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자겠다고 휴대폰을 무음으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알람 끄는 것을 깜박 잊었다. 기상을 알리는 알람소리에 한 번 눈을 뜨고 나니 잠이 오지 않았다. 밥을 하고 출근 준비를 하는 대신 브런치를 뒤적이며 글을 읽다가 알바 가는 아들이 기척이 없어서 후다닥 올라가서 깨우고 잠깐 더 뒹굴 거렸다. 휴대폰을 무음에서 벨소리로 바꾸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받을까 말까 고민을 할 번호가 아니다. 교육청이다. 내가 휴가라고 전달했을 것이다.
"여보세요."
"쉬시는데 죄송해요."
내가 휴가라는 것을 이미 알고 전화한 것이 확실했다.휴가를 내려고 급하게 이것저것 정산서를 제출했는데 항목 하나가 빠진 것이다.
"바로 수정해서 보내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업무용 노트북을 켰다.
12월 중순에 교사들의 집단 코로나 발생으로 임시방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때도 긴급 돌봄 아이들이 등원을 하고 있어서 출근을 해야 했다. 사실 1주일 전체방학이 없어진 것이다. 교사들은 대체인력과 보조인력을 활용해서 2주간 쉴 수 있었지만 원장이고 운전까지 해야 하는 나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방학쯤 되면 쉬라는 신호가 계속 오는 내 몸은 이 번에도 눈치 없이 계속 아프고 피곤했다.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다. 휴가를 내겠다는 의지로 2호 차량 기사도 구해놓고 늦게까지 내년예산과 추경예산등을 위한 회의를 끝내고 나니 시기가 시기인지라 그동안의 사업에 대한 정산이 산더미처럼 밀려 있었다.
"돈 받을 때는 좋은데 정산할 때는 정 반대야."
"맞아요. 미리미리 해 놓는데도 매년 같아요."
다른 일은 몰라도 이 부분은 교사들도 나도 같은 마음이다.
금, 토, 일, 월 휴가를 내기 위한 마지막 과제는 목요일 오전과 오후로 계획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다. 수요일 밤까지 자료들을 정리하고 목요일 저녁 7시 30분에 신입생오티가 마무리되었다.
"아 이제 끝이다. 드디어 나도 휴가를 가는가?"
흥분해서 책상을 정리하는 나에게 만 5세 담당 선생님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그런데요. 원장님~"
"왜요?"
"금요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만 5세 무상교육 정산 자료가 아직 남아 있어요.원장님만 채워 놓으시면 됩니다."
"그래? 그럼 해야지."
나는 밤늦도록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혹시 모를 문제를 위해서 동영상을 찍어서 담당선생님께 보내고 일이 끝났다.
"엄마 이 번에는 쉬는 거 맞아요? 일 때문에 계속 미뤘잖아요."
아들의 말이 맞다. 늘 직장 일이 먼저였다. 방학에도 수시로 보일러를 정비했고 연락을 받고 서류처리를 위해서 출근을 하느라 사실상 방학이라고 하기에는 부적합했다.
"이 번에는 쉴 거야. 내가 아파."
그리고 다음날 가족들을 모두 싣고 친정으로 떠났다. 집에 계속 있으면 출근을 하게 될 것 같았다.
다행히 금요일은 출발 전에 잠깐 교육청과 통화를 하고 조용했다. 주말을 낀 휴가가 끝나는 오늘 여기저기서 계속 전화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은 아들이 친정에서 받아온 용돈으로 옷을 사러 가자고 했는데 갈 수 있을지 고민이다. 오늘일을 내일로 미룰 수 있어야 나는 오늘까지 출근을 미룰 수 있다.
그래도 교사들 자리에서 보면 내 자리가 부럽겠지?그리고 누군가는 나를 필요로 하는 이 일상을 그리워하겠지?