '갑질' 사건에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말이 어디로 숨어야 할지 길을 잃었다. 2016년 민중을 개, 돼지로 취급했을 때 보다 더 어이없는 기사를 보고 소리 내어 읽던 내 입을 찢어 버리고 싶었다.


중간에 족보를 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전주 이 씨 조선왕조의 어떤 군의 파에 속해 있다. 형제를 죽이고 당쟁과 음모에 휘둘려 가면서 이어 온 왕의 DNA를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세종대왕 같은 훌륭한 왕이나(세종대왕이 듣고 있으면 돌아 앉을 듯.) 절대 권력을 갖고 칼을 마음대로 휘 뒤르는 느낌의 왕을 의미로 교사에게 왕자의 대우를 명령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 마. 안돼. 그만.이라는 말은 절대 하지 말고 갈등이 생겼을 때 철저하게 자기 아이의 편을 들어 달라는 부탁과 교사의 언어 즉 말투는 권유와 부탁의 말로 해달라.'는 멜을 받은 교사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교사가 자기 아이를 지도하는 태도에 대해서 명시해 주면서 언어 사용의 예시까지 제시해 준 친절한 학부모다. 부정적으로 해석한다면 우리 아이는 특별하니시키는 대로 응대해 달라는 왕의 명령 같아 보인다.


유치원이나 학교에 아이를 맡기는 부모들 마음은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돌려 말하지만 '아이가 싫어하는 말이나 음식을 알려 주고 본인은 아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지도해 준다. 시중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는 먹이지 않고 키운다.'라고 말을 하면서 우리 아이의 존재에 맞게 교사들이 대우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나도 삼 남매의 학부모로서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를 한다.


부모의 마음에 쏙 맞게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 그렇게 정성껏 키웠다는 아이가 온 교실을 공포로 몰아넣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담임교사의 껌이 되어서 1:1 지도로도 어려운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편견 없이 아이들을 지도해야 하는 교사의 원칙을 실천하고 왕의 DNA를 가진 아이의 부모님의 요구에 충족하려면 교실에서 갈등을 생기게 하면 절대 안 된다. 갈등이 생기면 이 또한 교사의 능력 부족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불가능한 요구인 것이다.


오래전에 서울에서 전학을 온 아이가 있었다. 부모님이 바빠서 할머니가 봐주기 위해서 중간에 유치원에 입학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할머니께 연락 와서 상담을 진행했다.

"시골 아이들이라서 인지 모래 놀이를 잘하는데 우리 손녀는 더러워서 못하겠데요. 그러니까 모래 놀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시골 아이들이라서 말하는 법을 제대로 못 배웠나 봐요. 놀이를 할 때 같이 해도 되냐고 물어보지 않고 논다고 손녀딸이 속상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시골 아이들이라서.... "

그 이후에 할머니가 하신 얘기들은 '강남에 건물이 있다. 부모님이 약사이고 강남에서 소수인 놀이방에 다녀서'등 이야기였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고 열심히 듣는 척했지만 사실 머릿속으로는 '내가 시골이라서 아이들을 잘 못 지도하고 있다는 뜻인가?'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집안에 독자라서 귀하게만 키워서 자기만 알아요. 잘 부탁드려요."

할머니가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는 맨 마지막에 있었고 그렇게 긴 이야기를 했던 목적도 알 수 있었다. 그 뒤에 내가 한 일은 모래 놀이를 억지로 시키지 말라는 것과 그 아이와 잘 노는 시골아이의 놀이를 잘 관찰하라는 것뿐이었다.


졸업여행 계획서를 받은 학부모님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부탁이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우리가 가족 여행이 잡혔는데 하필 아이들 졸업여행 가는 날과 겹치는데 혹시 날짜를 바꿀 수 있나요? 가족여행은 아주 오래전에 예약한 것이라서요. 그런데 우리 아이가 친구들이랑 여행을 너무 가고 싶어 해서요."

"날짜 조정하느라 공지 여러 번 나갔는데 체크를 못하셨나 봐요.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일단 알아보겠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배려해 보려고 2박 3일의 일정을 바꿀 수 있는지 밤늦게까지 노력했지만 변경이 불가능했고 그 학부모에게 개욕을 먹어야 했다. 욕을 먹은 이유는? 결과를 빨리 알려주지 않아서 아이를 기다리게 했고 다음 날 자기가 전화해서 물어보게 했다는 이유였다.

'만약 일정 변경에 성공했어도 욕을 먹었을까?' 어차피 진심은 중요하지 않다. 학부모 맘에 들지 않으면 나는 욕을 먹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나도 우리 아이들을 학교에 맡기면서 걱정도 많았고 부모도 못하는 내 자식 교육을 선생님들이 잘해주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의를 지키려고 카톡 문자 하나에도 고민을 하면서 적었고 한 밤중에 톡을 하지 않는 정도의 원칙과 수업시간에는 전화를 하지 않는 배려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학부모의 자리를 지켰다. 맙게도 아이들은 무탈하게 잘 지냈고 아직 막내는 진행 중이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저귀를 일찍 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말을 엄마들의 해석 차이로 다섯 살이 지나서도 기저귀를 차고 유치원에 오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내 아이는 왕의 DNA를 가진 아이다.'라는 말도 해석에 오류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태도로 양육하라고 부모교육 차원에서 학부모들에게 표현한 문장 일 것이다.


이 말을 많은 아이들을 교육하는 현장 교사에게 전하면서 가정교사 같은 지침을 내린 것은 부모의 자식 사랑에 대한 방법이 미숙했고 학교 생활에 대한 이해를 하려는 의지가 없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더구나 교육부 사무관이라는 것이 더 충격적이다.


교사에 대한 존중까지는 각자 알아서 선택한다고 해도 교사에 대한 배려는 교실에 모든 아이들에 대한 배려라고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아이는 모두 귀하고
모두 왕이 될 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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