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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의 봄방학

by 앞니맘


유치원 아이들이 졸업과 수료를 하고 학부모님들 입장에서 보면 봄방학 기간이다. 다 같이 고3 학부모에서 벗어난 아들 친구 엄마들이 밥을 먹자고 연락을 했다.

"방학이죠? 오늘 점심 먹어요."

"출근했어요. 지금부터 엄청 바빠요. 밥은 3월 지나고 짜식들 대학교 적응하는 거 보고 먹어요."

농담을 던지고 전화를 끊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들조차도 봄방학에는 애들하고 같이 쉬는 줄 알고 있다.

나도 쉬는 봄방학이면 좋겠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바쁜 날들을 보내야 한다. 교사들은 교실 이동 및 정리, 교실 환경구성, 청소, 생활기록부등록, 맡은 서류 마감 및 신학기 서류 등록, 업무분장에 따른 인수인계, 개별상담등 정신이 없다. 나도 그날그날 발등에 불을 끄듯 회계와 행정업무를 해치우는 기분으로 일을 하고 있다. 다행히 봄방학 기간에는 아이들이 등원하지 않아서 차량운행이 없다. 지친 체력을 충전하기 위해서 최소 아침 8시까지 늦잠을 자고야 말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내 계획은 아들놈의 데이트 시간 때문에 첫날부터 깨져버렸다. 터미널에 데려다주면서 얘기를 했다.

"엄마가 힘들어. 이제부터 3월 1일 까지는 8시까지 안 일어나고 싶어. 그러니까 네 여자 친구 일정에 맞게 데이트시간을 맞추지 말고 나한테 맞춰라. 이 나쁜 놈아."

아들은 아주 쉽게 '알았다.'는 대답을 하고 터미널에 내렸다. 아들 덕분에 8시 조금 넘어서 출근을 했다. 졸업식까지 달려오느라 지저분해진 사무실 청소부터 시작했다. 교사들하고 있을 때는 들을 수 없는 올드한 음악을 틀어놓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기분이 좋았다. 아들이 고마워졌다. 이렇게 봄방학 1일이 시작되었다.


9시가 되어서 출근한 교사들과 졸업식 평가를 하면서 빵과 차를 마셨다. 이 시간은 딱 이 시기에만 가능한 시간이기도 하다. 1년 중 다 같이 차를 마시면서 회의를 하고 가장 많은 대화가 오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졸업식 평가를 하고 평가에 따른 운영계획도 수정했다. 그리고 제안을 하나 했다.

"이 번주까지 힘들게 하고 다음 주는 쉬는 건 어때요?"

"장님 좋아요. 아싸, 오늘부터 야근이다. 다들 집에 못 가요."

선생님 한 분이 마시던 차를 원샷하듯이 마시고 일어났다. 짧은 방학에 코로나에도 걸리고 입학과 졸업준비로 지친 교사들이 며칠이라도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찬성 분위기로 합의가 이루어졌고 나도 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각자의 일과 공동의 일이 마무리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밤 12시가 되기 직전에 퇴근을 했다.

덕분에 아침에 나갔던 아들이 편하게 나와 함께 귀가하는 행운을 얻었다.


오늘도 아침 5시 50분에 눈을 떴다. 오전 10시에 운영위원회가 있다. 일찍 나가서 준비를 해야 한다. 봄방학 2일, 늦잠 계획은 또 깨졌다. 오늘은 고구마를 구워가서 교사들과 먹어야겠다.


졸업하면서 뭐가 맘에 안 드는지
인사도 없이 가버리는 엄마들 틈에서 그래도 수고했다. 감사하다. 마지막 손을 잡고 정을 나누는 엄마들이 있으니 괜찮고

아무리 해도 아이들 잘 본 티는 나지 않고
잘해야 본전인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대학교 나오고 자격증은 정교사랑 같은데
임용고시 안 본죄로 업무나 책임은
임용 본 공무원처럼 해야 하고
어떤 날은 소속 없다 하면서
어린이집 교사랑 같이 묶어서
통합하려고 해도

기죽지도 부러워도 안 하면서
힘든 현장에서 잘 견디고 있는
우리 유치원선생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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